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영 / 한림대학교 고령사회연구소 조교수

[한국 사회와 죽음] ➀ 자살의 사회적 이해와 자살예방정책


  17세기말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D.Durkheim)은 개인을 자살로 이끄는 사회적 요인에 주목했다. 그가 지목한 자살의 근본 원인은 신경쇠약이나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 아닌 개인과 사회의 관계 속에 있었다. 뒤르켐이라면 ‘자살공화국’ 한국을 어떻게 진단했을까. 이번호에서는 뒤르켐이 분류한 자살유형으로 한국 사회의 자살 현상을 진단해보고 자살 예방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자살의 사회적 이해와 자살예방정책 ➁ 미디어 속 죽음 ➂ 과로사회와 과로사 ➃ 웰다잉-어떻게 죽을 것인가

   

뒤르켐의 자살론과 자살예방정책

 

   유지영 / 한림대학교 고령사회연구소 조교수

  

  자살을 사회적인 문제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1897년 에밀 뒤르켐(D.Durkheim)이 제시한 “자살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뒤르켐은 자살이 개인적 요인이 아닌 사회적·구조적 요인으로 인한 결과라고 주장했고, 자살을 사회적 통합과 사회적 규제라는 두 가지 차원을 축으로해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여기서 사회적 통합이란 타인이나 사회와의 유대관계를 의미하며, 사회적 규제는 개인에 대한 사회적 규칙이나 규범의 영향력을 의미한다. 
  뒤르켐이 제시한 자살의 유형을 하나씩 살펴보면 첫째, 이기적 자살(Egoistic Suicide)이 있다. 이는 개인이 사회에 통합되지 못해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지지를 잃음으로써 고립감, 소외감에 빠져 발생하게 된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사회적 유대가 결여되는 경우에도 사회적 통합이 결여되기 때문에 자살이 발생할 수 있다. 독신자의 자살률이 기혼자보다 높게 나타나거나, 강한 사회적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가톨릭 신자들보다 개인을 중요시하는 개신교도들의 자살률이 높게 나타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둘째, 이타적 자살(Altruistic Suicide)은 이기적 자살과는 반대로 개인이 사회에 지나치게 통합돼 있어 자살로 인한 사망 자체가 사회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할 때 발생하게 된다. 군대조직과 같이 소속 구성원들에게 집단을 위한 헌신과 충성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공동체에서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전쟁터에서의 육탄돌격대, 일본의 가미가제, 할복 등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셋째, 아노미적 자살(Anomic Suicide)은 집단이나 사회의 규범이 느슨한 상태에서 개인적 욕구가 실현되지 않는 경우 발생하게 된다. 개인의 현재와 미래의 역할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경제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 사회가 적절한 규제를 하지 않으면 자살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벼락부자가 된 경우, 경제공황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당한 경우에 발생하는 자살 등이 이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숙명적 자살(Fatalistic Suicide)은 사회적 구속의 정도가 높은 사회에서 발생하게 되는데, 개인에 대한 사회의 규범에 의한 구속력이 너무 강해 더 이상의 희망을 발견할 수 없게 될 때 유일한 탈출구로써 자살이 발생하게 된다. 즉, 개인의 욕구가 과도하게 억압되면 자살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녀가 없는 기혼여성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죽는 자살이나, 고대 인도에서처럼 왕이나 신하가 죽었을 때 노예들이 함께 순장되는 죽음 등이 이에 해당된다.

 

 

