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은 / 다빈치교양대학 교수

남상(濫觴)과 중앙대 100년

오창은 / 다빈치교양대학 교수

  최초의 서구 대학인 이탈리아의 살레르노 대학(1057년)은 의학을, 볼로냐 대학(1088년)은 법학을 가르치고 배우기 위한 선생들과 학생들의 자유 계약 조직이었다. 이러한 독립적 아카데미의 전통은 결국 교회의 권위와 싸우는 르네상스의 기반이 됐고, 근대 학문이 발아하는 토양이 됐다. 한국대학의 경우 저항적 성격, 그리고 압축적 성장이라는 특성을 갖기에 서구대학과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100년의 역사를 맞이한 중앙대도 마찬가지의 특성을 갖고 있다. 중앙대는 1916년 중앙교회 정동유치원 분원으로 출발했다. 1918년에 분원에서 독립했기에, 이 때를 중앙대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당시, 창립 멤버는 박희도·장락도·유양호였다. 이들 창립자들은 기독교적 신념에 따라 중앙유치원과 중앙보육학교를 설립했다. 중앙대 역사에서 큰 전환점은 1932년 임영신이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하면서였다. 임영신은 해방 이후, 초대 상공부장관을 역임했다. 이때의 권력을 이용해 중앙보육학교를 종합대학인 중앙대학교로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중앙유치원, 중앙보육학교, 중앙여자대학교의 전통 속에서 보수적 성향이 강했던 중앙대학교의 기풍이 변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4·19혁명이었다. 중앙대는 서울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총 6인의 희생자를 냈을 정도로 혁명에 적극 참여했다. 4·19혁명으로 학풍이 변해, 당시 총장이었던 임영신이 물러나야 했으며, ‘의혈탑’과 ‘4·19학생관’(현 학생회관)이 건립됐다. 중앙대에서 ‘의혈’이라는 저항적 전통은 이렇게 만들어졌으며,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한국대학의 압축성장은 중앙대의 위기도 불러왔다. 임영신의 아들인 임철순 이사장이 1979년 정부의 수도권 분교설립 유도 정책에 따라 안성 캠퍼스를 무리하게 조성했다. 이로 인해 재단의 재정적자가 누적됐고, 불법 비자금 조성이 발각돼 1987년 학교에서 물러나야 했다. 한국사회와 대학의 압축 성장이 분교설립, 비자금 조성, 대학운영의 전횡으로 이어진 것이다.

  유치원에서 시작해 한국의 중요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한 중앙대가 10월 10일 ‘개교 100주년 기념식 및 뉴비전 선포식’을 가졌다. 옛 고사에 ‘남상(濫觴)’이라는 말이 있다. ‘배를 띄울 정도의 큰 강물도 그 시작은 술잔을 띄울 정도의 작은 물에서 비롯됐다’는 뜻이다. ‘작은 술잔’을 띄우던 물이, ‘큰 배’를 띄울 수 있는 종합대학이 됐다.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힘껏 기념할만한 일이다. 미래의 새로운 중앙대 1백년을 위해서는 대학의 자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앙대의 미래는 서구근대·혁명성·압축성을 긍정적 힘으로 전환하면서도, 학생과 교수(교직원)가 어우러지는 자율적 공동체성을 얼마나 강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새로운 발전계획인 ‘뉴비전’의 실천도 자율성에 기반한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참여 속에서 가능하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