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 / 사진학 박사

 

원우연구: 『듀안 마이클스 비주얼스토리텔링에 나타난 비선형적 메타-구조의 존재론적 고찰』 정훈 著 (2017, 사진학과 다큐멘터리사진 전공)

  본 지면은 원우들의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사진학과 정훈 원우의 박사 논문 『듀안 마이클스 비주얼스토리텔링에 나타난 비선형적 메타-구조의 존재론적 고찰』을 통해 사진 행위에 있어 능동적 사진 읽기와 주체-관객으로서의 존재론적 고민을 나눠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주체-관객으로서의 사진 읽기


정훈 / 사진학 박사

  듀안 마이클스(Duane Michals)의 비주얼스토리텔링은 사진의 형상과 텍스트에 집중할수록 사진의 의미는 사라지고, 화면의 내부가 그 바깥을 가리키는 특이성을 갖는다. 이는 사진 이미지를 수용하는 차원에서 관객의 주체적인 행위를 요구하거나, 자연스레 그런 행위 속으로 관객이 빠져들도록 끌어들인다. 따라서 작업의 의미는 관객의 현대사회에 대한 비자발적인 기억, 즉 잠재적(virtual)인 상태로 신체에 남아있는 지적 상태로서의 지각과 맞물려서 확장된다. 이를 유발하는 비주얼스토리텔링 자체는 관객 스스로 맥락을 열어가게 하는 통로로서 메타-구조의 공간이 된다.

 

  본 연구는 마이클스 작업의 특이성을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한다. 하나는 구조적 기호체계 안에서 화면의 바깥을 가리키는 비선형적 메타-구조에 대한 분석으로서, 모더니티 시각체제와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담론을 도구로 사용한다. 다른 하나는 마이클스 작업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이다. 여기서는 이미지를 시간과 불가분적 관계로 인식하고 이미지를 통해 시간을 지각케 되는 양상을 설명한 베르그송-들뢰즈의 관점이 핵심적 근거가 된다.

 
비선형적 메타-구조

  마이클스의 사진 속은 수학적 위상을 갖지 않는 공간이다. <나는 말다툼을 기억한다>(1970)를 보자. 첫 장면에는 텅 빈 방 안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다. 창밖의 네온사인은 이때가 밤임을 나타낸다. 두 번째부터 네 번째 시퀀스는 똑같은 위치에 서 있는 남자를 보여준다. 그가 보는 것은 심화되는 두 남녀의 말다툼이다. 꺼진 네온사인은 이때가 낮임을 가리킨다. 마지막 시퀀스는 첫 장면으로 돌아온다. 즉 일련의 시퀀스는 시간의 변화를 통해 공간을 의미화한다.

<Duane Michals, I Remember the Argument, 1970>
<Duane Michals, I Remember the Argument, 1970>

  여기서 시간은 들뢰즈적 ‘시간의 순수한 순서’인 ‘서수적(序數的)’ 시간이다. 다시 말해 연속성(하나, 둘, 셋)으로 이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출현하는(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순서에서만 맥락이 파악되는 선험적인 시간이다. 첫 장면은 마이클스(혹은 에피소드의 주인공)가 기억하는 첫 번째 시간인 것이다. 두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의 시퀀스가 나타내는 기억의 흐름은 첫 장면보다 오래된 과거이다. 즉 두 번째부터 네 번째 기억이다. 따라서 시퀀스는 첫 번째 사진 이미지를 중심으로 과거로 회귀하여 점차 현재로 돌아오는 시간을 나타낸다. 다섯 번째 사진 이미지는 첫 장면처럼 첫 번째 기억인지, 아니면 그와는 다른 시간인지 분명치 않다. 어떤 경우에 속하건, 이러한 시간은 선형적 연속성과는 상관없는 비선형적 흐름에 놓인다.

  따라서 작업에서 사건은 대상의 인과적인 운동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관객이 감지하는 시간의 분열로부터 유래한다. 관객이 서수적 시간을 지각하고 자신의 지속-시간에서 사유하는 행위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성은 시간을 사유‘하다’라는 술어 개념에 의존하며, 시간을 떠올리는 주체의 지각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변화한다. 즉 의미는 시퀀스 사진 속에 부재하며, 관객이 시퀀스 사진의 사건성을 사유‘하는’ 가운데 출현한다. 이러한 시퀀스 사진의 구조에서 사진 이미지는 닫힌 의미체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아니라, 관객의 사유행위에 따라 의미의 변화가 가능한 단면으로서 기능한다.

