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만난 미술관

기울어진 운동장에 선, 정의의 여신

가에타노 간돌피, 〈정의의 여신의 우의화〉,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루브르 박물관

  정의를 상징하는 여신, 디케(Dike)는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디케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정의’ 또는 ‘정도(正道)’를 뜻하며 고대 모든 사람들에게 숭배됐다. 이 정의의 여신은 저울과 검을 들고 있는데, 이는 각각 법의 형평성과 엄정한 집행을 상징한다. 눈가리개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는 대체로 불필요한 것을 보지 않으려는 여신의 ‘공정함’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정의의 여신이 처음부터 저울과 검 그리고 눈가리개 모두를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디케는 검만 쥐고 있었다. 그러다 중세 이후 저울이 등장했고, 눈가리개는 1494년 독일에서 브란트(S. Brant)의 <광대선(The Ship of Fools)>이라는 풍자 작품을 통해 처음 표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공정함을 상징하는 눈가리개가, 사실 눈을 가려 오히려 잘못된 판결을 내리게 하는 원천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간돌피(Gaetano Gandolfi)의 정의의 여신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부가 부를 창출하는 현대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의의 여신 디케가 든 저울은 어쩌면 때가 묻어 이미 기울어진 저울일 수 있다. 그 기울어진 저울을 어떻게든 바로잡기 위해 천사가 붙잡고 애써도 무표정으로 꼿꼿이 저울을 들고, 곧 검을 휘두를 것 같은 저 여신은 과연 정의의 여신일까.

김혜미 편집위원 | hyemee7299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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