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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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17.10.11 수 20:35
기획문화
[문화]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 혹은 파국을 예비하는 세례요한문강형준 / 문화평론가
조현준 편집위원  |  dision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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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호]
승인 2017.09.26  16: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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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_TV와 대중문화]

 현재 한국 대중문화 미디어의 중심에는 TV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TV가 제공하는 대중문화 컨텐츠에 대한 비판적 ‘독해’는 실천적 지성인으로서 수행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기획에서는 그러한 비판적 독해 몇 가지를 4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행복의 환상, TV와 가상체험 ② 파국의 은유, 서바이벌 프로그램
③ TV 드라마, 그들이 막장드라마를 보는 이유 ④ 광고, 광고가 구성하는 대중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 혹은 파국을 예비하는 세례요한


문강형준 / 문화평론가


 ‘생존 혹은 죽음’이라는 상황을 설정하고, 이를 감동과 웃음 등의 요소를 통해 한 편의 극적인 쇼로 만들어내는 예능. 이를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는 수년 전에 등장해 이제는 예능의 한 장르가 되어버린,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문화적 형식이라 할 만하다. <나는 가수다> <위대한 탄생> <불후의 명곡> <프로듀스 101> <K팝 스타> <슈퍼스타 K> <팬텀싱어> <쇼미더머니> 등 우리 기억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이 장르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주로 음악 경연을 배경으로 삼아 시청자들에게 멋진 공연들을 보여준다. 그 음악의 뒷면에는 출연자들의 인생 배경, 감동적 사연, 뛰어난 재능, 성공해야 하는 이유 등등이 제시되는데, 사실 이 장르의 핵심은 음악 자체보다는 음악 뒤편에서 펼쳐지는 인생 드라마인 것처럼도 보인다. 주로 리얼리티 쇼인 이 장르의 프로그램들은 가끔 ‘악마의 편집’이라고도 불리는 수단을 통해 몇몇 출연자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들의 삶 자체를 재료 삼아 공연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아무리 사연이 훌륭해도 재능이 출중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이 경연은 우리에게 삶과 재능, 혹은 인간과 능력 간의 관계를 분명히 인식시킨다. 그것이 실력이든 매력이든 행운이든 간에, 재능이 없는 이는 성공에 이를 수 없다는 어떤 ‘철칙’ 같은 것을 말이다. 요컨대,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는 삶과 능력의 결합 없이는 생존이나 성공이 불가능하다는 ‘가치’를 시청자들에게 매주 확인시킨다고도 할 수 있다.
 

TV 밖으로 흘러넘친 생존 서사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그 ‘가치’에 대한 확인 작업은 텔레비전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며, 오히려 텔레비전 바깥에서 훨씬 강력하다. 수십 명의 취업준비생들을 인턴 사원으로 모집하여 이들 중 ‘O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광고하는 대개의 인턴모집 광고들은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의 형식이 취준생들의 삶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시’ 등을 비롯한 전통적 시험제도가 결과만을 보여준다면, 요즘의 인턴제도는 결과가 생겨나는 과정, 곧 인턴들이 수개월 동안 회사에서 일하며 보여주는 능력과 결과를 인과적으로 결합시킨다.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는 집단적일 때 가장 강력한 효과를 나타내며, 이 속에 들어간 모든 참가자들은 과정을 공유하고 있기에 생존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쉽게 말해, ‘내가 생존한 이유는 내가 능력있기 때문’ 혹은 ‘내가 생존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부족하기 때문’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일단 이 프레임 속에 들어가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생존과 관련한 결과들은 결국 ‘나의 문제’로 귀결되는 셈인데, 이로 인해 이익을 보는 쪽이 어디인지 알아차리긴 어렵지 않다. 방송을 만드는 미디어나 인턴을 싼 값에 부리는 기업은 한 명 혹은 O명을 생존시키는 비용을 들여 이러한 서바이벌의 형식을 자연화하는 놀라운 이익을 얻는다.

 대중문화의 생산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의 서사로 기능한다. 가령 최근의 ‘농촌예능’이나 ‘육아예능’은 적막하고 살벌한 도시 생활 저편에 ‘농촌’과 ‘아이’를 배치함으로써 경쟁에 지친 한국인들의 삶을 ‘힐링’하는 서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위험하다. ‘힐링’은 경쟁이라는 디폴트 상태에 대한 부분적이고 정서적인 위무에서 그쳐야 한다. 경쟁과 생존이 언제나 가장 일반적이고 본질적인 삶의 요소로 재현되어야 하기에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는 자기 삶의 이야기와 자기의 재능을 결합시켜 생존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경쟁과 생존에 바쳐진 한국인들의 삶의 모습에 서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힐링과 서바이벌의 변증법 속에서 한국적 삶의 어떤 실재 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것이 ‘막장 드라마’와 ‘깡패 영화’ 장르다. 힐링과 서바이벌이 현실의 문제와 모순을 가리면서 이를 아름답거나 감동적이거나 끈질기거나 긍정적인 방식으로 넘어서려는 서사를 보여준다면, 막장 드라마와 깡패 영화는 현실의 문제와 모순이 실은 우리의 삶을 ‘막장’으로 이끌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막장 드라마는 삶 자체가 풀 수 없이 ‘꼬여가는’ 모습을, 깡패 영화는 생존과 경쟁과 성공에의 욕망이 허무한 죽음으로 귀결되는 모습을, 그러니까 한국적 삶의 ‘끝’이 무엇인지를 은유하는 서사인 것이다.

 

   
 

생존의 의미, 또는 생존 그 자체

 

 이 ‘끝’이 글로벌한 차원에서 펼쳐지는 장르가 ‘파국서사’다. 현 문명의 종언과 그 이후를 그리는 파국서사는 우리가 만들어낸 세계가 임계치에 이르렀음을 상상적으로 드러낸다. 재난 블록버스터와 아포칼립스 소설, 자원 없는 지구를 벗어나 화성에 정착하는 영화, 인간이 시체가 되어 다른 인간을 살아있는 시체로 만드는 좀비서사 등은 근대 이후의 이성, 합리성, 인간주의,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세상에 이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가장 급진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지질학자들과 생태학자들이 만들어낸 ‘인류세(人類世, the Anthropocene)’라는 단어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 특허를 낸 1784년부터라고 말한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과 전세계적 확산은 근대적 인간의 급격한 생산성 증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져가는 속도 역시 급격히 빨라졌음을 함께 보여준다. 인류는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판 것이다. 포스트아포칼립스 서사는 종말 이후 인간 자신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근대적 가치들(민주주의, 페미니즘, 휴머니즘, 인권, 독립적 주체, 차이의 인정)이 어떻게 완벽히 사라질 수 있는지를 그리고 있다. 파국서사 속에서 인간은 드디어 ‘생존을 위한 생존’이라는 말을 사유하게 된다. 심지어 좀비 영화에서는 생존한다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다시 말해, 파국서사 속의 ‘생존’은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의 ‘서바이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파국서사의 생존은 진정 일차원적인 것이며, 무엇보다 그 속에는 ‘엔터테인먼트’가 사라진다. 오늘날의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는 아직 파국서사 속의 건조한 생존에 직면하기 전, 인류가 누리는 마지막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조건 속에서 어떻게든 생존해야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면, 그 자본주의가 만들어낼 최후의 조건, 곧 인간과 자연을 포함한 생태계 자체의 파국 상황 속에서 인간의 ‘생존’이라는 것에는 웃음도, 쾌락도, 감동도 없을 공산이 크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는 어쩌면 곧 다가올 파국을 예비하는 세례요한 같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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