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영 /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경제_그 이름도 찬란한 비트코인]

2017년 한국에는 ‘비트코인’ 광풍이 불었다.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를 새로운 형태의 지불수단으로 평가하는 한편, 투기적 거래를 우려하기도 했다. 가상화폐가 화폐의 기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국가의 대응 방법에도 정답이 없는 상황이다. 본 지면에서는 이 새로운 물결에 대해 네 번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화폐의 역사와 가상화폐 ② 가상화폐의 기술적 가치 ③ 비트코인, 자산인가 ④ 한국의 가상화폐 대응과 나아가야 할 방안

블록체인이 가져올 새로운 미래가치

이제영 /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최근 국내외에서 비트코인(Bitcoin)의 가치가 급상승하면서 암호화폐(Cryptocurrency)와 그 기반기술인 블록체인(Blockchain)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암호화폐는 그 특성상 기존의 금융기관과 같은 중간관리자의 개입 없이도 네트워크 참여자들끼리의 가치교환이 가능하므로 결제나 해외 송금 분야에서 보다 효율적인 지불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암호화폐 투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지만, 블록체인 기술의 확장성과 산업 활용 가능성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블록체인이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로써 기존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바꿀 수 있는 미래 신기술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은 최근 미래 혁신기술이 언제 우리의 삶을 가시적으로 바꿀 것인지 예측한 바 있는데 2027년에는 전 세계 GDP의 10% 정도의 가치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반 서비스에서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블록체인 혁명(Blockchain Revolution)≫(2017)의 저자인 돈 탭스콧(D.Tapscott) 역시 블록체인을 ‘제2의 인터넷 혁명’이라 칭하고 기존의 ‘정보의 인터넷(Internet of Information)’에서 신뢰성과 투명성 향상이라는 새로운 ‘가치의 인터넷(Internet of Value)’을 제공할 기반 기술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

  블록체인이 어떤 기술적 특성을 지니기에 이러한 전망이 가능한 것일까. 블록체인의 의미와 정의부터 생각해보자. 블록체인에서의 블록은 데이터를 저장하는 하나의 단위다. 하나의 블록은 디지털 파일로 최대 1MB 크기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데 이러한 블록이 시간순으로 체인처럼 연결돼 있어 블록체인이라 불린다. 기술적으로 블록체인은 ‘퍼블릭(Public) 혹은 프라이빗(Private)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거래정보가 암호화돼 해당 네트워크 구성원 간 공유되는 디지털 원장(Ledger)’을 의미한다.

  블록체인 메커니즘의 핵심은 거래 중개자 또는 믿을만한 제3자(TTP, Trusted Third Party) 없이도 P2P 네트워크를 통해 신뢰성 있는 거래가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거래 원장의 복사본을 각 네트워크 구성원들에게 분산시키고 새로운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해당 거래를 인증한다. 합의돼 정당한 거래로 승인된 거래정보는 블록에 저장이 되고 해당 블록은 네트워크 노드(Node)들에 분산돼 쌓이게 된다. 거래 정보가 분산돼 있기 때문에 해킹 위험도가 낮아지고 새로운 블록이 기존의 블록에 연결되는 구조로, 전체 블록 안에서의 데이터 변조와 탈취가 불가능해 진다.

  대표적인 암호화폐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이 금융 분야, 특히 화폐에 적용된 하나의 예이다. 화폐의 기능을 가지는 비트코인은 그 특성상 공개성이 중요해서 퍼블릭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다. 퍼블릭 블록체인에서는 네트워크 구성원 누구나 채굴(Mining)과 블록 인증(Confirmation) 과정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합의과정에 이르는 속도가 느리다. 비트코인에서 블록 형성에 평균적으로 약 10분의 시간이 소요되는 이유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가 실생활에서도 유용한 지급결제 수단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합의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기술적 진화가 필요해 보인다.

