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다?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너 거기 잊는가, 나 여기 있는가

  각계각층에서 ‘미투운동’이 발현되고 있는 요즘,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한 배우의 사과문이 SNS에서 화제다. “기억이 솔직히 선명하지는 않았습니다”라고, “솔직한 저의 상태였다”고, 서술한 그의 사과문에 대해 진정성 논란이 일었다.
  망각. ‘어떤 일이나 사실을 잊어버림’을 뜻하는 단어다.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부르듯 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청문회 때마다 듣는 상투적인 말이 있지 않은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그렇다면 잊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 매번 ‘때린 놈은 잊고’ ‘맞은 놈만 기억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는 제발 마주해야한다

  OECD에 속하기도 창피한, 수준 미달 대한민국은 불명예공화국이다. OECD 가입국 중 자살률·노인빈곤율·산재사망률·성별임금격차 1위를 차지한다. 이제는 뉴스에서 이에 대한 소식을 들어도 별로 놀랍지 않을 정도로 익숙한 이야기다. 그렇기에 우린 자꾸 잊고 산다. 하루 평균 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고, 지나가는 노인 두 명 중 한 명은 빈곤상태다. 기업 ‘살인’이라 불리는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는 매해 2천4백 건이 넘는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성별임금격차를 지구상에서 종식시키려면 217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보이는 통계적 수치도 어마어마하지만 사실 더 무서운 것은 숨겨져 있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부양의무자기준에 의해 빈곤노인에 포함되지 못하는’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 그리고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 수많은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잊고, 아니 은폐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밝혀야 하나

  그렇다면, 우리의 ‘등잔 밑’은 안녕한가. 최근 본교에서 충격적인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다. 교내 운동 동아리에서 터진 이번 사건은, 피해자의 요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달 가까이 피해자 ‘빠진’ 대책회의를 하며 사건을 쉬쉬했다. 결국, 피해자가 직접 <국민일보>에 제보해 성폭행 사건이 공론화됐다. 이에 해당 동아리는 교내 커뮤니티 홈페이지에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피해자에 대한 사과 한 줄 없이 “인터넷상에서 무분별하게 신상이 공개 되며 동아리 학생들이 입는 피해가 막심해짐에 따라” 미룰 수 없는 공식 입장을 표명한다며 해명했다.
  QS사태와 총장 불신임 결과에 대한 본부의 대응도 안일하다고 느껴진다. 이에 대한 교수협의회의 끊임없는 물음과 문제 제기에 김창수 총장과 본부는 ‘학칙대로’를 선언하며 잘못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우린 비슷한 대답을 2010년에도 들었다. 본교 <중앙문화>가 총장관련 만화를 실어 ‘총장을 조롱하고 총장의 권위를 떨어뜨렸다’는 연유로 강제 수거됐다. 이후 <중앙문화>는 예산도 삭감되고 발행에 난항을 겪었다. 그럼에도 <중앙문화>는 학생과 교수들의 ‘1인 광고’ 모금으로 무제호 특별판을 내기 위한 준비를 했고, 다시 본부는 “교지를 발행할 경우 징계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학생단체 혹은 학생의 모든 정기·부정기 간행물은 지도교수의 추천과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학칙 제65조가 근거였다. 당시 여론은 본부를 강력 비난했고, 이에 대해 당시 변호사를 하고 있던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학내 간행물에 대한 사전 허가를 규정한 학칙은 검열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며 “사립대의 학칙이 헌법 위에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굳이 천천히 할 필요는 없다

  이렇듯 사회문제들은 우리와 숨바꼭질 놀이를 한다. 힘과 권력 뒤에 ‘꼭꼭’ 숨어 찾을 테면 찾아보라고 큰소리친다. 그래서 2018년 상반기 대학원신문 특별호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문제들을 다시 꺼내어 펼쳐본다. 먼저 학술면에서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계속되는 무한자극으로 인해 상실된 개인의 고유성과 자율성으로, 피폐해진 현대인의 정신건강에 대해 살펴본다. 또한 사회면을 통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국가가 ‘기업화’ 돼가며 발생하는 문제점을 짚는다. 그리고 페미니즘 지면을 빌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투쟁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찾으며 여성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혐오표현’과 이에 대항할 ‘대항표현’에 대해 알아본다. 뿐만 아니라 대학원신문사 35주년을 맞아 특집 좌담회를 준비했다. 학내언론은 왜 점점 힘을 잃어 가는지, 슬픈 ‘대학원신문사’의 초상도 함께 바라본다. 끝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다시 생기가 도는 ‘통일’과 그 미래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우리 속담에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다’라는 말이 있다. 일을 하는데 절차와 순서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급한 놈이 우물파’는데, 적어도 급한 ‘놈’들이 파고 있는 우물에 침은 뱉지 말아야 하지 않은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절차’와 ‘법칙’을 정하곤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다. 그들의 눈에는 꿈틀대는 힘없는 자들이 거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존재가 가만히 있는 것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몇몇 괴물이 아니라 ‘구조적 부정의’를 바꿔야 한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절대 잊지 않아야 한다. 덮어두고 감추면 결국 우린 ‘우리가 침 뱉은 우물을 도로 먹을 것’이다.
 

김혜미 편집위원 | hyemee7299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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