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울 / 사회학과 석사과정

[원우기자]

엄벌 없는 ‘엄벌주의’의 모순을 넘어


정다울 / 사회학과 석사과정

  지난 5월 18일(금) 대학원(302관) 301호에서 사회학과가 주관하는 <사회학과 콜로키움: 외부연구자 초청강연>이 열렸다. 사회학과에서는 매학기 콜로키움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번 학기에는 신진연구자 논문 발표, 신임교수 특별강연, 외부연구자 초청강연 등이 진행되고 있다. 이 날 행사에서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추지현 박사가 ‘엄벌 없는 엄벌주의: 왜 성폭력 “처벌”을 이야기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엄벌주의란 범죄나 일탈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불관용이나 가혹한 형벌 부과를 지지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점점 더 개인화되는 후기 근대사회의 불신과 불안은 안전에 대한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 발표자는 이를 ‘잠재적 피해자’로서의 불안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불안 속에서 잠재적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 개인들을 선별해내는 것이 중요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위험한 개인의 선별’을 가능케 하는 엄벌주의의 핵심은 피해/가해, 선/악, 보호/배제의 이분법이다. 이를 통해 이전의 국가-범죄자라는 2자 관계에서, 국가-피해자-범죄자 간의 3자 관계의 문제로서 형벌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엄벌주의가 성폭력과의 깊은 연관성을 가지는 배경은 무엇인가. 발표자는 이를 사법 민주화와 청소년 성보호 담론에서 찾는다. 첫 번째 배경은 사법 민주화, 즉 사법부의 독립을 강화하고 인권침해적인 처벌 제도를 청산하고자 하는 시도다. 피해자의 인권 소외 문제가 부각되면서 피해자 보호의 외양을 가진 ‘법 감정’의 반영 요구가 대두됐다는 것이다. 둘째로, 경제위기로 인한 가족 해체의 경향이 뚜렷해지고, 이로 인해 청소년의 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담론이 증가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등장한 엄벌주의는 피해를 도구화했다. 피해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재하고 피해자의 권리 및 지위 확장과 연동되지 못하는 피해자 보호 담론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납득시키고 스스로 호소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했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는 이러한 호소를 통해야만 가부장적 성규범에 부합하는 ‘피해자’가 되며, 이에 실패한 피해자는 ‘보호가치가 있는 피해자’가 되지 못한 채 배제된다. 이는 피해자로서의 여성 집단을 규범화하는 제도를 재생산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고, 피해는 부정의함의 기표로 부유(浮游)하게 됐다.

  발표자는 한국 형사사법 시스템의 ‘기이한 혹’이 돼버린 엄벌주의를, 현재의 ‘미투 운동’과의 관련 속에서 사유하자는 제안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피해/가해의 전선(戰線) 긋기를 통해 여성의 피해 사실을 강조하는 ‘피해의 정치’는, 사건을 피해자의 문제로 축소하거나 운동의 범주를 개인화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법과 처벌 중심의 운동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넘어서 젠더 규범을 해체하려는 시도로 이어져야 하며, 피해의 정치가 아닌 젠더 정치로서의 ‘Me too’와 ‘With you’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강연에 참석한 사회학과의 한 원우는 “피해/가해, 선/악, 보호/배제의 이분법을 핵심으로 하는 엄벌주의가 한국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엄벌이 없다’는 강연 내용에 동의한다”면서, “단지 역사·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집합적인 에토스(Ethos)를 형성하고 있다는 말에 공감했고, 가부장적 경로의존성을 답습하는 법 논리를 극복하기 위한 방향을 고민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연대하며 “With you”라고 외치는가. 이번 강연은 여성들의 ‘피해’의 의미를 젠더 정치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큰 과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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