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윤 / 이화여대 지역학박사

[신기후체제 이모저모]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와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제 사회는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여 왔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지구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선거로 인해 한 차례 격변을 맞은 국제정세는 한 치 앞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이에 하반기 기획을 통해, 유럽·미국·중국·한국 등의 시각에서 교토의정서 이후의 신기후체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준비하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유럽연합과 파리협약 ② 트럼프 이후의 미국과 신기후체제 ③ 신기후체제에서의 중국 ④ 파리협정 이후, 우리의 과제

신기후체제와 미국의 기후변화정치

정하윤 / 이화여대 지역학박사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자 중국과 더불어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 특히 이산화탄소의 최대 배출국가다. 인구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한다면 미국이 세계 1위의 배출국이다.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량 세계 2위인 에너지 보유국이고, 게다가 석탄 사용량은 세계 1위로, 화석연료 의존도도 높은 편이다. 미국이 기후변화 레짐(regime) 형성을 주도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모범이 되어 다른 국가들이 따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결국 전 지구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문제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 미국은 정치·경제·군사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세계 패권국(hegemon)이며, 그동안 오존층보호를 비롯한 다수의 환경 영역에서 레짐 형성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문제해결에 있어 미국은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다.

 
 
미국은 기후변화 레짐 창출에 있어 오히려 주저하거나, 거부하거나, 혹은 외부자적 입장을 보였다. 특히 미국은 2015년 파리협정 체결과 신기후체제 성립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했지만,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레짐 창출 경로로부터 이탈했다. 미국은 왜 기후변화 문제해결에 있어 소극적이고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가. 이는 미국의 국제적 입장뿐만 아니라 국내 정책이행의 두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국 정부의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입장

  미국 정부의 기후변화에 대한 입장은 그동안 대통령의 소속 정당에 따라 변화해 왔다. 1990년대 민주당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과 고어(Al Gore) 부통령은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이었고, 국제 협력 창출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97년 교토의정서 협상 당시, 미국과 유럽연합은 온실가스의 종류, 배출량 목표, 선진국의 참여 범위 등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다. 이 때 고어 부통령이 마지막 순간 협상 테이블에 등장하면서 극적 타협이 이루어졌고, 교토의정서 제정이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 의회의 반대를 예상하면서, 교토의정서의 국내 비준을 시도하지 않았다. 당시 미 의회는 교토의정서 체결 이전에 이미 미국 경제에 심각한 해를 입히거나 개도국의 의무부담을 포함하지 않는 어떠한 조약에도 권고와 동의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버드-하겔 결의안(Byrd-Hagel Resolution)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교토의정서 비준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의 구체적 방식에 대한 문제가 후속 기후변화 협상의 주제로 등장했지만, 그 사이 새롭게 당선된 공화당의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은 미국의 에너지 위기 극복에 있어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토의정서를 거부했다. 대신 미국은 독자적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계획과 시장 기반의 자발적 방식을 근간으로 한 교토체제와는 다른 소규모 협의 프로세스인 아시아-태평양 파트너십(Asia-Pacific Partnership on Clean Development & Climate)을 따로 진행했다.

  2009년 민주당의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기후변화에 대한 미국의 리더십을 다시 강조하면서, 기후변화 문제해결에 있어 미국의 건설적인 참여를 약속했다. 미국은 중국 등 개도국을 압박하여 포스트 교토체제에 공헌하도록 촉구했고, 자발적 비구속적 체제 추진을 위하여 국가들과의 연대를 모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내 차원에서 행정권한을 통해 자체적인 기후변화정책을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 차원에서 2015년 신기후체제를 규정하는 파리협정 채택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2017년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이전 오바마 행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모두 뒤집고자 했다. 공화당 후보 당시에도 미국 내 석유와 가스, 석탄 개발 및 생산 확대를 통한 에너지 안보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우선순위로 내세우면서, 기후변화 대응을 비롯한 환경 관련 규제 폐지를 공약했다. 실제로 2017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협정이 다른 국가에 불공정한 이익을 주고, 미국인의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파리협정 탈퇴와 새로운 협정을 위한 협상의 필요성을 밝혔다.

주(州) 차원의 기후변화 정책 개발과 신기후체제 전망

  국제 차원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은 대통령의 소속 정당에 따라 변화가 있었지만, 미국 내 기후변화 정책 기조까지 변화한 것은 아니었다. 국제 차원에서의 입장과는 다르게 미국 내에서는 여전히 시장기반의 기술개발을 통한 자발적 방식 기조에 근간을 둔 기후변화 정책개발과 이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 주들은 본래 정책 이행의 주체지만, 기후변화 영역에서는 이니셔티브를 주도하면서 정책 혁신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적극적인 북동부 지역의 뉴잉글랜드 주들은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했고, 2005년 배출총량거래제에 기반한 온실가스 규제 프로그램인 ‘북동부 온실가스 이니셔티브(Regional Green-house Gas Initiative, RGGI)’를 가동시켰다. 또한 일부 주들은 이산화탄소 배출에 강제적 규제 도입을 거부하는 미국 연방정부를 상대로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는 신규 자동차에 대한 탄소배출 기준을 부과하고, 지구온난화 해소법을 제정하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국제 차원의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미국은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주저하거나 혹은 거부하거나 때로 외부자적 입장을 보여 왔다. 파리협정을 통한 신기후체제에서는 협약 당사국인 선진국과 개도국의 참여 및 공동 책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적응·재정·기술·역량강화의 내용이 강조됐다. 파리협정의 내용은 선진국-개도국 공동책임, 자발적 감축, 시장 기반의 방식, 기술개발 등을 강조했던 미국의 기존 기후변화 정책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점에서 미국의 국제 협력 과정에의 참여와 적극적 정책 대응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현 트럼프 행정부의 기후변화 정책 대응의 거부, 연방 차원의 통합된 입법의 부재는 미국이 전 지구 공동의 레짐 창출 경로에 참여 하는 것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미국 주들의 활발한 기후변화 정책 개발 및 이행은 연방 차원의 정부 혹은 의회의 입장과는 별도로 미국 내 기후변화 대응의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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