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 한국다문화교육학회 상임이사

[다문화사회] ② 다문화주의와 국제이슈 

  대한민국은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길목에 서 있다. 국제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외국인 인구의 증가폭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다문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 곳곳에서 난민법 개정, 외국인 인권 등 관련 이슈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다문화 담론을 시작할 시기다. 이번 연재에서는 국내·외 다문화 관련 이슈와 담론을 살펴보고 다문화정책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다문화사회와 이데올로기 ② 다문화주의와 국제이슈  ③ 외국인 인권 실태  ④ 다문화사회로 가는 길

 

다문화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갈등과 이슈

- 한국 사회를 투영하는 또 다른 거울 -

 

김진희 / 한국다문화교육학회 상임이사 

 

  UN은 21세기를 국제이주의 시대(The Era of Global Migration)라고 정의했다. 정보·기술· 미디어·상품·인력·자본의 국경 이동과 국제 교류가 그 어느 시기보다 자유로워진 오늘날, 점점 더 많은 현대인은 다양한 매체와 직간접적 경험을 통해서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일상화를 경험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 지구적인 이질성(Global Heterogeneity)이 인종·민족·국적·계층·종교·성의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면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이 가진 국제적인 경험과 다문화적 환경에 노출되는 것은 모종의 경계 넘기(Border-Crossing)의 과정이듯이, 국내외적으로 다문화주의라는 물결이 끊임없이 발현되고 있는 것도 전 세계적인 이주 흐름의 경계 넘기와 멀지 않다. 즉 경계 넘기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상식·관습·규범·태도·기술·사회·문화적 상호작용 등이 시험대에 올라서 도전받고, 다시금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연속적인 변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필연적으로 다문화사회라는 테제와 다문화 담론은 이질적인 경험을 변환하는 역동의 과정을 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환의 과정에서 최근 국제사회에서 다문화주의와 다문화 담론은 강력한 저항과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2010년도와 2011년도는 다문화주의 관련 국제이슈들이 가장 첨예하게 제기된 해다. 그동안 정치·경제·문화적 이유로 다문화주의를 수용해 온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약속을 한 듯이 다문화주의에 대한 회의적 선언을 동시에 표출했고, 노르웨이 정부가 시행하는 다문화주의 철폐를 주장한 극우 민족주의자의 테러가 전 세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도 2011년 여름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의 다문화정책 위기론과 실패론  

   2011년 캐머런(D.Cameron) 총리는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에서 이주민 통합에 관해 직설적인 발언을 했다. 그는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관용을 원칙으로 하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가 실패했고 오히려 다문화주의로 인해서 영국 사회 내에 이슬람 극단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당의 당수인 캐머런 총리는 영국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무슬림 단체에 대해서는 재정지원을 삭감하겠다고 덧붙이며 다문화로 표적화되는 단체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을 거둬들였다. 영국 내 다문화주의 정책은 소수 인종 배경을 가진 이민자에 대한 표적 담론이 되면서 진정한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정책으로 자리잡았다. 영국 사회는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민 문제와 실업 문제가 끊임없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민자들이 영국인의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이슈와 “이민자가 들어와도 실업이 야기 되지 않는다”는 논쟁이 늘 팽팽히 맞서는 형국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 경쟁에서 종국에 우위를 차지한 결과는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에서 드러났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사회적 냉기와 거부감이 우세한 것이다. 

  메르켈(A.Merkel) 독일 총리는 2010년 10월 독일 기민당(CDU) 청년당원 모임과 국제안보회의에서 “다문화사회를 건설해 함께 어울려 공존하자는 접근법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는 독일의 이주 문제에 대한 진단이다. 메르켈 총리의 이런 발언은 에르도안(T.Erdogan) 터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독일 내 거주하는 250만 명의 터키계 이주민의 낮은 통합수준을 향상시키기로 합의한 이후 나온 것이라, 다문화정책 실패론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어났다. 터키 총리와의 대담에서 메르켈 총리는 적어도 표면상으로 “독일 내 이주민들은 독일어를 배우는 등 사회통합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주민의 ‘배제’와 ‘격리’보다는 그들의 사회‘통합’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독일사회에서 다문화정책에 대한 반감과 무용론이 팽배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2015년에 메르켈 총리는 난민 80만 명을 독일에 수용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유럽국가들에게 연대와 협력을 요청했지만 최근 그의 정치적 입지는 독일 내부의 반(反)다문화, 반(反)이슬람 정서로 인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분명한 것은 독일 사회가 다문화주의 정책의 실패를 천명하면서 이민자의 통합을 하나의 ‘골치 아픈’ 숙제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전(前) 대통령 사르코지(N.Sarkozy)도 2011년 TV 생중계 방송을 통해서 다문화주의는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방송에서 사르코지는 “우리는 공동체들이 서로 공존하는 사회는 원하지 않는다”면서 다문화사회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담화를 남겼고 “프랑스에 있다면 단일 국가 공동체에 동화돼야 하고,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면 프랑스에서 환영받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했다. 즉 이는 프랑스 사회에 필요한 것이 여러 개의 복수 문화의 공존보다는 단일 공동체에 동화된 하나의 사회적 통합이라고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유와 평화를 기조로 내세우는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똘레랑스(관용)의 나라’, ‘이민자의 낙원’으로 일컬어져 왔지만 현재 프랑스에서 다문화주의는 많은 논란과 갈등의 씨앗 개념이자 실제가 되고 있다. 

 

 
 

 

다문화사회를 전복하는 대응과 불안, 그리고 교육

  유럽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다문화주의 담론은 단순히 이상적인 문화다양성의 공존과 조화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사회적‘통치성’(Governmentality)의 이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흔히 한 사회의 다문화주의를 이해할 때 용광로, 샐러드 그릇, 모자이크, 무지개 등에 비유하면서 이질적인 복합체 간의 공존, 상호 존중의 가치를 강조해 왔지만, 국민국가 체제에서 다문화적 ‘공존’은 여전히 요원한 문제라는 점을 직면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경계할 것은 소위 유럽 선진국들의 다문화 갈등을 반(反)이주민, 반(反)다문화 담론의 도구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관주도형 다문화정책과 시민사회의 다문화인식 개선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오늘날 한국형 제노포비아가 우리사회의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미디어 속의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외국인’게스트가 표면적으로 인기를 끌고, 다문화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지만, <2015년도 다문화 수용성 조사> 연구 결과를 비롯해 일련의 언론 보도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 이중적 시선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 패러독스가 우리의 현실이다. 머리로는 어렴풋이 다문화사회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태도와 행위에서는 다문화사회를 전복하려는 저항과 불안 심리가 분열증적으로 작동하는 이중성이 나타나고 있다. 다문화에 대한 얕은 수준의 호기심과 이주민에 대한 온정주의적 시선은 유럽이 오랫동안 감행했던 다문화정책의 표면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에 우리사회에서 다문화 논의에 대한 냉철한 고민과 신중한 성찰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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