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호 /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제] 그 이름도 찬란한 비트코인 ④ 한국의 가상화폐 대응과 나아가야할 방안

   2017년 한국에는 ‘비트코인’ 광풍이 불었다.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를 새로운 형태의 지불수단으로 평가하는 한편, 투기적 거래를 우려하기도 했다. 가상화폐가 화폐의 기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국가의 대응 방법에도 정답이 없는 상황이다. 본 지면에서는 이 새로운 물결에 대해 네 번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가상화폐의 현재와 미래

송문호 /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과학기술의 발달은 법질서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돼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어왔다. 2016년 다보스포럼은 제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제시하면서 ‘디지털 혁명에 기반해 물리적 공간, 디지털적 공간 및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융합의 시대’로 정의했다. 초연결성, 초지능화, 사물인터넷,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지능정보사회로 변화되는 제4차 산업혁명이 어떠한 법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지 근본적으로 탐색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제4차 산업혁명이 전통적인 법적문제에 다양한 문제들을 제기하지만, 특히 가상(암호)화폐와 관련해서, 과학기술로 생성된 여러 가지 ‘가상적’ 존재들이 ‘재산상 이익’이나 법률상 ‘재물’로서 평가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전통소유권이론으로 본 가상화폐

  로크(J.Locke)는 소유권이란 의지를 가진 개인이 고통을 감수한 노동의 결과로서 얻은 것이므로 국가는 철저하게 이러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임무가 있다고 했다. 화폐는 자연상태에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한 것이며, 추상화 과정을 거쳐 재산축적을 정당화하는 결정적 수단이 된다. 로크의 노동이론은 간접노동, 화폐, 발명과 기술의 인정 등을 통해 물리적 노동만이 아닌 추상화되고 관념화된 재산이나 재산형성과정을 정당화한다. 또한 신흥 유산자계급의 정신적·물질적 가치의 향유를 정당화하고, 그들의 사회적 입지를 강화하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다.

  헤겔(G.Hegel)에 따르면 재산이란 개인적 자유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외부세계에 자기의 의지(Wille)를 투영시킨 것이며 재산은 개인의 의지와 인격을 객관화한 산물이다. 정신적 창작물도 자기 고유의 어떤 것이 ‘자신의 표현방식’으로 구현되면 타인이 이용할 수 있는 ‘물건’과 같은 외형적인 것으로 전환된다고 했다. 즉, 지식·학문·재능 등 무형의 자산도 외부로 표현되면 구성원의 승인을 통해 인격체들과의 관계에서 소유로 인정받아 공인된 물건과 동일시되며, 모든 가치는 화폐로 환원될 수 있다.

  가상화폐도 외부세계에 자기의 의지를 외부에 표현하는 외형화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헤겔이 말하는 지식·학문·재능 등 무형의 자산과 유사한 재산형태다. 따라서 추상적 관념이 외부로 표현되는 과정을 거쳐 사회구성원이 이를 승인한다면 배타적인 권리가 인정될 수 있다. 더욱이 가상화폐는 현실적인 물건 소유보다 이용할 수 있는 권리, 배타적인 지배 가능성 등을 특징으로 하므로 인격이론과도 모순되지 않는다.

  시민사회에서 각 개인은 계약을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실현하며 서로를 인정하게 된다. 칸트(I.Kant)는 소유가 국가에 의해서 비로소 정당하게 인정된다고 생각하지만, 국가는 사적 소유의 신성함을 옹호하고 그것을 보호하는 것을 중요한 임무로 한다는 자유주의적 입장을 견지한다. 그러나 국가가 소유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국가가 있은 이후 비로소 소유가 생겨나기 때문에 국가 자체의 복리를 위해 사적 소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했다. 헤겔은 자유의 완전한 실현은 국가의 영역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한다.

