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만난 미술관]

마라의 죽음으로 본 프랑스혁명의 명암

다비드, 〈마라의 죽음〉, 1793년, 캔버스에 유채, 프랑스 랭스 미술관

   이 그림의 주인공 마라(Jean Paul Marat)는 프랑스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에 왕당파뿐만 아니라 같은 공화주의자 중에서도 급진적이지 않은 사람은 모두 인민의 적으로 몰고 공격했다. 그는 급진적인 ‘피의 혁명’을 주도하여 많은 사람을 단두대에 보냈다. 

   그의 행적에 제동을 건 것은 24살의 샤를로르 코르데(Char-lotte de Corday)였다. 온건한 혁명주의자였던 그녀는 폭력과 숙청이 오히려 공화국을 세우는데 해가 된다고 보고 그를 살해했다. 프랑스인들은 죽은 마라를 애도하며, 코르데를 사형시킨다. 

   그러나 프랑스 내에서 많은 이를 죽게 한 혁명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마라와 코르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뒤집어지기도 한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마라의 죽음>을 그린 다비드는 혁명정부를 무너뜨리고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황당파(황제 옹립 당파)로 노선을 변경해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1801)> <나폴레옹의 대관식(1807)> 등을 그렸다는 점이다 . 
 
  이에 많은 이들은 그를 권모술수에 능숙한 작가로 평가하기도 하고, 권력 앞에 무능했던 작가로 보기도 한다. 결국, 그는 1814년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며, 프랑스에서 쫓겨나 브뤼셀로 망명하고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

김혜미 편집위원 | hyemee7299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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