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8.12.8 토 16:17
기획사회
[사회] 숫자에서 다시 사람으로, 문학적으로 상상하기정우신 / 시인·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조현준 편집위원  |  dision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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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호]
승인 2018.05.29  1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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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국가 한국과 대안의 상상] ④ 문학적 상상력, 비판정신과 연대정신

  기업국가화 되어가는 현대 사회는 인간의 다양하고 복잡한 삶의 형태를 숫자와 표, 그래프 등으로 표시하려는 정치경제학적 상상력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그 숫자와 도표에는 실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인가. 앞서 구조적 대안으로서 사민주의와 복지국가 담론을 살펴봤다. 이번 연재에서는 개별적 대안으로서 정치경제학적 상상력과 대비되는 ‘문학적 상상력’에 대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숫자에서 다시 사람으로, 문학적으로 상상하기

 

정우신 / 시인·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우리는 숫자로 된 세계에 던져져 있다. 학점, 석차, 어학 점수에서부터 금융, 경력 그리고 소유되는 물질들까지 수량화돼 개인을 이해하는 기표로 작동된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이렇게 구성돼 있을까. 몇 가지 지표를 통해 한 인간과 그의 삶에 접근할 수 있을까. 정치경제학적 상상력이 이같은 사유구조를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문학적 상상력은 정치경제학적 상상력이 놓치고 있는 부분들 혹은 당연히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문제를 제기한다.

   
 

  문학적 상상력이란 서사적 상상력과 시적 상상력으로 구성된다. 서사적 상상력은 대상의 역사나 이야기를 기억하고 상상하는 능력이며, 시적 상상력은 대상의 내면과 상태를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치경제학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행동한다면 우리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고 기대하면서 이 글에서는 두 시인(김수영과 한용운)이 삶과 현실에 어떻게 응전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를 재구축하는 서사적 상상력과 비판정신: 김수영

 

  문학의 기본토대로 여겨져 온 서사는 이야기 혹은 역사로 바꿔 살펴볼 수 있다. 이야기와 역사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도록 만들어주면서 동시에 인간으로 규정되게 하는 명칭이기도 하다. 이러한 서사는 주체와 다른 주체(타자)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어떤 대상이나 사물과 만났을 때 우리가 어디에 놓일 수 있는지에 대한 통시적인 관점을 확보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야기와 역사를 인간과 크게 떼어놓고 볼 수 없듯이 문학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사(이야기와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지금-여기를 다채롭게 조명할 수 있는 눈이 생긴다면―비록 숫자로 환원된다면 비루해보일지라도―인류 전체의 문명에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서사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상상하다보면 이는 곧 비판정신이 될 것이다. 이러한 비판정신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복합적으로 할 수 있는 감각과 감정의 차원에 도움을 주는 중요한 에너지가 된다.

   
  ◆ 김수영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수영은 한국현대사(해방과 한국전쟁, 거제도 포로수용소, 4·19와 5·16)를 대부분 직접 경험해서 그런지 몰라도 역사성이라는 하나의 축을 가졌다. 그는 역사에 대해 예민하게 의식하며 시를 쓰고 생활을 뚫고 나갔다. 김수영이 역사에 대해 사고하고 이를 작품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는 역사를 그대로 기술하거나 재현하지 않고 개인(시적 주체)과 끝까지 연동시켜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해낸다. 이러한 에너지가 김수영의 대명사이기도 한 ‘자유’ 혹은 ‘사랑’이라는 관념으로 전이됐던 것이다.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는 이와 같은 사유구조나 알레고리가 단순해보일지 몰라도, 김수영이 현실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을 당시에는 최선의 노력을 통해 겨우 한 치 앞을 내다본 것이다.

  우리는 이 지점을 주목해야 한다. 서사(이야기·역사)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자유’와 ‘사랑’이 됐는지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도에 필요한 재료는 서사적 상상력이고 얻게 되는 것은 개인과 세계의 관계 재정립이다. 이 차원은 성공과 실패도 없고 어떠한 물리적 변화도 없다. 다만 우리는 ‘사랑’과 ‘자유’를 의식하기 이전의 세계에서 꿈틀할 수 있다. 김수영은 정신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역사성을 있는 그대로 작품에 노출시키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현실과 대립하고 있는 개인을 주체화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시적 주체는 시인 김수영을 폐허가 된 세계에서 구원하고 위로해주는 존재가 됐다.

