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아카데미아: 『디지털 다매체 환경과 문학의 확장』 이지원 著 (2018, 문예창작학과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문예창작학과 이지원의 박사 논문 『디지털 다매체 환경과 문학의 확장』을 통해 디지털 환경으로 인한 문학의 패러다임을 살펴보고, 문학의 도구로서 디지털 매체가 활용되는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토론문]

디지털 환경, 문학의 확장을 위해 넘어야 할 것들

 

정원옥 / 문화연구학과 강사


  제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기술 발전이 가져올 가까운 미래 세계와 인간의 설 자리에 대한 예측이 그 어느 때보다 분분하다. 편리함의 소비라는 이름으로 우리 생활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될 기술혁신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쾌하게 답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중립적인 것으로 보이는 기술혁신 또한 철저히 자본의 기획과 투자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디지털 환경의 변화가 문학의 ‘위기’를 넘어 확장의 기회가 될 것인가라는 논쟁적 물음 또한 문학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자본의 흐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얼마 전 불거진 ‘레진코믹스 사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출판 산업의 위축, 독서인구의 하락 속에서도 최근 몇 년 간 온라인 플랫폼은 홀로 승승장구했는데, 온라인 플랫폼이 급성장했던 이면에 ‘을’의 눈물이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폭로된 것이다. 작가들은 원고가 늦을 때마다 ‘지각비’를 물었고, 임금 정산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문제제기를 한 작가들에 대해서는 블랙리스트가 실행됐다고 폭로했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어두운 이면은 작가들에 대한 불공정행위 또는 ‘갑질’만이 아니다. 업계 1위인 다음카카오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작가들을 싹쓸이한 후 ‘기다리면 무료’라는 장치를 통해 사실상 공짜 콘텐츠를 제공해 시장 질서를 파괴했다는 업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당장은 이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더 많은 독자들을 붙잡아두기 위한 다음카카오의 전략은 세계적인 플랫폼 기업 아마존을 떠올리게 한다.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최저가 전략은 아마존의 성공비결이자, 플랫폼 기업의 특징이기도 한 것이다.

  최저가 전략을 유지하는 플랫폼 기업이 어떻게 최대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문화연구자 김상민에 따르면, “일면 자유로워 보이는 플랫폼 생태계 내의 수많은 생산자 개인의 노동은 가치사슬의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플랫폼 전체를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한다. 구성원 모두가 win-win인 것처럼 보이는 구조 속에는, 사실 물리적이고(때로는 비물질적이고) 생체적인 노동이 그 구조 전체를 지속시키기 위해 포식(착취)되고 있는 셈이다.” 온라인 출판 플랫폼 역시 이러한 착취 구조에서 예외는 아니다. 젊음과 열정을 착취당하면서도 ‘도전’이라는 아름다운 동기부여에 의해 유인되고 독려 받는 수십 만 명의 아마추어 작가들이야말로 억대 연봉의 작가들을 만들어내고 온라인 출판 플랫폼들을 성장시켜온 진짜 수익원이라는 사실은 은폐되고 있다.

  물론 디지털 환경 변화에 따른 문학의 확장 가능성을 웹소설을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만 찾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다. 본 논문의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 또한 디지털콘텐츠산업을 통한 문학의 부흥이 아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다중매체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져온 다양한 문학적 시도들과 ‘바이럴 문학’, ‘작가미디어’, ‘문학공동체’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최근의 문학적 실험들이다. 다시 말해, 본 논문은 디지털 환경이 문학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민주화하고 문학 민주주의의 지평을 열고 있다는 긍정적 측면에 주목해 작가의 외연이 확대되고 문학의 범위가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디지털 환경의 변화에도 문학 본연의 역할은 바뀌지 않을 것이며, 기술혁신이 가져올 인류의 미래가 불명확하고 불안할수록 문학의 책임이 더 커진다는 문학연구자로서의 확신이 깔려 있다. 즉, “기술 때문에 문학이 위협받는 것이 아니라 기술 때문에 문학이 더욱 필요해진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조응하는 문학의 역할과 책임을 새롭게 성찰한 것은 이 논문의 고유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도의 바깥에서 문학의 확장 가능성을 찾는 것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한계가 뚜렷하다. 기존의 문단질서와 문학권력을 해체하려는 대안적 실험들은 문학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작가의 생계를 포함해 창작 환경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플랫폼 자본은 작가를 출판사로부터 분리하는 정책을 통해 작가를 확보하고 수익을 창출하면서도 자신은 출판이 아니라 유통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플랫폼 자본이 (예비)작가와 독자, 출판과 유통 모두를 독점하게 될 디지털 환경에서 문학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확장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아 보인다. 후속연구에서 다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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