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8.6.4 월 12:21
특집
[사회] ‘기업국가’ 대한민국김종권 / 다른백년연구원 연구실장
조현준 편집위원  |  dision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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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호]
승인 2018.03.06  15: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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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_기업국가 한국과 대안의 상상]

  ‘기업국가(Corporate Republic)’는 국가 그 자체를 하나의 거대기업으로 인식하는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숫자와 지표, 경제적 효율이 지배하는 이 시스템에서 모든 공공재와 공적 영역은 기업의 자산으로 사유화되며, 따라서 근대적 의미의 자유와 권리는 상층부가 제공하는 혜택의 개념이 된다. 사회면에서는 ‘기업국가’로서의 한국을 짚어보고, 그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기업을 위한 국가, 한국 ②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 ③ 사회민주주의와 한국의 미래 ④ 문학적 상상력, 비판정신과 연대정신

 

‘기업국가’ 대한민국

김종권 / 다른백년연구원 연구실장

  미국의 역사학자 로버트 버크(R.Burk)는 《기업국가와 브로커국가》(1990)라는 책에서 1920-30년대 미국 정치를 기업국가와 브로커국가라는 비전 간의 투쟁으로 서술한 바 있다. 그의 논의에서 보자면, 기업국가에서 정부는 무엇보다 기업 활동의 자유로운 보장을 위한 정부, 즉 ‘산업의 자치정부’가 된다. 김동춘은 기업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법, 언론, 교육, 군사, 지역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를 일컬어 ‘기업사회’라고 지칭한 바 있다. 푸코(M.Foucault)는 “사회체 내부에 ‘기업’의 형식을 파급시키는 것”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관건이라고 지적하면서, 기업식 “경쟁의 역학에 종속된 사회”를 ‘기업사회’라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기업국가’는 기업의 이윤추구와 경쟁 논리에 따라 사회 전반이 재조직된 국가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폴라니(K.Polanyi)의 표현으로 하자면, 기업국가란 시장이 사회로부터 분리돼 나와 자율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시장이 사회와 인간을 식민화한 상태의 국가 모델이라고 할 것이다.

   
 

소위 ‘경제대통령’이란 것의 출현

  1987년 민주화 이후 시장권력이 강화됐고, 2000년대 이후 ‘시장에 의한 시장의 통치’인 기업국가로 급격히 전환됐다. 1992년 현대그룹의 총수 정주영은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통일국민당을 창당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출마를 비웃었는데, 70대 고령의 ‘돈 많은 기업가’의 권력욕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컸다. 그러나 통일국민당은 그 해 14대 총선에서 31명의 당선자를 내는 돌풍을 일으켰다. 정주영은 ‘경제대통령’을 자임하며 대선에 나섰다.

  2005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발언했다. 그 속내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발언은 ‘국가주도 경제의 종언’과 ‘시장권력의 강화’를 인정한 측면이 있다. 당시 재벌의 규모와 영향력을 고려하면, 그의 발언은 더욱 명백해진다. 그 해 삼성전자의 주가총액이 전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3%를 차지했으며, 삼성을 비롯한 4대 재벌의 매출액과 총자산은 각각 GDP 대비 약 47%, 40.2%에 이르렀다.

  2007년 대선에서 한국 국민들은 기업가 출신의 이명박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줬다. 유행으로 번진 ‘부자되세요’라는 신년 인사와 국민들을 ‘부자로 만들어드리겠다’는 후보의 당선은 기업국가로 전환된 한국사회의 상황을 보여줬다. 다시 말해, 기업국가 대한민국이 완성된 것이다.

기업국가 한국의 특징과 문제

  기업국가로서 대한민국이 지닌 특징들을 일일이 열거하기는 그 양과 범위가 너무 크다. 이 글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이데올로기 영역을 중심으로 그 특징과 문제점을 살펴보겠다.

  먼저 기업국가에서는 정부조직과 사회조직마저도 기업형 조직으로 재편된다. 정부 조직과 사회 조직의 장(長)들은 스스로를 경영자 CEO를 자처해 나선다.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대한민국이라는 주식회사의 CEO’임을 자처해 나섰다. 대학과 지방자치단체의 장들도 CEO 총장, CEO 시장을 자임해 나섰다. 시민사회단체들마저도 기업형 조직의 틀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원동원’의 능력과 크기에 따라 시민사회단체들이 중심과 주변으로 나눠졌고, 중심의 영향력만이 나타났다.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영리조직인 기업과 공적 이해(public interest)를 담당하는 정부 및 사회조직은 본질적으로 그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도 정부 조직과 사회 조직이 기업형 조직으로 재편됨에 따라 시장권력을 제어하거나 견제할 수 없는 상황이 확대됐다.