  그가 작품에서 개인을 주체화시키는 과정은 너무나 절박했다. 생활과 정신을 마비시키는 거대한 ‘적’을 찾기 위해 그는 자신을 대상화시키며 ‘나’를 분열시키기도 하고, 아내를 등장시켜 ‘적’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끝내는 자신의 생명을 시보다 먼저 보내게 되는 비극에 놓였지만 그는 비주체적 개인을 ‘사랑’과 ‘자유’를 인식할 수 있는 ‘개인’의 차원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김수영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또 다른 자신을 찾는 자는 적겠지만, 그럼에도 서사적 상상력은 우리가 역사의 이면과 무의식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생활에 침투해 있는 그 빈틈을 집요하게 파헤칠 때 우리는 세계를 다시 구축할 수 있는 비판정신을 갖게 될 것이다.
 

존재를 발견하는 시적 상상력과 연대정신: 한용운
 

  동학운동과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한용운에게 연대는 현실을 돌파해내기 위한 정신이었다. 그는 독립운동에 참여하며, 우리 민족의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글을 작성했다. 승려가 돼 조선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한 《조선불교유신론》(1910, 1913)을 집필해 기존 불교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당대의 불교, 나아가 조선이 추구해야할 방향을 제시해 공동체적인 삶을 꿈꿨다. 그런데 한용운의 다양한 이력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시인으로서의 활동이다. 그는 《님의 침묵》(1926) 한 권만을 저술하고 문단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시적 성취는 여전히 높이 평가되고 있다.

   
  ◆ 한용운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수영이 역사성을 염두에 두고 서사적 상상력을 작동시켰다면 한용운은 연대(공동체)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으로 시적 언어를 극대화시켰다. 식민지 상황에서 그는 근대적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의식은 이미 근대적으로 변하고 있었지만 수동적이고 핍박받는 나날에서 자아는 쉽게 주체화가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한용운은 언어에 대한 사유를 심화시키는데 그것이 ‘화자-님’의 관계 설정이다. 폐허가 된 현실 속에서 화자(개인)는 그 무엇도 대상화(타자화)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용운은 작품 속에서 ‘님’이라는 임의의 존재를 등장시킨다. ‘님’은 자아를 찾을 수 없는 자신이기도 하면서, 사랑하는 타자이면서, 동시에 그 무엇으로도 지칭할 수 없는 존재다. ‘화자-님’의 관계 설정으로 인해 ‘사랑’과 ‘이별’의 관념은 새로운 차원을 획득하고 이러한 언어는 우리를 ‘화자-님’ 이전의 세계 혹은 그 이후의 세계로 이동시켜준다. (시적)언어에 대한 상상력이 개인을 세계 속에서 재배치시키고 다른 공간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방법은 연대정신을 강화한다. 왜냐하면 언어에 대한 상상력이 촉발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우리(주체-타자)’가 형성되기 이전의 정신을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은 우리가 언어를 인식하기 이전의 상태나 언어 너머의 그 무엇을 상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언어에 대한 다양한 탐구 중에서도, 특히 시적 언어의 탐구는 우리를 어떤 근원이나 존재의 차원으로 이끌어준다. 일상 언어와 구별되는 시적 언어는 기존의 질서를 새롭게 확보해주고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의 일상성을 다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시적 언어를 생각해보는 일은 지금-여기의 시·공간에서 어떤 본질로 우리를 이동시켜준다는 점에서 다른 차원을 제시한다. 그곳은 지금-여기의 법과 제도와 질서와 물질이 없는 우리 존재의 본질이 흐르는 장소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우물에 머리를 내밀고 물에 비친 우리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때, 우리의 연대정신은 자연스럽게 강화될 것이다.

  시적 상상력은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재배치할 수도 있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정신이다.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시적 상상력은 언제나 연대의 가능성을 함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학적 상상력은 정치경제학적 상상력과 대척점에 놓여있지 않다. 문학적 상상력이 정치경제학적 상상력을 새롭게 재편하고 구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뤄진 요소들은 정치경제학적 상상력으로 이뤄진 체계에 침투해 우리가 현실적이라고 판단하는 이성을 변형시킬 수 있다. 물론 정치경제학적 상상력은 문학적 상상력의 부분이 아니다. 포괄되지도 않고 어떤 조건으로 성립되지도 않는다. 각각의 관점은 상상력의 거대한 바퀴 위에서 부분과 전체가 돼 서로를 지탱하며 구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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