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7.12.6 수 20:06
기획정치
[정치] 물화된 정치를 넘어 쟁투의 정치로김주환 / 동국대 강사(사회학)
조현준 편집위원  |  dision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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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호]
승인 2017.12.06  13: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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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 키워드] ④ 정치적인 인간, 그리고 인간적인 정치

 2017년 상반기의 가장 큰 사건은 아마도 조기 대선으로 이룬 정권 교체일 것이다. 정치적 공론장의 탄생은 완결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구축되는 과정에 있고, 개인이 정치적 시민 의식을 ‘실행’하는 경험 역시 진행 중으로 보인다. 이 기획에서는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 정치에 대해 네 차례에 걸쳐 고민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파국과 ‘재생’ ② 진보와 보수 ③ 정치政治와 공공정책 ④ 정치적인 인간, 그리고 인간적인 정치

 

물화된 정치를 넘어 쟁투의 정치로
일상의 정치의 몇 가지 함정들

김주환 / 동국대 강사(사회학)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공적인 폴리스(polis)와 사적인 오이코스(oikos)의 경직된 구분 속에서 생존을 위한 일상적 삶의 문제들은 공적인 정치 바깥의 사안들로 이해됨으로써 평범한 우리 인간들의 일상적 관심사들은 정치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근대사회의 등장은 이와 같은 구분을 무너뜨렸다. 사적이고 생존을 위한 일상적인 관심사로만 간주됐던 의제들이 공적인 정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됐기 때문이다.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를 말없이 이루어지는 생존을 위한 자연필연성의 오이코스 논리가 근대사회에 이르러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형태로 국가의 공적 영역에 침투한 것으로 본다. 이것을 그녀는 말을 통해 다원적인 공적 공간에서 자신의 탁월성을 표현하는 정치 고유의 ‘자유의 정신’이, 말없이 이루어지는 합리적 계산에 따른 정치공학으로 타락해가는 과정으로 본다. 이런 맥락에서 아렌트는 ‘빵을 달라’라는 구호가 함축하듯 인민주권의 이름으로 상퀼로트(Sans-culotte)들이 빈곤과 생존의 문제를 들고 프랑스혁명 과정에 난입함으로써 정치를 질식시켰다고 평가한다.

   
 

정치적 인간, 인간적인 정치의 조건들

 아렌트의 이와 같은 논의는 공학적 시스템으로 논리화되고 있는 근대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통찰을 제공한다. 하지만 아렌트는 크게 두 가지 지점을 놓치고 있다. 첫째, 그녀는 평범한 인간들의 사사롭게 보일 수도 있는 일상적인 의제들, 예를 들어 빵이 상징하는 빈곤과 생존 같은 관심사들과 괴리된 정치는 공허할 뿐만 아니라 정치를 작동시키는 동력을 끌어오기 힘들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요컨대 정치는 ‘민주’라는 이념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민생’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의제들로부터 동력을 확보하는 법이다.

 둘째, 그녀는 ‘사회적인 것’을 일면적으로 이해하여 국민국가 수준으로 확대된 경제의 체계논리로 등치시킨다. 하지만 그녀는 경제라는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복수의 인간들이 도덕·규범의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서 익명화된 경제의 사물 필연성 논리에 맞서기도 한다는 점을 놓친다. ‘사회적인 것’은 단순히 필연성의 논리로 환원될 수 없는 도덕·규범의 논리와 그에 기반한 정치적인 것의 논리 역시 함축하는 것이다.

 결국 탁월한 소영웅적 남성들의 자유로운 말의 경연을 특징으로 하는 고전적 폴리스의 이념에 대한 향수에 매달려 있는 아렌트의 생각과는 달리, 근대 이후 펼쳐진 민주적 정치의 공간에서 평범한 인민들은 각자 자신들의 긴급한 민생 문제를 정치적 의제로 만들어냄으로써 비로소 평범한 인간들의 일상이 정치가 될 수 있는 기초적인 조건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공적인 정치 바깥에 놓여있던 평범한 인간들과 그들의 일상 의제들이 정치 안으로 들어오면서, 정치적인 인간과 인간적인 정치의 조건이 마련된다.

   
 

공동체적 좋음의 퇴조와 각이한 좋음들의 전쟁터

 하지만 공공선 즉 공동체적인 좋음의 퇴조라는 오늘날의 조건에서 평범한 인간들의 일상적 의제들이 정치가 되는 이른바 인간적인 정치는 난관에 직면한다.

 하나의 정치 공동체가 추구해왔던 신의 영광의 실현이나 여타 공공선의 실현이라는 이념은 기능적으로 복잡하게 분화된 근대 사회의 조건에서는 점차 뒤로 물러선다. 근대 정치의 영역에서 신과 도덕의 영역이 퇴거하고 구성원 각자가 자기 삶의 지향과 일체화할 수 있었던 어떤 ‘공동체적 좋음(공공선)’이 존재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그만큼 형해화 돼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두 가지 함의를 지닌다.

