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7.9.14 목 16:45
특집
[문화]TV가 대신 쉬어 드립니다김형식 / 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
조현준 편집위원  |  dision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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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호]
승인 2017.09.05  2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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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한국 대중문화 미디어의 중심에는 TV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TV가 제공하는 대중문화 컨텐츠에 대한 비판적 ‘독해’는 실천적 지성인으로서 수행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기획에서는 그러한 비판적 독해 몇 가지를 4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행복의 환상, TV와 가상체험 ② 파국의 은유, 서바이벌 프로그램
③ TV 드라마, 그들이 막장드라마를 보는 이유 ④ 광고, 광고가 구성하는 대중

 

 

TV가 대신 쉬어 드립니다
일상의 몰락과 대리되는 욕망

김형식 / 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

 예능의 무대는 방송국을 벗어났다. 스튜디오에서 대본을 주고받던 토크쇼에서, 야외 집단 토크로 변하더니, 버라이어티를 거쳐, 이제 예능의 중심은 여행과 맛집 탐방으로 확장됐다. 연예인에게 개인기나 에피소드를 강요하던 방송에서 결혼, 육아, 먹방이 주요 테마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연예인의 꾸며진 모습이 아닌 민낯을 원하며 카메라는 그들의 먹고 자는 일상을 중계한다. 스타라고해서 사는 모습이 별다르겠냐만 사람들은 그 평범함에 열광한다. 시민들의 양심을 준엄하게 꾸짖으며 냉장고를 포상하던 이경규가 <한끼줍쇼>에서는 시민에게 냉장고 속 음식을 내어줄 것을 청한다. 공익의 수호자에서 나그네로 변모한 이경규의 모습만큼이나 변한 예능은 이제 일상화·미시화됐다. 어찌된 일일까. 사람들의 여가가 증대되면서 일상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일까.
 

일상-예능의 유행과 여가의 외주화


 여가(餘暇)는 ‘남겨진 틈’을 의미하며 경제활동 시간들 사이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잉여로써의 시간이다. 산업화 시대에 여가란 단지 인간-기계의 방전된 배터리를 재충전하는 시간이었다. 휴식 없는 노동이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리기에 최소한의 휴식을 제공하여 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한 시간인 셈이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여가가 단순히 잉여나 생산을 위한 충전이 아니라 오히려 주(主)이며, 여가를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라는 의식이 확산됐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여가란 여전히 실낱같은 ‘틈’에 불과하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자는 OECD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긴 노동 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에 비해 4달을 더 일하는 셈이지만 소득은 70%에 불과하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환경에서 제대로 된 여가는 어불성설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인의 여가시간은 평일 3.1시간, 주말 5시간으로 10년 전보다 오히려 감소했으며, 그나마도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TV시청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높은 실업률에 신음하는 청년들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다. 양극화는 부단히 심화되고 있고, 수많은 청년들은 최저시급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간다. 미래를 저당 잡힌 채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이른바 ‘프레카리아트(precariat)’들은 일찌감치 ‘일상적’ 삶을 포기한 채 비연애, 비혼, 비출산을 받아들였다. 해외여행이나 맛집 탐방 역시 사치일 뿐이다. 저임금은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하고, 불안정성은 시간을 쪼개 이직이나 취업을 준비하기를 강요하며, 높은 주거비와 생활 물가는 가용자원을 마지막까지 앗아간다. 여가는 애초에 허락되지 않는다. YOLO(You Only Live Once) 열풍, 즉 ‘당신은 한 번만 산다’는 당연한 명제가 새삼스럽게 환기되는 것은 오히려 사람들이 한 번 뿐인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대신 연예인들이 욕망을 대리한다. 연애와 결혼을 <최고의 사랑>과 <우리 결혼했어요>가 대리해주고, 출산과 육아를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빠! 어디가?>가 대리해주며, 편의점 도시락을 덥혀먹는 나를 <맛있는 녀석들> <3대 천왕>이 대리해준다. 원룸에 앉아 인간관계마저 포기한 채 레토르트 식품을 덥혀 먹지만 TV속 달콤한 연애, 귀여운 아이들, 맛있는 음식을 보며 위안 받는다. 요컨대 프레카리아트들은 얼마 되지 않는 여가를 연예인들의 일상-예능을 보면서 외주(外注) 한다. 과거에 TV가 일과를 마친 후 가족과 함께 거실에 편안하게 앉아 쉬며 즐기는 여가의 도구였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당연히 누려야 할 일상을 포기한 채, 얼마 되지 않는 여가시간을 스마트폰 속 타인의 일상을 관음하는데 사용함으로써 충족은 위임된다.
 

