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철 /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

[통일_우리의 소원은]

  우리는 일상에서 대한민국이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거의 잊고 지낸다.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며,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평화올림픽’을 내세웠고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에 남북 단일팀이 출전했다.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이번 단일팀이 긍정적 역할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편집자 주>

 

평화의 축제, 평창 동계올림픽의 明과 暗

여현철 /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

  16세기 유럽에는 독특한 사상가가 한 명 있었다. 바로 이탈리아의 통일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던 마키아벨리(N.Machiavelli)다. 그는 ≪군주론≫에서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지혜’를 피력한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의 마키아벨리가 2018년의 평창 동계올림픽을 마주했다면, 과연 그는 어떻게 평가했을까. 패럴림픽이 끝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올림픽을 통해 본 정부의 외교력과 통일에 대한 의지를 평가해 본다면 수년간 경색돼 있었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물꼬를 열었다는 점, 그리고 북한과 미국을 한자리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대화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에 대해 높게 평가할 수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북한에서 남한을 방문한 인원은 무려 492명에 이른다. 북한 대표단의 대표 격이자 김정은의 특사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비롯해 고위급 대표단만 22명이 방남했다. 이에 더해 ▲선수단 46명 ▲예술단 137명 ▲태권도 시범단 31명 ▲기자단 21명 ▲응원단 229명을 포함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관계자 2명과 북한올림픽위원회(NOC) 관계자 4명도 한국을 다녀갔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앞으로 남북관계는 보다 긍정적인 진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됐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문재인 정부의 운전자론이 탄력을 받게 됐다.

明: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재점화

  올림픽은 전 세계가 스포츠 정신으로 하나가 되는 평화의 축제다. 성황리에 진행된 평창 동계올림픽의 백미는 남북 선수들의 공동 입장과 성화 봉송, 그리고 남북 단일팀으로의 참가였다. 남북 선수단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래 열 번째로 이뤄졌다. 과거 남북 선수단은 ‘화해와 평화의 상징’인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동시에 입장했는데, 이번 올림픽에서도 공동 입장의 감동을 재현함으로써 동력을 상실한 남북관계가 복원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낳게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남북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데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도 확산시켰다. 특히,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 정부의 주도적·적극적인 역할이 부각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남북관계 진전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향후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을 강조하고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남한의 박종아 선수와 북한의 정수현 선수의 공동 성화 봉송이었다. 남북의 선수가 함께 성화를 들고 경기장을 들어선 그 순간,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한반도의 분단을 체감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뜨거운 열기를 함께 느끼며 인류애가 무엇인가를 숙고(熟考)해 보았을 것이다. IOC 바흐(T.Bach) 위원장은 평창 올림픽에 대해 “올림픽 정신이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모았다. 동계올림픽이 더 밝고 평화로운 한반도의 미래를 향한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 이 희망의 행사에 세계를 초대한다. 바로 이것이 평창이 세계에 주고자 하는 평화의 메시지”라고 밝혔다. 물론 남북 단일팀의 경기 결과는 차치하더라도 단일팀으로의 구성과 한 팀을 응원하는 국민들은 남과 북의 화해와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어젖히고 평화통일을 갈망하는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줬다고 기억될 것이다.

  남북 단일팀 구성은 과거에도 있었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남북이 단일팀으로 참가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단일팀 참가가 더욱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북한의 도발과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극단적으로 고조된 갈등과 대립 가운데 마련된 자리였기 때문이다. 남북의 단일팀 구성은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라는 본연의 의미를 넘어, 분단된 한반도에서 남북한이 함께 하는 ‘평화’의 의미까지 더해져 화합과 통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여실히 보여줬다. 통일부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함께 입장한 남북한 선수들의 웃음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희망을 기대”해 본다고 전했다.


■ 사진 출처: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공식 홈페이지

暗: 국민의 시선으로 본 평창

  평창 동계올림픽은 성황리에 끝났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에 내재돼 있던 고질적인 문제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남북 단일팀 반대 청원의 참여 인원이 6만 명에 육박하는 등, 남북 단일팀을 바라보는 청년 세대의 불만과 갈등은 마키아벨리의 지혜를 필요로 하고 있다. 2018년 1월 1일 북한이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언급하자 정부는 곧바로 논평을 내고 환영했다. 이어 1월 17일 정부는 남북고위급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합의에 대해 발표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과정의 측면에서 보면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정부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청년 세대를 포함해 많은 국민들이 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줄곧 결과만큼이나 과정의 중요성을 피력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굳은 의지와는 달리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과정은 일고의 논의도 없이 진행된 것이 사실이다. 지난 1월 16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던 새러 머리(S.Murray) 감독은 기자들의 질문에 “단일팀 구성은 이틀 전에 소식을 들었고 아직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이 문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1월 9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대한 복안이 논의되고 있었다. 정부는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력했어야 했고,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했었다. 소통과 공감이라는 가치의 부재가 더욱 아쉽게 다가오는 대목이었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남북 단일팀 발표는 그 의도와 무관하게, 4년 동안 올림픽 순간만을 기다리며 준비했던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수많은 땀과 시간을 물거품으로 만들게 됐다. 정부의 결정으로 인해 우리 측 일부 선수들이 불가피하게 배제됐다. 남북 단일팀의 구성으로 그동안 함께 훈련을 해왔던 선수들은 새로운 팀을 꾸리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청년층이 돌아섰고, 적지 않은 국민들의 여론이 부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더욱이 엔트리 구성부터 전력 약화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선수들과 일말의 논의도 없이 진행한 데 대해 국민들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자의 용맹’의 필요성을 주장한 마키아벨리는 “나는 내 영혼보다 더 내 조국을 사랑하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의 통일을 염원한 마키아벨리는 통일이라는 대업의 완수를 위해서는 ‘사자의 용맹’만이 아닌 ‘여우의 지혜’ 역시 함께 수반돼야 함을 주장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통일’이라는 국가적 이익에 몰두한 나머지, 국민의 화합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극단의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사자의 용맹’을 발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여우의 지혜’다. 사회가 발전했고 더는 집단의 이익을 위한 개인의 일방적인 희생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집단이 개인보다 상위에 있는 관계가 아닌 집단과 개인은 동등한 관계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점차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소통’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 강한 ‘용맹’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소통과 화합의 ‘지혜’가 필요하다.

 

평창에 점화된 불꽃, 평화를 위한 시작으로

  평창의 올림픽이 세계인의 호평을 받았을지라도 국민들의 공감이 없다면 허장성세(虛張聲勢)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평화에 대한 담론이나 통일에 대한 논의 또한 국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에 입안해야 한다. 평화가 아무리 중요하고 절실하다 해도 국민의 이해와 지지가 없다면 그것 또한 정치적 말장난에 불과할 것이다. 통일이 우리 민족의 숙원이자 대한민국의 미래와 연동돼 있다고 해도 오늘날 청년 세대의 공감이 없다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있어서 ‘사자의 용맹’과 같은 결단만이 있어서는 안 되며 ‘여우의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어려운 남북관계의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결단력 있는 ‘용맹’과 함께 이 ‘용맹’에 발맞춘 소통과 공감의 ‘여우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