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8.8.9 목 09:40
기획학술
[중앙아카데미아] 애니메이션으로 바라본 1960~1970년대 북한
임해솔 편집위원  |  tuddldos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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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호]
승인 2018.05.29  15: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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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아카데미아: 『1960~1970년대 북한 애니메이션 연구』 홍주옥 著 (2018, 영상학과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영상학과 홍주옥의 박사 논문 『1960~1970년대 북한 애니메이션 연구』를 통해 1960~1970년대에 북한 애니메이션은 어떤 양상을 띄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애니메이션으로 바라본 1960~1970년대 북한


홍주옥 / 첨단영상대학원 영상학과 박사


  우리 민족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분단된 지도 어느새 70년이 됐다. 국내에서 북한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나, 북한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고 연구가 시작된 것은 한참 후인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다. 하지만 여전히 그 양은 매우 미비하고, 내용 면에서도 남북교류의 관점이나 1980년대 이후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 주를 이룬다. 북한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됐는지, 또 현재의 특징들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 그 과정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1960년대부터 1970년대의 시기다. 북한이 다른 사회주의국가들과 다르게 지금과 같은 김일성 유일사상 체제의 폐쇄적인 국가가 된 것은 1967년에 김일성이 내린 5·25교시를 통해서다. 그리고 당시 후계자가 되기 위해 권력투쟁 중이었던 김정일과 그의 삼촌 김영주가 김일성을 경쟁적으로 신격화하고 우상화하며, 김일성 유일사상은 순식간에 북한 사회 전체의 절대적인 통치이념이자 새로운 정서구조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김정일이 후계자로 정해진 1970년대에는 이론적인 틀을 갖추며 더욱 견고하고 철저하게 북한 사회를 지배하는 사상이 된다.

  북한 애니메이션의 경우도 1967년에 유일사상이 등장한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북한은 그 중심에 ‘아동영화이론’이라는 김정일의 지도가 있었고, 이를 통해 그들의 애니메이션이 세계 유일의 ‘주체적 아동영화’가 됐다고 선전한다. 김정일의 ‘아동영화이론’은 무엇이며, 북한 애니메이션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준 것일까.


북한 애니메이션의 약사(略史)

  먼저 북한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간략하게 살펴보면, 크게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이르는 김일성 지도기와 1960년대 후반에서 2011년에 이르는 김정일 지도기, 2012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김정은 지도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김일성 지도기에는 1955년에 만화영화의 시험작이 제작됐고, 1957년에 ‘만화·인형영화 제작단’이 설립됐다. 그리고 1960년에는 북한 최초로 만화영화 <금도끼와 쇠도끼>와 인형영화 <신기한 복숭아>가 제작됐다. 1967년 이후, 5·25교시의 영향으로 김일성을 직접적으로 찬양하는 애니메이션이 잠시 제작되기도 했으나, 김정일 지도기에는 유일사상에 관한 주제는 제외되고 우화와 동화 형식으로 어린이를 교양하는 방식의 애니메이션이 지속적으로 제작된다. ‘만화·인형영화 제작단’은 1965년에 ‘조선아동영화촬영소’로 변경되고, 1971년에는 ‘조선과학교육영화촬영소’로 확대·통합됐으며, 1996년에는 애니메이션 분야만 독립해서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가 새롭게 설립됐다.

  이 과정을 통해, 북한 애니메이션은 기술적·양적인 성장을 이뤘으며, ‘우리식 아동영화’와 ‘주체적 아동영화’라는 이름으로 북한 애니메이션의 전형이 성립됐다. 한편 북한은 1980년대 중반부터 유럽국가들을 대상으로 합작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이 디지털화, 남한 애니메이션 회사들과의 합작도 이뤄졌다. 하지만 김정은 지도기에서는 김정일 시대와 달리 우화 형식이 사라졌고,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는 ‘조선4.26만화영화촬영소’로 명칭이 변경됐다.


