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창(窓)]
 
 인권(Civil Rights)이라는 단어의 역사에 대해 쫓는다. 시민권, 인권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21세기 인권은 어떤 변화를 맞이했으며 허와 실이 무엇인지 말한다. 또한 인권과 관련한 굵직한 사건(나치, 흑인해방, 차별금지법 등)에 대해 파헤쳐보며 세계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4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인권과 역사 ② 인권과 국가권력 ③ 인권과 사회운동 ④ 인권과 소수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소수자 인권

류민희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소수자’란 개념은 법학보다 사회학에서 더 자주 쓰인다. 법학에서는 불평등이라는 부정의에 대해 평등과 반차별이라는 이상과 원칙으로 주로 접근한다. 하지만 우리는 평등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고 소수자에 대한 불평등에 대응하기 위해, 중립적이고 대칭적인 차별금지사유(성적지향, 성별)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식으로 대처하거나, 특정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자는 직접적인 목표를 가진 개별 규범(여성차별철폐협약, 장애인권리협약)을 만들기도 한다. 소수자 집단을 계속 추가하는 식의 평등권 규율에 대해 과연 바람직한가를 고민하며 평등권의 자유권적인 진화를 이야기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소수자’라는 렌즈를 통해 불평등을 보는 것은 가시적이고 불변적인 속성에 기반해 역사적인 억압과 차별을 받아온 개인과 집단, 그리고 이에 대한 구제를 어떻게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 통찰을 준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유효한 방식이다.

  불평등과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평등의 법리 발전은 크게 세 단계로 볼 수 있다. 첫째, 형식적인 법률적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다. 노예제, 기혼 여성의 사유재산권과 자녀에 대한 권리 배제를 철폐한다든지, 오랫동안 여성에게 배제됐던 선거권(Women's suffrage)을 부여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법 앞에 평등'은 큰 성과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여전히 여성은 고용시장에서 분리됐고 저임금에 시달렸고, 흑인은 편견과 배제의 대상이었다.

차별금지법의 발전사

  그로 인해 두 번째 단계인 차별금지법의 발전이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흑인차별 철폐를 위한 <민권법>이 1964년 제정됐고, 영국에서는 1965년 <인종관계법>의 입법을 시작으로 차별금지법제의 입법과 개선이 수십 년에 걸쳐 이뤄졌다. 유럽의 경우 차별금지법에 대한 각국의 국내법들과 유럽차별금지지침, 유럽인권협약 등 지역규약이 서로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법들은 효과적이었으나 한 편으로 한계점도 많았다. 여전히 남녀간 임금격차는 심했고 장애인과 소수 민족들은 구직의 기회로부터 배제됐고 인종차별과 동성애혐오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따라서 유럽은 2000년대 초부터 기존 차별금지법으로 구제하지 못하는 집단에 대한 차별금지사유(종교, 성적지향, 나이 등)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새로운 방향으로 차별금지법(혹은 평등법)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평등의 법리의 세 번째 단계는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넘어 평등을 증진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무는, 현존하는 현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 집단에 속하는 개인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적극적 조치(positive action, affirmative action), 소수자 인권에 대한 교육,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는 사회 인식의 제고 등 넓고 다양한 노력 등을 포함한다. 새로 입법되는 최근의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고 피해를 구제하며 평등권을 보장하기 위해, 위의 경향을 모두 포함한다.

  한편 소수자는 단일하고 균질하지 않으며 차별은 두 가지 이상의 차별금지사유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누군가는 여성이면서, 이주민이고, 레즈비언이며, 장애를 가질 수도 있다. UN여성기구는 성주류화를 위한 지표 수집에 대해 “성별 격차는 연령, 계급, 소득, 민족성, 국적, 거주지, 교육,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보건 등의 사회 경제적 요소와 교차한다”고 지적하고 “관련자들을 단일한 집단으로 취급하지 말 것”을 주지한다. 이러한 교차차별은 차별금지법제가 당면한 또 하나의 도전이다.

사법부와 평등원칙의 힘

  한편 차별금지법은 사법부와 차별시정기구에 의해 주로 고용, 재화, 용역에서의 차별에 대한 구제를 예정한다면, 차별적인 법령의 위헌성은 사법부가 헌법의 평등원칙에 기반해 판단한다. 의회의 다수는 때로 소수자에게 해로울 수 있는 결정을 내린다. 이것을 교정할 수 있는 것은 사법부과 평등원칙의 힘이다.

“(전략) 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서, 호주승계 순위,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이고 (후략)” 헌법재판소 2005. 2. 3. 선고 2001헌가9, 10, 11, 12, 13, 14, 15, 헌가5(병합) 결정.

  또한 사법부는 평등권 원칙 위반의 심사를 할 때 어떠한 요건 하에 좀더 엄격한 심사를 하기도 한다. 아래는 동성 간 혼인을 금지하는 민법이 헌법 상 평등권에 위반된다는 대만 사법원 2017년 5월 24일 결정이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는 과거 사회전통과 관습에 맞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장기간 어두운 벽장 속에 갇혀 각종 사실상 혹은 법률상 혐오와 차별을 받아왔다. 또한 동성애자는 그 수가 적어 사회에서 고립된 소수이고, 낙인의 영향을 받아 정치적으로 약자이기에, 일반 민주질서에 따라 법률상 열세를 극복하기 어렵다. 따라서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헌법심사에서 엄격한 심사기준을 따라야 하며, 중요한 공익적 목적 외에 수단과 목적의 상관관계가 실질적 관련성이 있어야만 헌법 제7조 평등원칙에 부합한다.”

  이처럼 소수자 권리의 마지막 보루로서 사법부의 중요성은 많은 역사적 판례와 그에 따른 사회 변화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평등원칙이 마치 주류와 소수자를 적대적 관계에 놓는 것 같지만 사실 주류라는 개념은 허구에 가깝다. 인간은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주류는 유동적인 연합체며, 우리 중 누구도 완전히 주류에 속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평등원칙은 소수자인 자신을 은폐하지 않고 누구나 온전한 자아로 살 수 있게 만드는 이상이다.

  물론 평등을 위해 법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정치·사회·경제 맥락과 사람들의 태도나 문화적 가치 같은 요소들이 법을 넘어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은 사람들의 행동과 기대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각국에서 평등권 관련 법리와 판례가 날로 발전하는데 한국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10년째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 내년에 있을 개헌과 관련된 기본권 논의에서 우리의 평등을 어떻게 30년 만에 업데이트해야 할까. 앞으로 우리의 일상에서, 국회에서 일어날 많은 논의들이 평등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데에 기여하길 바란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