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숙의적 학문공동체가 필요한 때

  지난달 28일,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요구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시민들은 우리가 주권자임을 외치고 민주주의의 회복을 염원하며 춥고 긴 겨울을 천만 촛불로 녹여냈다. 촛불집회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독일의 비영리 공익·정치재단인 프리드리히 에버트(Friedrich Ebert) 재단이 촛불집회에 참가한 ‘대한민국 국민’을 2017 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에버트 재단은 “민주적 참여권의 평화적 행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국 언론에서는 이 일을 대서특필하고 “특정 단체나 개인이 아닌 특정 국가의 국민이 수상자로 선정된 건 처음”이라며 자축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수복했다’며, ‘국가를 정상화시켰다’며 자축하는 그 모습은 한편으로 기괴하고 공허해 보인다. 피부로 느끼고 있는 ‘우리 공동체’는 과연 바뀌었나.

  숙의민주주의란, 숙의(deliberation)가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 형식이다. 이것은 합의적 의사결정과 다수결 원리의 요소를 모두 포함한다.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면, 기업의 논리로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본부에 대항하고 ‘우리들의 연대’를 위해 구성된 대학원 총학생회는 학생 대표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가. 국내 대학 중 5번째로 선포한 것에 큰 의의를 둔 권리장전은 원우들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본지는 지난 호까지 ‘막말 교수’에 대한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명백한 인권침해 사건임에도 ‘수업권’을 핑계 삼아 유야무야 경징계 처리된 게 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아직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누군가로부터 중국인 유학생들에 대한 ‘낙서테러’가 발생했다. 이에 본부는 김창수 총장의 이름으로, 이 같은 “차별행위에 대해 추호의 관용도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앞선 막말 교수 사건을 미루어 볼 때, 이번 사건은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볼 일이다.

  본지는 이번 호 포커스를 통해 ‘학문공동체 정상화’를 위해 통섭·융합을 화두로 간학문적 연구란 무엇인지 짚어봤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이(間)’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학문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학문인가. 학문‘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한편으로는 우리들의 숙의의 장을 되살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평등·우애’의 보편 인권을 향해가는 ‘학문의 정신’을 되짚어 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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