  추상법에서는 소유에서 드러난 자유의 실현이 이성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보다 높은 차원의 국가적 이성에 대해서는 언제나 제약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결국 사적 소유와 관련이 있는 규정들은 보다 높은 영역의 법에 의해, 즉 공동체와 국가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 헤겔은 “자유의 이념은 국가로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사적 소유에 예외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국가다”라고 했다. 결국 근대 소유권이론에 의하면 국가는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지만, 노동의 결과물로서 또는 개인의 의지와 자유에 기한 계약의 결과물로서 개인의 소유권은 국가가 입법기관을 통해 제정한 법률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화폐의 추상성과 가상화폐

  사실 화폐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심리적 구조물이며 다양한 물건들을 교환하는 보편적 기준으로 고도의 추상성을 본질로 한다. 즉, 화폐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에 의존해 보편적 전환성과 보편적 신뢰의 두 가지 보편적 원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보편적 의사소통은 근대의 소유권이론에서 상호인정관계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근대에 이르러 미래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그에 따라 신용거래라는 기적이 일어난 덕분에 신용으로서의 화폐는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현재 세계전체의 화폐 총량은 약 60조 달러지만 주화와 지폐의 총액은 6조 달러 미만이다. 돈의 90%, 우리 계좌에 나타나는 50조 달러 이상의 액수는 컴퓨터 서버에만 존재한다. 대부분의 상거래는 하나의 컴퓨터 파일에 들어 있는 전자데이터를 다른 파일로 옮기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실제로 돈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최근 들어 비트코인을 비롯한 다양한 가상화폐는 네트워크 영향력을 기반으로 기존의 제도적 화폐구조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방대하게 얽혀있는 네트워크 공간에서 참신한 교환가치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게 됐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실천을 통해 더 나은 화폐권력구조를 형성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는 네트워크 환경 속에서 실물로서의 화폐보다 디지털화된 코드만 유통되는 상태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원래 추상성을 본질로 하는 화폐의 특징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본질적인 문제는 국가의 제도권 화폐처럼 가상화폐도 사람들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가이다. 세계 경제가 데이터 기반의 경제로 변화하면서 이미 금융은 국경을 넘는 인터넷거래와 전자결제의 시대로 글로벌화 돼가고 있지만 아직 가상화폐를 화폐로 인정하는 국제적 협력시스템은 구축돼 있지 않다.

가상화폐와 국가

  비트코인에 대한 세계 각국의 입장은 화폐 인정, 거래 허용, 과세 여부에 따라 ‘허용’ ‘신중’ ‘무시’ ‘불가’의 네 가지 입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가상화폐는 국가와 국가가 제정한 법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가상화폐에 대한 ‘비관론’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과거와는 다른 전 세계적인 규제 움직임 때문이다. 현재 법무부는 가상화폐 관련 범죄를 형법상 사기나 횡령, 배임, 유사수신규제법, 범죄수익규제법 등을 적용해 수사 및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가상화폐를 둘러싼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결국 전통적인 근대 소유권이론들이 주장했던, 개인의 소유권은 국가와 법률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전통적인 소유권이론들은 개인들 간의 승인 또는 그와 유사한 사람들의 동의를 소유권의 전제로 한다. 그러나 소유보다는 이용이 주목적인 사이버접속 시대에는 근대의 전통적 소유관념이 흔들리게 된다. 미래에 대한 ‘신용’을 기초로 한 새로운 시스템으로서 가상화폐는 교환성, 편의성과 보편성이 기존의 제도 화폐보다 진일보한 형태다.

  가상화폐에 대한 효력이나 법적 문제들은 국가의 경제정책 또는 법률규제와 긴장 관계에 놓여있다. 통화정책은 한 국가의 화폐 공급, 유용성, 화폐가치, 금리 등을 경제 성장이나 안정성을 유지토록 하기 위해 수행하는 일련의 조치를 의미하며, 이를 통해 경기를 조절하고 실업률 등을 관리해야 하는 국가로서는 민간주도하에 있는 가상화폐가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상화폐가 주목을 받게 된 배경은 2008년 미국 서브 프라임사태와 2013년 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기존의 법정화폐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면서부터다.

  현재에도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기술발전에 힘입어 초연결성을 지닌 수평적인 대안화폐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미 게임머니, 신용카드사의 포인트, 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 등 다양한 대안화폐 등이 사용되고 있다. 향후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지방분권화 내지 공유경제를 중시하는 정책을 선택한다면 이러한 대안화폐 사용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또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성숙되고 남북 민간경제교류가 활성화돼 결제수단으로 ‘정치색이 없는 가상화폐’를 사용한다면 (전자)가상화폐의 새로운 장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 신용카드 사용이 일반화되기 전에 휴대폰을 이용한 첨단 핀테크 전자결제가 이미 널리 퍼져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