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7.11.1 수 14:28
기획문화
막장드라마, 안전한 중독김강원 / 중앙대 강사, 국어국문학
조현준 편집위원  |  dision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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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호]
승인 2017.10.31  17: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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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_TV와 대중문화]
현재 한국 대중문화 미디어의 중심에는 TV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TV가 제공하는 대중문화 컨텐츠에 대한 비판적 ‘독해’는 실천적 지성인으로서 수행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기획에서는 그러한 비판적 독해 몇 가지를 4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행복의 환상, TV와 가상체험 ② 파국의 은유, 서바이벌 프로그램
③ TV 드라마, 그들이 막장드라마를 보는 이유 ④ 광고, 광고가 구성하는 대중

 

막장드라마, 안전한 중독

김강원 / 중앙대 강사, 국어국문학

 ‘우리가 막장드라마를 보는 이유’에 대해서는 매체론·작품론적으로 그간 많은 논의들이 있어왔다. 인정하기 껄끄럽지만 한국 TV드라마의 대표 장르는 막장드라마일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막장’의 장르론은 한국 TV드라마를 논함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인 동시에 핵심적인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막장’이란 갱도의 끝이나 막다른 길을 의미하며, 비유적으로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갈 데까지 간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이전에도 이미 참혹한 지경을 지칭해 일반적으로 쓰이던 말인데, 시청자들이 보기에 ‘너무하다’ 싶을 만큼의 자극적인 요소들이 연이어 등장하는 드라마에 대한 탄식의 의미로 붙여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막장드라마가 인기리에 소비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심오한 드라마 이론보다는 수용자(시청자) 중심의 설명이 보다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갈 데까지 간, 너무한 드라마를 보고 있는 상황을 설명해줄 핵심적인 단어는 ‘재미’이기 때문이다. 유명 영화제나 드라마 어워드의 수상작이라면 다소간의 지루함을 참고라도 볼 만하겠지만, 누가 재미없는 막장드라마를 참아가며 볼 것인가. ‘욕하면서 보는 재미’라도 있어야 매일(혹은 매주) 같은 시간 우리는 TV 앞에 앉을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더 강한 자극을 찾는 중독성

 ‘TV드라마를 본다’와 치환되는 1차적 이미지는 거실소파에 앉아 (혹은 드러누워) 일일드라마의 악녀를 보며 혀를 끌끌 차거나 분노하는 ‘아줌마’의 모습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연상은 최근 문화산업적으로 TV드라마가 이룬 가치와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중이 생각하는 TV드라마는 아침드라마나 일일드라마로 대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했던 ‘TV드라마는 저급하다’는 인식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러한 저급함에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이 바로 막장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선입견의 원인을 찾기 위해 TV드라마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볼 필요가 있다. TV드라마는 다른 극(劇)장르인 영화나 연극과는 달리 TV프로그램의 일부라는 점에서 독립성을 갖지 못한다. 이것은 TV산업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다.

   
 

 막장드라마의 시작은 산업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1950년대 처음 시작한 이후, TV드라마는 7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를 견인한 것은 지금까지도 고정적인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일일드라마였다. 동양방송(TBC)의 전설적인 일일드라마 <아씨>(임희재 각본, 고성원 연출)의 폭발적 인기는 방송사들로 하여금 일일드라마의 ‘짭짤함’에 눈을 돌리게 했다. 1970년 3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방영된 드라마 <아씨>는 추정 평균 시청률 70% 이상을 기록하며 절정의 인기를 끌었고, <아씨>의 성공 이후 모든 방송사에서 쏟아지듯 일일드라마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TV는 매일 같은 시간 시청자들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TV 앞으로 불러들이게 됐으며, TV는 비로소 일상으로 중독될 수 있었던 것이다. 중독의 지속을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자극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방송사들의 경쟁과 시청자들의 요구가 맞물려, 이야기는 점차 강력한 신파적 자극 요소들이 더해가게 됐다. 거기에 당시 방송사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양적 증가로 인해 졸속 제작이 거듭되며 TV드라마는 질적으로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 신문지면 등을 통해 종종 ‘막장’에 대한 비판적 논조들이 실리기도 했다. 평론가나 교수는 물론, 주부 등 일반 시청자까지 기고문을 통해 질질 끄는 스토리, 겹치기 출연, 비현실성, 신변잡기 일변의 비생산성 등 일일드라마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심지어는 당시 일일드라마들에 대해 당국에서 방송심의규정을 통해 “무분별한 애정관계 또는 비정상적이거나 부도덕한 남녀관계 및 관능적이고 자극적인 애정묘사”의 소재를 지양하고 좀 더 상황에 충실한 홈드라마를 지향하도록 명문화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일일드라마를 설명하는 내용들이, 현재의 막장드라마에 대입해봐도 크게 다름이 없다는 점이 흥미롭다.

 

드라마로 외면하는 현실의 ‘막장’

 막장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은 현실. 이는 지금의 우리를 설명할 수 있는 함축일 수 있겠다. 우리는 21세기 한국에서 일어난 믿을 수 없는 국정농단사태의 추이를 현재진행형으로 지켜보고 있다. 더구나 최근 사회적으로도 어린 아이들이 희생되는 사건이나 범죄 등은, 비록 직접적인 범죄의 피해자는 아니라 할지라도 시청자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자극적이고 잔혹한 이야기들이 연일 뉴스를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가적 비극과 사회적 참극을 경험하며 겪는 대중들의 트라우마를 일일이 구분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시청자들에게 이 시대는 자극적이고 고단한 것이다. 심지어 방송관계자들은 이제 현실을 뛰어넘을 막장드라마는 불가능하다고 자조한다.

   
 

 이처럼 막장스러운 시대의 반영이기 때문에 막장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일까. 오히려 그 반대는 아닐까. 필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잔혹한 시대를 살아가는 트라우마에 대한 하나의 위안으로 막장은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전망해본다. 최소한 TV드라마의 막장은 그 끝에는 언제나 권선징악의 ‘사이다(속시원한 결말)’가 존재하고 있음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출생의 비밀이 꼬이고 얽혀도, 악녀가 주인공을 팥쥐처럼 구박해도, 주인공 인생은 항상 설상가상의 지경으로 엉망이 되어도, 마지막 회 즈음에 출생의 비밀은 밝혀질 것이고, 악녀는 천벌을 받을 것이며, 주인공은 콩쥐나 캔디나 신데렐라가 그러했듯 행복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현실이 주지 못하는 ‘안전한’ 막장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느 드라마보다도 꽉 막힌 닫힌 결말, 악인이 처벌받고 주인공은 복을 받는 단단한 결말에 비한다면 그 과정의 부조리함이나 오류쯤이야 면죄부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유 없는 증오와 살의가 판치는 우리의 현실이 설명해 주지 못하는 ‘이유’와 ‘결과’를 친절히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막장드라마의 미덕이 아닐 수 없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앞에서 인간은 기억을 지워버리는 방어기제를 작동할 때가 있다. 우리가 TV드라마에서 많이 보았던 ‘기억상실’처럼 말이다. 기사를 읽고 뉴스를 듣기가 두려울 만큼 끔찍하고 기가 막힌 현실이 반복적으로 재현되면서, 대중은 심리적 방어를 필요로 하고 있다. ‘멘붕’의 시대, 위기의 멘탈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면 막장드라마가 보여주는 ‘드라마(허구)’에 방점을 찍은 ‘막장(현실)’의 순화가 더욱 절실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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