  정치영역에서 기업가 출신의 정치가들이 늘어났는데, 이미 1995년 현역 국회의원의 10%가 기업가 출신이었다. 이명박 정부를 지나면서 정부 요직에도 기업가 출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경제부처의 고위 관리들은 정부가 바뀔 때면 삼성을 비롯한 재벌 기업의 고문이나 외부 임원 자격으로 취업했다. 이들은 기업 자문을 주로 하는 대형 로펌의 고문 지위를 차지하고 거액의 보수를 챙겼다. 이들은 기업의 대정부 창구역할을 했고, 친기업적 정책 입법을 담당했다. 대표적 예가 2004년 삼성의 금산법 위반에 대해 정치권이 옹호하고 나선 사례다. 박근혜-최순실-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최근의 게이트 또한 기업국가의 일면을 보여준다.

  경제영역에서 친기업적 정책과 입법화로 기업의 재산은 늘어났다. 국민총소득 중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70.1%였으나 2014년 61.9%로 줄어든 반면, 기업소득이 17%에서 25.1%로 늘어났다. 주주이익의 극대화는 노동분배의 상대적 감소로 나타났다. 노동소득은 1980년부터 1997년까지 꾸준히 증가했지만, 1997년 이후 계속해서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또한 1990년 이후의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기업의 로비와 압박으로 노동법이 개정되면서 노동인구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재무적 건전성을 평가에 크게 반영함으로써 공공부문마저도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는데, 20%의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또한 OECD 통계에 따르면, 0-6까지 표시되는 고용보호의 지수의 수준도 1990년 3.04수준에서 2013년 2.37수준으로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노동시장 유연화는 기업의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자에게 전가해 불안정 노동(precarious work)을 양산하고, 노동자들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사법과 미디어 등도 기업, 특히 대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경향을 띤다. 법원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이어진 삼성의 불법 승계과정을 눈감았고, 최근 박근혜-이재용 뇌물 공여에 관해서도 이재용을 집행유예로 석방함으로써 ‘삼성공화국’의 오명을 스스로 둘러썼다. 집단소송제의 불허와 함께 기업과의 대규모 소송에서도 법원은 ‘국민 경제에 대한 악영향’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기업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재벌의 기부금과 광고비로 유지하는 미디어도 기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자생성이 약한 것도 문제지만, 기업의 이익을 거스르는 미디어에 대한 강제적 조치도 미디어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 경영진의 심기를 거스르는 기사를 게재했다가 삭제되고 결국은 새로운 미디어 창간으로까지 이어진 이른바 ‘시사저널 사태’이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 미디어는 친기업 정서를 유포하고 기업 이익을 강조하는 첨병의 역할을 자처하게 된다. 2007년 10월 한 달 동안 18개 주요 일간지(종합지·경제지)의 삼성경제연구소 인용 보도가 무려 251건, 한 신문 당 14건에 달했던 미디어의 현실이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다시 민주화가 절실한 이유

  교육은 학문의 영역에서 기업에 인재를 제공하는 훈련소로 재편된다. 기업이 학교운영에 직접 개입해 자신들의 요구에 기반한 교육 훈련소로 재편하기도 하지만, 학교 또한 기업에 적극적으로 연계를 요청한다. 재벌 총수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가 하면, 총장이 나서서 기업에 구애를 한다. 대학은 기업 논리에 식민화돼 ‘돈이 곧 대학 서열’이라는 인식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따라서 새로 들어선 대학 공간은 학생들을 배제한 상업적 공간으로 구성되고 있다. 학문의 공간은 사라지고 상업적 공간이 지배함으로써, 학교 또한 기업 조직으로 변모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국가는 루이스 캐럴의 소설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1871)에서 나온 내용을 차용한 이른바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로 일컬어지는 끊임없는 경쟁과 성장 담론을 만들어 낸다. 기업의 경쟁논리, ‘승자독식(all or nothing)’의 철칙은 주변의 모두를 경쟁상대로 만들어 사회적 연대를 불가능하게 한다. 아울러 성장 담론은 개인의 계발 담론으로 이어지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개인에게 전가된다. 현재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기 계발의 열풍은 기업의 경쟁과 성장 논리가 만들어낸 슬픈 일면이다. ‘달리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경쟁과 성장 담론은 개인을 자기 계발의 열풍으로 몰아넣고, 기업은 그 수혜를 고스란히 챙기면서도 일체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업국가는 다수의 지분을 점유한 소수의 ‘유권자’, 즉 주주가 더 효율적으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는 기업의 신념에 기반하고 있다. 이 신념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지배’인 민주주의의 이념과도 양립하기 어렵다. 이것이 기업국가 대한민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2의 민주화가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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