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나친 인권 존중

  지난달 27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교육청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서울학생 두발 자유화를 향한 선언’을 발표했다. 교육감은 “두발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자기결정권의 영역에 해당해 기본적 권리의 내용으로 보장받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번 선언은 두발 길이 자유화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두발 상태 자유화의 적극적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

  두발 자유화는 신체의 자유라는 인권 존중의 측면에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지만 한편에서는 이를 ‘지나친 인권 존중’이라는 말로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려던 것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해가 되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권 존중에 지나침이란 있을 수 없다.

  ‘지나친 인권 존중’이라는 말은 학생과 성인이 가질 수 있는 인권의 정도가 다름을 내포한다. 그 누구도 성인의 두발을 규제하지 않고, 규제를 받지 않는 것에 대해 ‘지나친 인권 존중’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즉 이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인권을 침해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두발 자유화가 학생들의 방종이나 교권침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럼에도 두발 자유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근거 없는 주장들을 내세운다. 두발 자유화가 실제로 학생들의 방종을 야기한다고 가정해도, 누구에게도 학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자격은 없다. 두발 자유화가 결국 교권침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인과관계 자체를 잘못 파악한 것이기도 하다. 교권침해는 교사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이며, 학생의 인권을 존중해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두발 자유화 이슈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타자화된 집단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변화가 일어나면 이상하게도 그 집단 이외의 사람들이 부작용을 우려한다.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기 위한 #MeToo 운동에 대해서는 ‘취지는 좋지만 악용될까 두렵다’고, 동성결혼 합법화 운동에 대해서는 ‘어린이들이 따라 할까 두렵다’고 우려한다. 이런 열렬한 반대는, 어쨌든 걱정되는 게 많으니 인권을 침해해도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지나친 인권 존중이라는 모순적인 말로,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는 말로, 인권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들이 비난받는 일은 흔했다. 그러나 변화의 영향을 ‘부작용’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 바라봐야 한다. 미래의 어느 날, 학생의 두발을 규정했던 지금을 떠올리며 그런 ‘폭력적인 시절’도 있었음을 추억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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