  요컨대 마이클스의 비주얼스토리텔링은 관객의 주체적인 행위를 요청한다. 사진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하기’의 상태에 놓이며, 사건은 관객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맥락화/사건화 하기 전에는 잠재태로 남는다. 이는 에피소드를 시각적 맥락으로 구성하면서도, 의미화의 주체를 고정시키지 않는 마이클스 작업의 특이성을 나타낸다. 작품을 바라보는 행위주체에 의해서만 맥락이 구체화될 수 있는 구조, 즉 에피소드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현재의 바라보기 행위 속에서 실재화(actualization) 되는 열린 체계인 것이다. 따라서 관객은 시퀀스 사진의 흐름에 빠져들수록 시각적 기호체계 바깥에 놓인 실존적 시간을 향하게 되며, 사진가와 함께 상호적인 의미의 구성주체이자 메타커뮤니케이션의 행위주체가 된다. 결국 이를 추동하는 마이클스의 작업은 구조의 안에서 바깥의 실재로 나아가게 하는 메타-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적 인덱스(index)로서 사진과 텍스트

  마이클스의 비주얼스토리텔링은 시퀀스 사진의 계열과 사진 이미지 및 서술적 텍스트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계열로 이뤄진다. 사진-텍스트 계열에서 서술적 텍스트는 사진을 포착한 이의 상념을 가리키며, 관객은 이를 통해서 사진을 찍은 사진가를 상정하고 이미지를 보게 된다. 즉 텍스트는 작가를 강하게 지시하는 장치이다. 이는 사진 이미지의 지표성(indexicality) 또한 강화하기에, 관객은 사진이 형상화하는 장면보다 사진가가 사진을 찍게 된 행위나 맥락을 향해 눈길을 돌리게 된다.

  <이 사진은 나를 증명한다>(1967)는 이 같은 지표성을 구체적으로 확인케 한다. 여기서 마이클스가 손으로 쓴 텍스트는 사진 이미지 바깥에 위치하지만 작업 전체 내부에서 사진 이미지와 함께 공존한다.

<Duane Michals, I Remember the Argument, 1970>
<Duane Michals, I Remember the Argument, 1970>

  작업의 제목은 의미를 명사적으로 고정하지 않고 ‘이 사진’을 보아야만 ‘나’라는 존재가 구체화되도록 서술적으로 제시돼 관객이 사진 이미지를 주의 깊게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한편 사진 이미지는 그때-거기에 존재했던 두 남녀의 사랑을 가리킨다. 그러나 텍스트의 서사는 관객 ‘자신’을 위해 사진 속의 인물을 보라고 요청한다. 즉 제목은 사진 속의 ‘나’를 가리켰지만 내러티브는 사진 속의 ‘너’를 보라고 제시한다.

  이처럼 비선형적인 지시 관계를 갖는 사진과 텍스트로 인해 ‘그때-거기’와 그 이전의 기억이 ‘사진-텍스트’를 바라보는 ‘지금-여기’의 관객 눈 속에 놓이면서 ‘즉각적인 장소와 이전의 시간’이 그 속에 공존하게 된다. 현재의 관객은 비선형적인 지시 관계를 통해 시간의 내면으로부터 어떠한 사건화의 사태를 감지하게 된다. 이는 ‘너’를 위해 보라고 서술하는 텍스트로 인해 사진가의 경험이 관객의 경험을 가리키는 인덱스로 질적 변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사진가의 시간을 향하게 했던 사진-텍스트는 관객의 시간과 그 내면의 경험을 가리키는 인덱스가 된다.

  이처럼 마이클스의 사진-텍스트는 작동자를 가리키기도, 혹은 작동자의 기억과 의식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기억과 경험을 가리키는 작용을 한다. 사진-텍스트의 맥락에 의해 지시하는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열린 상태로 확장하는 상황적 인덱스로 기능하는 것이다. 푸코는 이처럼 관객이 마이클스의 작업으로부터 지각적인 연상의 연쇄를 이루고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관계한 시간(기억)을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양상을 ‘사고-감정’이라고 언표 한다. 결국 마이클스의 비주얼스토리텔링은 관객 스스로가 작업의 상황적 인덱스가 되도록 증폭시키는 통로인 것이다.


사진가와 관객 사이의 웜홀

  마이클스의 비주얼스토리텔링은 한마디로 사진가와 관객의 메타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웜홀(Worm Hole)이다. 거기에서 관객은 사진가의 잠재적인 사유의 이미지에다 자신이 지각으로 포착한 사유의 이미지를 이중화하면서, 탈영토적인 의식의 생성을 포착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다. 이러한 특이성이 오늘날 미디어 환경의 매트릭스 속에서 물신주의적 체계를 강화하는 사진 이미지와는 전적으로 대척되는 마이클스 작업의 존재론적 역량이라고 하겠다.

  일찍이 들뢰즈는 창의 행위가 결핍된 소통이 오늘날의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카메라의 주체-작동자인 마이클스는 그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해 관객이 사진적 행위에 창의적으로 참여하기를 요청한다. 메타-구조로 펼쳐진 열린 공간 속에서,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사유와 의식의 생성을 주체-관객과 함께 포착하고자 한다. 그 비선형적인 공간을 통해 지속-시간이라는 실재를 지각하고 함께 사유하고자 한다. 마이클스 비주얼스토리텔링에 나타난 비선형적 메타-구조의 존재론적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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