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섭 / 문화비평가

[‘20대 개새끼’부터 ‘N포’까지, 세대론 10년]


 지난 10년 동안 ‘청년’은 “88만원”“3포”“달관”이 그렇듯 주로 ‘경제적 약자’로서 그려졌다. 물론, 정치적 차원에서도 보수정권 집권의 원인을 귀책하거나(“20대 개새끼론”), 리버럴의 당선(‘청년의 승리’)을 예찬하기 위해 ‘청년’이 필요했다. 모든 것이 세대로 설명됐다. 이 같은 세대 개념의 남용이 지닌 위험성과, 그럼에도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의 유용성은 무엇인지, 지난 10년간의 세대론이 무엇을 남겼는지 다시금 톺아보자.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계급’을 지우는 청년세대론 ② ‘젠더’를 지우는 청년세대론 ③ ‘청년논객’ 담론 갈무리 ④ 불리는 ‘세대’, 말하는 ‘세대’

 

10년의 ‘청년논객질’은 무엇이었는가

최태섭 / 문화비평가

 

 《88만원세대》가 나온 2007년 한국사회는 청년이라는 존재를 재발견했다. 87년에 팔뚝질로 한국을 민주화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져오는 86세대이후에 청년에 대한 호명은 남성용화장품이나, 휴대폰이나, 미래지향적인 옷 같은 것을 사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88만원세대로 호명된 2007년 이후의 청년들은 달랐다. 이들은 살 수 있는 게 없는 최초의 청년들이었던 것이다. 이전에도 ‘낀세대’같은 부정적인 의미의 세대에 대한 지칭이 존재했으나, 사실상 누구나 자신을 낀세대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그다지 변별력 있는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88만원세대는 명확하게 부정적이고 심지어 장기적인 전망을 담고 있었다. ‘지금의 20대들이 평생 동안 월평균 88만원의 소득을 올리며 비정규직으로 살 것이다’는 식의 예언은 단 한 번도 청년세대에게 선고된 적이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 예언 이후로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청년들도, 청년을 걱정한다고 주장하는 기성세대들도 그 사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청년문제’라고 불렸던 일련의 상황들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려오지 않는다. 오늘날 청년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고, 실업률은 10년 전에 비해서 훨씬 더 높아졌고, 그 와중에 청년인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기득권을 가진 일부의 그러나 힘이 센 기성세대들은 기숙사와 공공임대주택을 반대하고,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지원이 그들을 나태하게 만든다고 성토하고, 육아와 출산에 도움은 주지 않을 것이지만 어쨌거나 애를 낳지 않는 젊은 여자들은 이기적이라며 임산부석에 앉아 소리를 지른다.

 나 역시 그 사이 20대를 아득히 넘어 30대 중반이 됐다. 30대 중반은 과거의 기준으로 따지면 이론의 여지가 없는 ‘어른’에 속하지만, 주변을 봐도, 내 상황을 봐도 그렇게 이야기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확실히 최근 청년을 규정하는 방법은 더 복잡해졌다. 20대라는 명확한 규정 대신에 34세나 39세를 청년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청년의 기준이 늘어나는 것은 대체로 20대의 궁핍함이 연장되고 있다는 측면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사회가 정상으로 여겨왔던 사이클이 무너지고 있고, 30세를 넘어선 이들도 그것을 달성할 수 없거나(N포), 거부(비혼)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청년기의 연장은 사회경제적 안정과 사회재생산에 대한 참여 모두로부터 멀어진 새로운 30대들에 대한 다소간은 불명예스러운 호명인 것이다.

청년 없는 청년담론

 