쓸쓸한 한국인, 높아지는 자살률

 
  뒤르켐의 자살유형 중 한국사회의 자살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유형은 이기적 자살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사회적 유대감이 붕괴돼 사회적 상호작용이 질서있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즉, 사회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문제상황을 사회질서 내에서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살이 증가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살은 역으로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생명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사회의 통합된 가치관을 약화시켜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자살의 영향요인으로 사회구조를 강조하는 뒤르켐의 관점에 따라 주로 언급되는 사회적 요인은 가족 통합이다. 일반적으로 자녀가 있는 사람들의 자살률이 낮고, 부모의 부재나 재혼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자살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산업사회가 진전될수록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가족이 사회적 충격을 흡수하는 안전지대로 작용하기는 점점 어려워지므로, 이런 상황에서 국가나 사회단위 차원에서 보호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은 물질적, 정서적 어려움에 직접적으로 노출되고, 사회적 통합이 떨어지게 돼 자살위험이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적 신뢰감이 부족하고 사회적 지지망이 낮아서 발생하는 자살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시스템의 강화나 작은 공동체 운동을 통해 긍정적인 소속감, 관심, 배려, 공존, 평화의 체험과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지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사회에서 생명존중사상을 고취하고, 자살위기상황에 대한 대처나 자살기도자에 대한 사후 지원 등 자살예방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자살예방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이러한 관점에서 정부에서는 보건복지부의 주도하에 2004년 ‘제1차 자살예방 5개년 기본계획’, 2009년 ‘제2차 자살예방종합대책’, 2016년 ‘제3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수립해 자살예방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선, 제1차 자살예방 5개년 기본계획은 환경적 접근과 대상자적 접근을 포괄하는 추진체계 구축, 생애주기와 사업단계별 추진체계 구축,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역할분담과 협력체계 구축을 통한 사업추진을 원칙으로 12대 과제를 제시했으나, 자살률 감소에는 실패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정책범위를 정신질환을 가진 개인 중심으로 한정해 사회·환경변화에 따른 지원책 마련에 미흡한 측면이 있었던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자살 고위험자의 사회경제적 위기 극복을 위한 지원 대책이 미흡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따라서 제2차 자살예방종합대책에서는 제1차 기본계획의 문제점을 최대한 개선하기 위해 개인의 정신보건 분야와 사회·환경적 접근을 통합적으로 적용해 능동적이고 사전예방적인 자살예방대책을 수립한다는 목표를 지향하며 10대 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정책범위를 개인중심의 정신보건사업으로 한정하지 않고, 사회경제적 지원 방안이나 사회환경 개선 등의 방안을 대책에 포함했다. 하지만 시급성과 실효성에 대한 체계적 고민이 부족해 실제적인 성과를 도출해 내지는 못했다. 또한 사회안전망으로써의 취약노인 위기대응, 위기가족 및 청소년 등에 대한 경제적, 심리사회적 긴급지원 등의 사회적 지지에 대한 내용은 미흡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통합적 자살예방 거버넌스 구축은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
  제3차 자살예방기본계획에서는 10대 과제로 ▲자살관련 사회인식 개선 ▲자살예방을 위한 사회적 지지체계 마련 ▲자살위험 환경 개선 ▲생애주기별 자살예방 대책 추진 ▲자살 고위험군 지지체계 강화 ▲자살 위기대응 및 사후관리체계 마련▲지역사회 자살 대응 역량 강화 ▲정신건강 인프라 강화 ▲게이트키퍼(Gatekeeper) 교육 등 자살예방 인력 확충 ▲근거 기반 자살예방 연구체계 마련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안전망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전략에 맞춰 기초지자체 단위에서도 꾸준히 각 지자체의 특성에 맞는 자살예방사업들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그 효과는 미흡한 상황이다.
  하지만 2018년 1월, 정부에서는 또다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안은 외국 정책사례와 지방자치단체의 우수사례를 참고해 자살의 진행과정에 따른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자살고위험군 발굴을 위한 전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서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종교기관 및 시민단체 등 지역사회 풀뿌리 조직, 이·통장, 대민접촉이 많은 택시기사, 방문서비스 제공인력 등을 게이트키퍼로 우선 교육, 활용할 계획이다. 자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해결 가능한 사회문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확정된 실천계획인 셈이다.
  뒤르켐의 자살론과 한국의 자살예방정책은 자살현상을 사회문제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 분야에 뛰어난 사회시스템을 갖춘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에도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자살을 사회적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자살은 개인과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문제이므로, 우선적으로는 지역사회 내에서의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구축한 후 개인적 요인을 고려한 개입을 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단, 자살이라는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는 점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요인들이 밝혀질 수 있다는 점은 반드시 고려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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