김정일의 ‘아동영화이론’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1960년대 후반 북한 애니메이션은 큰 변화를 겪는데, 그 중심에는 김정일의 ‘아동영화이론’이 있었다. ‘아동영화이론’은 김정일이 후계자 경쟁에서 자신의 주특기인 영화와 문화예술 분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김일성의 신임을 얻고 유일사상을 절대화해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김정일은 신격화돼야 할 김일성의 이미지가 애니메이션을 통해 왜소화되거나 희화화되는 것을 경계했고, 한국전쟁 이후에 출생해 일본의 압제나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어린 세대들에 대한 사상 교육의 도구로서 애니메이션의 탁월함에 주목했다. 그리고 김정일의 ‘아동영화이론’은 김일성의 기존 교시 내용과 사회주의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아동영화이론’은 1973년에 발표된 『영화예술론』처럼 김정일이 직접 집필한 이론이 아니라 1971년부터 1974년까지 김정일이 애니메이션 분야를 지도한 내용들을 1990년대에 이르러 정리한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1971년 5월 1일의 「아동교양에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만들자」와 1974년 11월 6일의 「과학교육영화촬영소의 기본임무에 대하여」라는 담화문을 토대로 한다. 직접적으로 ‘아동영화이론’이란 명칭이 북한 자료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의 공식적인 통치가 시작된 1997년에 이르러서였고, 초기에는 김혜숙(‘아동영화이론’을 공식화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에 의해 주도됐다가 200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북한 언론에서 공공연한 사실로 취급됐다.

  ‘아동영화이론’에서 ‘아동영화’의 기본 대상은 유치원과 인민학교 어린이들이며, 기본 사명은 어린이들에게 혁명사상과 지덕체를 갖추게 해 든든한 공산주의의 후비대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 주제는 유치원과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의 내용과 공산주의적인 품성으로 제한됐다. 또한 창작방법론은 어린이들의 심리를 고려해 동화나 우화를 사용하는 것이고, 기본형상 수법은 환상, 의인화, 과장과 대비인데 다만 유신론적이어서는 안 되며, 사실주의적 표현을 벗어나서도 안 된다.

  이처럼 김정일의 ‘아동영화이론’은 매우 정치적이며, 객관성과 논리성을 갖춘 ‘이론’이라기보다는 지침에 가깝다. 그리고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아동영화이론’이 북한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발전 가능성을 오히려 축소하고 제한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동영화이론’은 발생과정과 그 내용에서 북한이란 특이한 사회주의체제의 독특함이 그대로 반영돼 있으며, 북한 애니메이션을 시대별로 구분하고 분석하는 기준으로서 가치가 있다.


시기별 작품 분석 및 결론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본 연구에는 김정일의 ‘아동영화이론’의 등장 전과 후로 시기를 구분해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북한 애니메이션 작품을 서사방식과 창작방식 면으로 분석했다. ‘아동영화이론’ 등장 전에는, 서사방식 면에서는 북한 체제를 위해 모범이 되는 일화(逸話)를 소재로 하거나 전래동화를 각색하되 유신론적 특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용감한 아동단원>(1968)에서는 소년이 화로에 수류탄을 넣어 일본인들을 물리치고, <금도끼와 쇠도끼>에서는 이후 작품들에서는 사라진 산신령이 등장한다. 창작방식 면에서는 환상과 과장 방식이 이후 시기보다는 제한적으로 사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아동영화이론’ 등장 후에는, 서사적인 면에서는 우화와 동화가 두드러지고, 창작방식 면에서는 의인화가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됐다. 실례로, ‘혁명적 본보기 작품’으로 제작된 <나비와 수탉>(1977)은 힘세고 포악한 수탉을 작지만 지혜로운 나비가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항일무장투쟁을 우화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꿀꿀이의 분수 공부>(1977) 등의 지적 교양 주제에 관한 작품이나 <그림토끼들의 운동회>(1977)처럼 토끼그림이 살아나는 등의 환상 기법의 작품들도 많이 제작됐다.

   

▲ <다람이와 고슴도치>(1977) 장면 / 출처: 유투브(youtube.com)

  결론적으로, 북한에서 1967년에 시작된 김일성 유일체제는 김정일의 ‘아동영화이론’이란 형태로 북한 애니메이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1969년부터 김정일이 사망한 2011년까지 다른 방식의 애니메이션은 북한에 존재할 수 없었고, 현재도 북한 애니메이션 창작에서 정치적인 목적이 가장 중요시된다.

  본 논문에서는 획일적일 수밖에 없는 북한 애니메이션의 원인을 초기 역사를 통해 찾아 보았다. 앞으로는 이후 시기에 대한 연구나 북한 애니메이션의 미학적 특징에 대한 연구, 또는 외국과의 합작이 북한 애니메이션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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