 ‘청년담론’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88만원세대 이후 청년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청년문제를 논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지성계 언저리를 떠돌던 몇몇 청년들에게 갑자기 ‘청년논객’ 혹은 ‘청년필자’(이하 청년논객으로 통일)라는 칭호가 붙기 시작했다. 언론사들은 부랴부랴 ‘2030’들이 쓰는 칼럼코너들을 만들었다. 기존의 필진구성에서 ‘젊음’이 새롭고 중요한 구색의 요건으로 추가됐다. 특히 ‘청년 여성 필자’의 존재는 해당 매체의 다양성을 보증해주는 표지처럼 여겨졌다. 이 청년담론의 판은 따지고 보면 청년들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청년들이 청년담론판을 주도한 경우는 없었다. 윗세대가 청년에 대한 어떤 담론이나 의견을 제시하면 그것에 찬동하거나 반대하는 식이었다. 특히 2007년 대선 이후 불거진 “20대 개새끼론”이 등장하고 나서 청년담론은 매우 방어적인 방식으로만 전개됐다. 청년논객들은 20대는 개새끼가 아니라거나, 구조적으로 개새끼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청년논객들의 상황에서 가장 곤란한 것은 정작 이들이 대표하고 있는 것이 아주 협소한 의미의 청년이었다는 사실이다. 최초에 청년담론판에 자리를 얻은 청년들은 대부분 서울에 있는 명문대 출신들이었다. 이들은 말하자면 ‘언론계나 지성계의 어떤 저명인사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20대’였다. 그러나 실제 구성으로 따지자면 청년 중에 한줌에 불과한 이들이 쓰는 글들이 동세대를 대변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청년들의 글은 비판이든 옹호든 읍소든 모두 윗세대를 향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청년논객들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여기지 않았으며, 사실은 그 존재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훗날 《88만원세대》의 공저자 우석훈 박사가 청년세대에게 실망했다며 책의 절판을 선언한 일 역시 대다수의 청년들에게는 알려지지 조차 않았다.

 출판계에서도 비슷했다. 청년담론을 주제로 하는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자랑한 것은 ‘멘토’들의 책이었다. 사실 청년들은 출판시장에서 중요한 독자층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청년담론에 대한 책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청년이 쓴 청년에 대한 책들이 그나마 읽힌 것은 대체 이 청년들이 누구인지를 궁금해 했던 언론이나 기성세대 덕분인 경우가 많았다. 멘토들이 쉽게 써내려간 책들 역시 기성세대의 손에 들려 자녀나 아는 청년들에게 선물로 건네졌다.

 학문의 영역에서도 어정쩡함이 이어졌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청년들이 사회학이나 문화연구를 하기 위해 대학원으로 향했고, 그들은 청년담론이나 그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싶어 했다. 당사자성이 제약이라기보다는 자원이 되는 한국의 학문 풍토에서 이런 연구들은 장려되곤 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자기-규정적인 연구가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웠다. 청년이 스스로를 규정하기 위해 연구를 수행하고 석사학위를 받고나면 그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자기문제, 혹은 ‘자기의 문제화’를 통한 학문이 더 넓은 세계를 향해 열려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내가 지나치게 냉소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청년이 청년담론의 주요 생산자도 소비자도 아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그간 존재해왔던 모든 청년담론이 다 무용하다는 뜻은 아니다. 어쨌거나 청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부당한 공격에 맞서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새로운 장을 열거나, 청년들의 정치적 결집을 도모하거나, 하다못해 난동이라도 부릴 수 있는 힘 있는 담론이 아니었다는 것은 씁쓸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힘을 과시했던 것은 청년담론의 카운터에 가까운 보수적 레토릭들로 무장한 일베였다.

 

 

 

청년 중 한 명으로 살아남는 것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 속에는 내가 숨어있다. 비록 명문대 출신은 아니지만 서울 4년제 대학을 다녔던 이성애자 남성으로서, 청년담론을 통해 청년문제를 해결하는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던 실패한 청년논객으로서의 내가 말이다. 불쌍한 사연만 빨아 먹히고 값싼 동정과 함께 사라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작전세력으로 삼고자 하는 음습한 ‘어른들의 사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철없이 젊음이나 과시하며 ‘나는 달라!’라고 외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걸어온 시간들이었다.

 그 사이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들도 해냈다. ‘열정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청년 착취를 살핌은 물론이고, 그 문제를 기존의 사회와 연결시켜보려고 했다. 《잉여사회》(2013)를 통해서 정처 없이 떠도는 청년들의 에너지를 분석해보려 했다. 최근에 출간한 《한국, 남자》(2018)역시 한남은 다 죽어야 한다는 쉬운 답변 대신에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를 한국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규명해보려 했다. 물론 이 작업들이 실제로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 길이 없다.

 이 때 이른 회고가 다소 무례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적어도 서울의 경우만 보면 청년담론과 관련된 실천들이 가장 체계적이고 가장 힘을 갖고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노력을 비웃을 생각은 전혀 없으며, 나 역시 간접적이나마 힘을 보태고 있다. 세상이 바뀐다면 그것이 어쨌거나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입안에 남는 쓴맛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그 수많은 청년논객들과, 서로 통하거나 이어지지 않았던 담론들과, 이런 글에서 조차 꺼낼 수 없는 얘기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팎으로 점점 악화돼 가는 청년들의 삶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살아남아서 나는 오늘도 쓴다. 언젠가는 살아남는 것 이상의 꿈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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