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8.11.7 수 13:35
기획사회
[사회] 국민이 아닌 사람들의 권리이한숙 /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
김유중 편집위원  |  yuri395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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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호]
승인 2018.11.06  23: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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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사회] 외국인 인권실태

 대한민국은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길목에 서 있다. 국제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외국인 인구의 증가폭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다문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 곳곳에서 난민법 개정, 외국인 인권 등 관련 이슈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다문화 담론을 시작할 시기다. 이번 연재에서는 국내·외 다문화 관련 이슈와 담론을 살펴보고 다문화 정책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다문화사회와 이데올로기 다문화주의와 국제이슈 외국인 인권실태 다문화사회로 가는 길

 

국민이 아닌 사람들의 권리

 

이한숙 /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

 세계인권선언은 인권이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적용돼야 하는,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하게 주어지는 천부적 권리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누가 인간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달라져 왔다. 실제 인류의 역사에서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대우받은 경험을 찾기는 힘들다. 반면 생물학적으로 하나의 임이 분명한 인간을 각각 다른 으로 구분하고 배제하는 인종화와 인종차별의 경험은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해 왔다. 성별·민족·피부색깔· 언어·종교·장애·성적 정체성과 지향 등의 구분과 배제의 기준은 서로 교차하고 중첩되면서 카멜레온처럼 외양을 바꿔 왔다. 그 가장 현대적 변형은 시민권과 국적에 따른 차별이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시민권과 국적에 따른 차별과 외국인 혐오가 현대적 형태의 인종차별임을 반복해 강조해 왔다.

 하나의 동질적인 그룹으로서 외국인은 환상이다. 국민이 아닌 사람들은 너무나도 다양한 측면의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한국사회 또한 국민이 아닌 사람들을 출신국가, 피부색, 직업, 성별, 계층과 계급 등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대우한다. 때로는 귀화를 통해 국민이 된 사람들을 같은 국민으로 대우하지 않기도 한다. 한국국적자가 된 미국 출신 교수와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은 한국사회의 입장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어쩌면 외국인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인권실태를 논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인종화일 수도 있다.

 

   
 

 

사람보다 국민이 먼저다

 20184, 광화문 네거리에 현수막 하나가 내걸렸다. “사람(일본·이슬람·한국인등 외국인포함)보다 국민(한국인)이 먼저다. 헌법개정 반대!” 이 현수막은 별로 인기가 없어 보이는 어느 정당이 서울 시내 여러 곳에 동시에 내건 것이었다. 현수막이 내걸리기 한 달 전 3월에 대통령의 헌법 개정안이 발표됐다. 헌법 개정은 권력구조나 선거제도의 개편이 쟁점이었지만 대통령 개정안은 헌법 상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이 아닌 사람으로 확대하겠다는 지점에서도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었다.

 그 현수막이 이에 반대한다는 것임은 분명해 보이는데 얼핏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는 아마도 괄호 안의 말 때문인 것 같다. 괄호 안의 말을 빼고 나면 사람보다 국민이 먼저다가 된다. 이는 현재 한국사회 곳곳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대중적인 구호, 주장 혹은 신념이다. 이는 국민이 아닌 사람은 사회구성원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없다는 분명한 선언이다.

 그렇다면 국민이 아닌 사람은 누리지 못하는 권리는 무엇일까. 위의 현수막을 내건 사람들이 대통령 헌법 개정안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봤다면 기본권의 주체를 사람으로 바꾸는 것에 그렇게 열렬히 반대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 개정안의 내용은 자유권적 기본권은 모든 사람의 권리로 확대하되 사회권적 기본권은 여전히 국민만의 권리로 한정했다. 때문에 국민이 아닌 사람은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대부분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현재 지점에서 반걸음도 내딛지 못한 것이었다. 어떤 측면에서는 오랫동안 이주민과 그 지원 그룹들이 싸우고 설득하고 호소하며 쟁취한 작은 권리들을 부정하며 뒷걸음질 치는 것이기도 했다.