<그림: 기존 중앙시스템, 퍼블릭 블록체인, 프라이빗 블록체인 시스템 비교>  
출처: <Financial Times>(2015.11), "Technology: Banks seek the key to blockchain"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소수의 허락된 플레이어들에게만 네트워크에 참여해 거래를 인증하게 함으로써 합의과정의 속도향상을 추구한다. 비유하자면 누구나 인터넷은 할 수 있으나 특정 웹사이트 서비스에 접근할 경우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로그인해야 하는 것처럼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블록체인에 접근 권한 설정을 해놓은 것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대표적인 예로 ‘R3CEV(Crypto, Exchanges and Venture- practice)’와 ‘하이퍼레저(Hyperledger)’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R3CEV는 금융산업 내 블록체인 기술 표준화를 위해 2015년 9월 결성된 세계 최대의 글로벌 블록체인 컨소시엄으로써 국내외 대형은행들이 이에 참여하고 있다. 국제적 협력을 기반으로 회원사들의 블록체인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서비스 표준화를 위해 금융기관 계약 기록관리 시스템 ‘코다(Corda)’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시도 중에 있다.

  리눅스 재단(Linux Foundation)과 IBM의 주도로 2015년 12월부터 시작된 하이퍼레저 프로젝트도 글로벌 블록체인 기술 표준화 작업의 일환으로 기업용 블록체인 플랫폼인 ‘패브릭(Fabric)’을 공개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2016년 12월 금융업계 다수의 기관이 참여해 ‘금융권 공동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을 시작으로 블록체인 기술의 적극적인 활용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과 전망

  블록체인은 금융 분야에서의 개인정보 인증, 디지털 자산의 거래, 지급결제 및 해외 송금 업무뿐만 아니라 비금융 분야에서도 거래 신뢰성이 필요한 업무에 적용될 수 있다. 블록체인에서는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공동으로 거래 정보를 검증하고 이를 블록에 기록·보관하므로 향후 개별거래와 관련된 정보 추적이 용이해진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에 사용자의 생체 정보(지문인식, 홍채인식 등)를 추가한 디지털 신분증으로 더욱 간편하고 안전한 인증이 가능하게 된다. 지급결제 및 해외송금과 같은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 거래에서도 블록체인은 중개인을 거치지 않는 당사자 간 직접 거래 방식을 통해 거래 후 정산과정의 속도와 효율성을 높여준다.

  블록체인은 효율적인 계약 자동화를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다. 2세대 블록체인이라 불리는 이더리움(Ethereum)은 현재 비트코인 다음으로 널리 쓰이는 암호화폐로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를 통해 모든 종류의 자산 거래를 온라인에서 가능하게 한다. 스마트 컨트랙트란 계약의 내용과 실행조건 등을 사전에 컴퓨터 코드로 입력해 계약 조건이 충족된 경우 자동으로 계약을 집행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기존의 에스크로(Escrow) 제도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제3의 거래 중개자가 없어도 컴퓨터 코드만으로 법적 효력을 지닌 계약 진행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비트코인은 단순히 화폐의 거래였지만 스마트 컨트랙트의 등장으로 블록체인 기술은 화폐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자산거래가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줬다.

  블록체인 기술은 향후 물류·유통, 헬스케어, 나아가 정부의 공공 서비스 분야에도 활발히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외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데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Maersk)사는 최근 자사 화물의 전 세계적인 이동경로를 추적하고 관리하는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 구축을 위해 IBM과 제휴했다. 헬스케어 부문에서도 구글 딥마인드(DeepMind)는 ‘Verifiable Data Audit’이라는 의료기록 관리 솔루션 개발을 통해 환자나 의사 등 소수 참여자만이 데이터 접근권을 가질 수 있도록 프라이빗 블록체인 시스템 개발을 진행 중이다.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도 전자투표나 설문조사 과정에서 이중 투표나 결과 조작의 위험을 없애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17년 초 경기도에서 ‘따복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에 블록체인 기반 투표시스템을 도입해 시민들이 직접 사업 선정에 참여하고 투표하게 되면서 큰 관심을 끈 바 있다.

  ICT 발전에 따라 기술 간 융합이 활발해지면서 정보의 공유가 늘어나고, 신뢰성 있는 데이터 관리와 유통이 중요해졌다. 블록체인 기술은 과거 객체 간 일방적인 정보 흐름에서 벗어나 네트워크 참여자들 간 정보를 공유하게 하면서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합의 과정을 지원할 것이다. 나아가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다른 핵심기술들과 융합돼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고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블록체인 네트워크 거버넌스 이슈 및 개인정보 보호 등을 위한 시스템 관리방안과 필요한 법·제도 정비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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