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제3의 기구가 필요하다

왜 피해자가 직접 싸워야만 하는가

  지난 5월 12일, 대학원(302관) 105호에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학문공동체의 역할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학문공동체 내 성폭력이 발생하고 재생산되는 구조를 반성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공동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진행된 토론회였다.

  최근 밝혀진 C강사 사건은 피해자가 소속된 집단이 직접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한 경우다. 문제는 이로 인해 피해자가 2차적 어려움에 봉착해야만 했다는 점이다. 토론회의 패널들에 의하면, 사건의 당사자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학업뿐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건강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C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에는 일본어문학전공의 K교수가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권센터에 접수된 피해자만 네 명이고, 아직 신고하지 못한 피해자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K교수는 피해자를 안성캠퍼스로 불러내 술자리에 참석시킨 후, 정류장까지 데려다준다는 명목으로 피해자를 차에 태운 뒤 강제로 키스했다. 이외에도 가슴을 만지거나 치마 속에 손을 넣는 등 많은 학생들에게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을 가했다. 이후에도 피해자들은 교수였던 K를 완전히 피할 수 없었다.

  이에 ‘일본어문학전공 K교수 피해자모임’은 직접 사건 해결 촉구를 위한 연서명을 받았고, 아시아문화학부 일본어문학전공 제38대 ‘KOTATSU’ 학생회는 지지성명을 발표했다. 서울캠퍼스 제60대 ‘온’ 총학생회(이하 총학생회)와 성평등위원회는 <당신에게 줄 카네이션은 없다>라는 제목의 성명문을 게시하고, 연서명을 대리 게시하는 등 적극적인 연대와 지지를 표하고 있다. 사건을 기록하고 알리기 위한 <중앙대 K교수 권력형 성폭력 기록보관소>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개설되기도 했다. 이처럼,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선 것은 또다시 학생들이었다.

 

 

 

대학 민주화 발목 잡는 사립학교법

  상황이 이러한데, 사립학교법(이하 사학법)의 한계는 사건 해결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좌절감마저 주고 있다. 2012년 이전에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처벌할 수 없게 만드는 사학법의 징계 시효 5년 제한은 이 경우 특히 치명적이다. 대학원생들이 겪는 피해는 주로 권력형 가해로, 재학 중에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사건 고발이 결국 자신의 학문적 생명을 갉아먹는 일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K교수 성폭력 가해와 관련해서도, 현재 인권센터에는 2012년 이전에 발생한 사건들만 접수된 상태다. 총학생회와 성평등위원회에서 게시한 성명서에 따르면, “인권센터에는 접수되지 않았으나 최근 5년간 K교수가 학내에서 저지른 성폭력 사건을 목격한 많은 이들”도 존재한다. 대학원의 구조상 대학원생은 재학 중에는 교수의 악행을 고발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피해자 중 대다수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야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밝히게 되는데, 징계 시효 5년의 제한으로 처벌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올해부터 사학법의 징계 시효는 최대 10년으로 연장됐다. 하지만 이 개정은 소급적용이 되지 않으므로, 결국 사학법상 피해자가 들을 수 있는 답은 “2012년 이전에 발생한 사건은 처벌이 어렵다”는 것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사학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몇 년째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비단 짧은 징계 시효 때문만은 아니다. 민주적인 절차와는 거리가 먼 조항이 버젓이 있기도 하고, 간략한 시행령으로 인해 사학법인 내 회계 및 인사 비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사학법이 과연 무엇을 보호하고자 생긴 법인지 그 존재 자체의 정당성에 의문이 든다. 사학법을 들어 성폭력 가해자의 징계가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은, 어쩌면 피해자의 인권 위에 ‘사학법인’의 권력이 있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한다.

피해자가 나설 필요 없는, 제3의 기구를 바라며

  한편 지난 23일, 인권센터 성폭력대책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K교수 징계 양정에 관한 판단도 이뤄졌다. 인권센터에 따르면, 결과를 바로 공표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전달하고, 당사자들은 10일 이내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학생 4명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는 중앙대 아시아문화학부 교수에게 교내 인권센터가 파면 권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센터의 이러한 결정은 고무적이다.

  인권센터는 학내에서 제3의 기구로서 기능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관이다. 현재 인권센터는 자문위원회를 제외하면 센터장, 차장, 행정인턴, 성평등상담소 전문연구원 두 명, 인권상담소 전문연구원 두 명으로 총 일곱 명으로 이뤄져 있다. 2만 명이 넘는 학생 수를 감안한다면 전문연구원이 네 명뿐인 것은 지나치게 적은 숫자다. 한 명의 연구원이 무려 5천 명의 학생들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국내 대학 최초로 설립된 인권센터라는 명성에 비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 것은, 어쩌면 인력이 부족한 탓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최근 인권센터에서는 학내 인권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결과 공개는 6월에 일부분, 내년에 전체가 이뤄질 예정이다. 이처럼 인권센터는 학생들의 요구에 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려는 상황이다. 따라서 인원이 더 충원된다면 인권센터가 학생들의 필요만큼 적절하게 기능하기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원우들에게는 권리장전도 있다. 대학원생 인권 향상은 이번 대학원총학생회(이하 원총) 박재홍 회장의 제1공약이기도 했다. 박 회장은 “전국의 많은 학교들과 만나 대학원생 권리보장강화를 위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리장전이 선포에서 끝나지 않고, 실효성을 가지도록 하려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C강사 사건과 K교수 사건에 대해서는 “문화연구학과에는 먼저 연락을 취했지만 고려해야할 사항이 많았고, 섣불리 나서기가 어려운 상태였다”며 현재는 인권위원회와 계속해서 회의를 진행 중이며, 원총 내 성평등국 신설 여부 등의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3의 기구를 새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다시 긴 시간과 큰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보다는 학내 인권센터, 대학원총학생회 등 이미 존재하는 기구들이 제 역할을 확실하게 해 준다면, 그것이 곧 좋은 ‘제3의 기구’라고 할 수 것이다. 피해자가 직접 사건 해결에 나서지 않아도, 사건은 해결돼야 한다. 앞으로도 우리는 더욱 면밀하고 집요하게 본부의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

정유진 편집위원 | _hege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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