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도 / 다빈치교양대학 교수

[교수칼럼]


친구와 ‘도반(道伴)’

이연도 / 다빈치교양대학 교수


 불가(佛家)에선 함께 수행하는 이를 도반이라 한다. 도로써 맺어진 벗이니, 친구와는 다른 의미이다. 친구가 강한 정서적 결속으로 맺어진 관계라면, 도반은 눈 밝은 성찰을 필요로 하는 관계이다.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직업으로서 학문을 염두에 두는 이라면, 함께 공부하는 이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논어>의 첫 머리가 왜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은가”로 시작하는 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외롭고 쓸쓸한 일이다. 불도를 닦는 수행만큼이나 자신을 한계 상황에 직면하게 하고, 세속의 잣대에서 보면 견디기 어려운 모욕과 가난이 동반되는 일이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곤 하지만, 학위과정의 길은 여전히 막막하고 설령 졸업을 해도 대학에서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다. 무크(MOOK)로 상징되는 교육지형의 변화와 연구교수, 강의교수 등 비정년 트랙의 증가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차별과 과중한 강의 부담으로 스스로 교단을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흔한 고별사 한 마디 없이 묵묵하게 떠나는 그들을 차마 잡을 수 없는 이유는 애초 공부를 시작할 때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백척간두에서 한 발짝 내딛는 심정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엔 서글픔과 기대가 교차한다. 변하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의 공포는 이제 우리 사회의 고질로 자리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소의 뿔처럼 꿋꿋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기란 쉽지 않다. 수행에서 도반이 중요한 이유는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기 때문이다. 대개 진실한 관계는 깊은 상처의 공유에서 비롯된다.

 사회의 요체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통에 있듯, 대학 또한 인간관계의 소통에서 그 결실을 맺는다. 철학자 김영민은 ‘동무’란 ‘같은 것(同)’이 ‘없는(無)’ 관계라 말하는데, ‘화이부동(和而不同)’과 통하는 말이다. 함께 어울림에 배움이 있고, 대화에 운율을 맞출 수 있는 사귐은 서로 뜻은 같되 어느 한쪽에 동화되지 않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공부의 길을 함께 걷는 동무가 든든함과 동시에 서늘한 관계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친구가 정서적 타락으로 자칫 ‘패거리’로 전락하는 데 비해, 나와의 사이에서 늘 ‘틈’을 유지하는 벗은 그 ‘다름’으로 관계의 소중함이 지속된다. 담헌(湛軒)과 연암(燕巖)의 관계가 그러했고, 이덕무와 박제가의 교우(交友)가 나이를 떠나 그러했다. 내게 그런 이가 있는지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소나무의 푸름은 날 차가워야 알게 되고, 진실한 인간관계는 세월 지나 확인된다. 막막한 삶에도 간혹 한숨 돌리게 되는 것은 그런 벗 한 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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