 첫째, 공동체 전체에게 좋은 것(공공선) 대신에 각자가 또는 각 세력들이 생각하는 각이한 좋음들이 정치를 작동시키는 원리가 됨으로써, 그동안 공적 영역에서 배제돼 왔던 다양한 일상적 삶의 의제들이 정치의 핵심 의제로 부상한다. 예를 들어 생태적인 삶과 핵이 없는 삶을 좋은 삶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생활 의제들은 녹색정치라는 형태로 정치 영역에 들어간다. 또한 비이성애적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삶을 실현하기 위해 성적 지향이라는 의제를 들고 정치 영역에 들어간다. 이로써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고 그들의 생활세계가 곧 민주적인 정치의 공간이 된다.

 둘째, 공공선 아래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조건이 약화되면서 정치가 합의불가능성의 영역이 되어간다. 예를 들어 생태적인 삶을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집단과 비이성애적인 성적 지향을 추구하는 것을 좋은 삶으로 여기는 집단들 사이에 공통성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정치영역은 이제 다양한 세력들 사이의 좋음들 내지 이해관계들을 실현하기 위한 힘의 작용들이 충돌하고 적대적 쟁투를 벌이는 전쟁터가 되어간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측면 사이의 긴장은 이른바 ‘인간적인 정치’ 내지 ‘일상의 정치’라는 표현에 투사된 일정한 낙관주의를 경계할 필요를 제기한다. 즉 우리는 인간적인 정치 즉 평범한 인간들의 일상적 관심사들이 곧 정치적 의제가 되는 상태를 기대하지만, 그러한 형태의 정치는 아름답다기보다는 적대적 투쟁의 과정이라는 현실을 수용해야 한다.

   
 

현실주의에 기반한 정치, 끊임없는 쟁투로서의 정치

 공동체적 결사 원리가 지배하던 전근대적 사회적 조건에서는 자본의 화폐논리와 욕망 기제 그리고 익명적인 행정 권력의 힘이 공통의 도덕, 관습, 신념, 종교 원리 같은 공통체 원리의 힘에 의해 통제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베버(Max Weber)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버는 자본주의의 자기충족적 축적논리마저도 기독교 종교 원리의 토대 위에서 작동해야만 했다. 군주의 자의성은 신적 원리에 의해 통제됐다. 하지만 공동체라는 관념은 복잡하게 분화된 현대의 사회적 조건에서는 더 이상 적절한 것이 아니다. 전통적 공동체의 후퇴는 자본과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상위의 힘의 부재상황을 낳는다.

 따라서 인간적인 정치에게 요구되는 것은 평범한 개인들이 일상의 의제들을 정치화하는 시도의 확산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국가 상위에서 그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어디서 다시 끌어올지에 대한 고민이다. 그 통제력을 확보하지 못한 생태에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인간의 정치의 확대는 민주적 협치라고 불리는 보다 세련되고 교묘해진 신자유주의 통치회로 속으로 흡수돼 되려 신자유주의를 강화하는데 기여하게 될 뿐이다. 오늘날의 국면에서 인간의 형상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 통치이다. 그 인간의 형상은 종종 아래로부터의 능동적 참여에 기반한 민주주의, 공동체 원리의 강조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복잡하게 분화된 오늘날의 사회적 조건에서 연대, 공감, 배려, 호혜, 협동과 같은 공동체적 원리 그 자체는 강력하게 조직화된 자본의 힘과 국가 행정 권력의 힘에 맞서기 힘들다. 이것이 자립화된 시장 논리를 사회에 재배태시킨다는 폴라니(Karl Polanyi)류의 시도가 난망한 이유이다. 군주권의 시대와 달리 민주주의를 통치의 정당성 원천으로 삼아 작동하는 오늘날의 통치 양식에서 성원들의 민주적 참여 그 자체는 통치와 대립하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정치란 그와 같은 공동체적인 것이나 형식화된 민주주의 원리 그 자체가 아니라, 세력들 사이의 끊임없는 적대적 쟁투의 영역임을 직시하는 것이리라. 시장과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그 적대적 쟁투의 정치적인 것이 돼야 할 것이다. 정치적인 것이 제공하는 힘을 가지고 시장과 국가를 통제하기 위해 어떤 전략과 전술을 개발할 것인지가 인간적 정치의 내용이 돼야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적인 원리로 이루어지는 정치가 아니라, 적대적 쟁투의 관점에서 그 쟁투에서 이기기 위해 인간적인 것의 논리를 어떻게 전략적 수단으로 사용할 것인지가 고민돼야 자본과 국가의 힘에 맞서 한판 겨뤄볼 수 있는 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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