 

벼랑으로 내모는 다문화 정책

 한국에서 다문화 정책은 사실상 억압적인 동화정책 더하기 시혜적인 지원정책이었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흐른 현재 다문화는 다문화 가정, 다문화 아동, 다문화 학생, 다문화 병사까지, 결혼이주민과 그 자녀라는 특정 그룹을 인종화해 지칭하는 용어로 전락했다. 반면 70%에 달하는 결혼이주여성의 가정폭력 경험,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가정폭력에 의한 이주여성의 사망사건에도 불구하고 결혼이주민의 체류자격이 여전히 한국인 배우자에 종속돼 있는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한편 한국의 대표적인 외국인력도입제도인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의 최대 취업기간은 점점 늘어나 약 10년이 됐다. 그러나 영주권과 국적신청의 권리, 가족동반의 권리 등 장기체류자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할 권리는 동반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겪고 있는 저임금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들이 일하려고 하지 않는 직종에서만 일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당연한 결과다. 이들 직종에서 산재 발생률은 특히 높아서 산재로 인한 이주노동자의 사망률은 한국인 노동자의 6배에 달한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에게서 직업 선택의 자유, 사업장을 옮길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해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은 사실상의 강제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특히 폭언, 폭행, 강제출국 협박, 열악한 주거와 생활, 성희롱과 성폭력 등이 만연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에게서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은 첫 취업기간 3년 동안 3, 110개월 연장취업기간 동안 2, 사업장의 근로계약 위반이나 임금체불 등 까다로운 기준으로 정해진 사유에 해당될 때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유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노동자가 증명해야 한다. 반면 사업주는 이주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 사업장을 옮길 때도 1달 내 구직신청, 3달 내 새로운 사업장을 구하지 못하면 체류자격을 잃게 된다. 그런데 새로운 사업장을 찾으러 다닐 권리도 없다. 고용센터가 보내주는 문자알선을 기다려야 할 뿐이다. 그래서 2010년부터 56개월 동안 구직신청기간과 구직기간 초과로 체류자격을 빼앗긴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만 42,996명이었다.

 

깊게 추락하는 그들의 삶

 일단 어떤 이유로든 체류자격을 잃게 되면 폭력적인 강제단속과 추방의 위협 속에 놓이게 된다. 단속 과정에서 이주노동자가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지난 8월에는 미얀마 이주노동자 딴저테이씨가 강제단속 과정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을 목격한 동료 이주노동자들은 단속반이 창밖으로 달아나려는 딴저테이씨의 다리를 잡아 중심을 잃고 지하로 추락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진상을 규명하려는 법무부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딴저테이씨의 가족은 그의 장기를 한국인들에게 기증하기로 했다. 그 이전에도 산재로 목숨을 잃은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이 장기기증을 하고 떠난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미등록 체류자가 단속돼 외국인보호소에 일단 구금되면 기약 없는 장기구금이 가능하다. 때문에 돌아가면 생명의 위협에 놓이게 되는 난민신청자, 돌아갈 곳이 없는 무국적자가 수년씩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국내 최장기 구금자는 48개월 동안 구금됐던 난민신청자로, 인권단체들의 탄원으로 일시적으로 풀려 나왔지만 여전히 체류에 대한 어떠한 인도적 조치도 취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이주민 중에서도 취약계층은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박탈당한 탓에 생존 그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가장 답답한 경우 중 하나는 부모의 사망 등의 이유로 시설의 보호가 필요한 이주아동들이다. 시설 입소 아동들은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각종 급여를 통해 정부 지원을 받게 되는데 이주아동들은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대상이 되지 못한다. 때문에 지방정부나 보육원 측의 선처에 기대 아슬아슬한 삶을 이어가야 한다.

 기본권으로서 인권은 막연한 개념이 아니다. 인권은 세세한 권리의 목록으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그 목록은 하늘에서 정해서 떨어뜨려준 것이 아니다. 차별받는 소수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저항과 그들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지지와 지원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돼 온 것이다. 전세계 250여개국 중에 GDP 순위가 15위 안에 드는 한국에서 국민이 아닌 사람들의 권리는 어디까지여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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