가족이 되어드립니다: <효리네 민박>과 <한끼줍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년들은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속에서 혼밥을 먹으며 혼자 TV를 본다. 최소한의 교류조차 단절된 관계의 공백을 파고드는 것은 <효리네 민박>과 <한끼줍쇼>를 비롯한 가족 관찰 예능이다. 이전의 가상 결혼이나 동거 프로그램과 달리, 이제 예능은 실제 가족을 등장시킨다. 구혜선, 안재현의 <신혼일기>가 신혼생활의 풋풋함을 보여주었다면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와 이상순은 오랜 친구 같은 편안한 관계를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진 것은 일반인을 적극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효리와 상순, 그리고 알바생 아이유의 일상이 프로그램의 한 축을 담당하고, 민박 손님으로 들어오는 일반인 그룹이 또 다른 축을 담당한다. 민박집은 손님들에게는 ‘비일상’이며 이벤트의 공간이지만, 부부에게는 일상의 공간이다. 카메라는 민박객들의 여행과 효리 부부의 생활을 교차편집하며 비일상과 일상을 넘나들지만 방점은 분명 부부의 일상에 찍혀있다. 제작진의 개입이나 작위적 에피소드는 최소화된다. 거기서 드러나는 효리와 상순 사이의 신뢰와 애정의 관계는 지옥고 속 결핍된 ‘나’의 욕망을 판타지로 채운다.


 반면 <한끼줍쇼>는 일반인 가정에 집중한다. 이경규와 강호동은 가가호호(家家戶戶) 돌아다니며 함께 식사할 것을 청한다. 성공하면 집 안에서 일반인 가족과 저녁을 먹고, 실패하면 편의점에서 먹게 된다. 이들은 끊임없이 ‘혼밥’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혼밥은 미션에 실패했을 때 주어지는 ‘형벌’로써 사용된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동네는 대부분 구기동, 한남동 등의 부촌(富村)이나 적어도 ‘한 끼를 줄’ 여유가 있는 가정에 집중되어 있다. 원룸에 사는 청년이나 노인들은 애초에 대상에서 배제된다. 노량진과 봉천동 등이 몇 번 방송 되었으나, 24%에 달하는 1인 가구의 비율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숫자다. 1인 가구는 현실을 벗어날 원대한 꿈과 힘들지 않음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지만, 다인 가구는 일상의 풍요로움과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행복의 서사를 전시한다. 그들의 평소 식사모습을 재현하는 ‘한끼극장’ 코너는 혼밥은 쓸쓸하지만 함께 하는 식사는 따뜻하다는 판타지를 강화함으로써, ‘규범적인’ 가구형태와 가족 이데올로기는 재생산된다.


 오늘날 몰락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타인의 일상을 관음함으로써 위안과 충족을 희구한다. 그러나 대리된 경험이 주는 위무(慰撫)는 일시적이다. 스크린 속 일상은 전원이 꺼지면 사라지는 환상일 뿐이며, ‘리얼리티’ 예능은 그들의 ‘리얼’이지 나의 ‘리얼’은 아니다. 리얼은 ‘한 번만 사는’ 이 삶뿐이기에, ‘그러므로 소비하라’는 결론이나 위임된 충족이 아닌, 온전한 삶이, 그리고 일상이 회복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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