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척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임신중절을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포함시키는 ‘의료관계 행정 처분 규칙 일부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에는 인공임신중절을 집도한 의사를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전면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인 및 해결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여성과 의사의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작년 11월, 청와대는 ‘낙태죄’ 폐지 청원과 관련해 답변을 내놓은 적이 있다. 청원의 내용은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청원은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가 답변해야 하는 기준을 넘었고, 조국 민정수석은 “내년,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하고, 현황과 사유를 파악하겠다”고 답했다. 심지어는 현행 법제를 비판하면서, 임신 중절의 법적 책임을 국가와 남성을 제외한 여성만 지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한 바 있다.

  그러나 2018년 돌아온 것은 임신중절을 집도한 의사를 ‘처벌 강화’하겠다는 행정 처분이다. ‘페미니즘 정부’를 자처했던 이 정부가 국민의 이야기를 듣고는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2016년 보건복지부는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에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한 의사를 최대 12개월까지 자격 정지시키는 내용을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정부의 이러한 결정에 여성들은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정부의 입장은 달라진 것이 없다.

  지난 5월 열린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사건 공개변론에서 법무부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는 국가의 책무이고,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형법 제251조(영아살해)는 “분만 중 또는 분만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부분으로 살인의 대상을 태아가 아니라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태아로 한정시켰다. 태아는 형법상 살인의 대상이 아니므로 만일 산모를 폭행해 태아가 죽었을 경우, 태아의 죽음에 대해 가해자는 무죄다. 그러나 여성이 모자보건법 제14조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않고 임신중절 수술을 한 경우에는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에 따라 태아의 죽음에 대해 유죄가 된다.

  태아가 폭행당해 죽을 경우에는 생명권이 인정되지 않지만, 임신중절수술의 경우에는 갑자기 생명권이 인정된다. ‘낙태죄’를 주장할 때 ‘태아의 생명권’을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의문이 든다. ‘낙태죄’라는 것이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빼앗기 위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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