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은 / 다빈치교양대학 교수

[교수칼럼]

인문학 대학원생의 황톳길

오창은 / 다빈치교양대학 교수

 부산대 한문학과 강명관 교수의 글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 “나는 쉰 이전에 정말 한 마리 개였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따라서 짖을 뿐이었다. 왜 짖느냐고 물으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냥 실실 웃을 뿐이었다.” 명나라의 사상가 탁오(卓吾) 이지(李贄)가 《속분서(續焚書)》의 〈성교소인(聖敎小引)〉에서 한 말이다. 이탁오는 명나라 시대의 지배담론인 성리학에 반기를 든 혁신적 학자로, 위에서 인용한 ‘따라 짖는 개’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공부론이라 할 수 있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따라 짖는 개’의 역할을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도 흉내꾼일 뿐인 자신을 발견하면, 스스로의 누추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신을 채움으로써,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것이 공부의 길일 것이다.

 지난 16일, 인문학을 공부하는 서울지역 박사과정 원생들과 대화를 나누며 우리 시대 인문학 공부길에 대한 고민이 묵직해지는 경험을 했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그들은 공부의 영역이 지도교수의 전공에 따라 제한되는 것에 대해 답답해했다. 새로운 영역을 공부함으로써 자신의 학자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싶다는 의욕도 내보였다. 인문학 전공자임에도 80년대 문학에서 A.I.와 VR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학문적 관심영역을 보였다. 바뀐 현실과 소통하려는 젊은 인문학자들의 몸부림이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졌다.

 모든 공부는 ‘따라하는 읽기’에서 시작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기’로 나아가고, 궁극에는 ‘자신만의 글쓰기’에 도달한다. 인문학은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깨달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귀착된다. 세계적인 문명교류학의 대가 정수일 선생은 “학문, 특히 인문과학은 활자화되어 출간했을 때만이 의미가 있는 법이오”라고 했다. 김열규 선생(서강대 명예교수)도 ‘글읽기 공부’는 ‘글짓기 공부’라며, “글공부는 남의 글을 읽어서 제 글을 짓는 수준까지 다다라야 비로소 제구실을 한다”고 강조했다. 인문학은 자신의 책을 만드는 문헌학인 셈이다.

 이탁오가 이야기한 ‘공부의 길’은 후생가외(後生可畏)를 실현하는 글쓰기로 연결된다. 젊은 학자들은 ‘따라 짖는 개’처럼, 선배 학자들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는 존재로 간주되기 쉽다. 나는 학문의 길은 ‘전복의 길’이라고 본다. 지도 교수와 제도를 따르기보다는 같은 시대를 호흡하는 동료들과 더불어 ‘다른 길을 걷는 것’이 ‘제 글을 쓰는 글공부’의 기본이라고 본다. 학문의 길에 젊은 학자와 원로학자의 구분은 없다. 다만, ‘따라 짖는 개’와 ‘스스로 깨닫고 짖는 개’가 있을 뿐이다.

 한하운의 시처럼, 우리 시대 인문학도의 길은 “가도가도 황톳길”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숨막히는 더위”도 수그러들 조짐도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더욱 큰 소리로 젊은 인문학도를 응원한다. 스스로 깨달아 큰소리로 짖어 사람들을 깨워라, 젊은 학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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