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리 / 인권센터 전문연구원

 [인권의 창(窓)]

 인간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인권(Civil Rights)이라는 단어의 역사에 대해 쫓는다. 시민권, 인권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21세기 인권은 어떤 변화를 맞이했으며 허와 실이 무엇인지 말한다. 또한 인권과 관련한 굵직한 사건에 대해 파헤쳐보며 세계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4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인권과 역사 ② 인권과 국가권력 ③ 인권과 사회운동 ④ 인권과 소수자


투쟁의 역사, 인권의 역사


김규리 / 인권센터 전문연구원

 투쟁(鬪爭)은 무엇인가를 원하고 갈망할 때 일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왕정시대에서 인간임을 인정받기 위해 투쟁을 벌였고, 그 다음에는 노예가 아닌 인간임을 인정받기 위해, 19세기 말에는 여성도 인간임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지속해 현재의 인권 개념이 존재하게 됐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절규는 결국 인권으로 귀결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인권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인권이 무엇인지, 인권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인권(人權)이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권리를 말하는데, 이는 잠깐 소유하는 권리가 아니라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니는 ‘당연한’ 권리라는 의미이다. 물론 ‘당연한’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기까지는 지난한 세월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역사적으로 인권이란 단어의 시초는 인권이 아닌 ‘자연권(自然權)’이었고, ‘자연권’에서 ‘인간의 권리(rights of man)’로, ‘인간의 권리’에서 다시 ‘인권(human rights)’으로 발전했다.
 인간의 3대 주권을 주장한 영국의 철학자 로크는 인권을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첫 번째로, (당시에는 왕이나 신(神)이 인간을 지배했기 때문에) 왕이나 신이 인간에게 생명권을 주었다고 보았고, 다음으로는 남에게 간섭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권리라는 의미의 자유권, 마지막으로 인간의 노동으로 인해 생성된 재산을 소유할 권리인 소유권을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로크의 인권론은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에 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까지도 인권의 기본 토대를 장식하고 있다.

첫 번째 발견, ‘인권’

 

 
 

인권의 역사는 유럽의 시민혁명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시기는 16세기부터 17세기로, 흔히 계몽주의 시대라고 불리는 때다. 이 시기에는 종교혁명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중상주의가 발전했고, 이로 인해 평민 계급이지만 자본이 많은 부르주아들이 나타나게 된다. 부르주아들을 포함한 유럽의 국민들은 엄격한 신분제와 봉건 경제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투쟁을 시작하는데, 맨 처음 영국에서 이루어낸 시민혁명을 명예혁명이라고 하고 이후 이 명예혁명은 ‘권리장전(1689)’이라는 단어로 대변된다.
 그 후 1776년 미국혁명으로 태동된 ‘미국 독립선언문’에는 생명권과 자유권, 행복추구권을 담보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더불어 프랑스 대혁명은 미국혁명에 영향을 받아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를 위하여 투쟁했다. 따라서 계몽주의 시대에는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권, 생명권 등 보편적인 권리를 얻기 위한 투쟁의 시기이자, 인권의 토대를 구축했던 때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산업혁명 시대로,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의 발전으로 이루어진 공업화 시대를 이르는 말이다. 산업혁명 시대 이전까지 중세 유럽은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농노(農奴)라고 불리는 노예제도가 존재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식민지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프랑스는 1794년 ‘노예 폐지령’을 시행해 노예제도를 맨 처음 폐지한 나라가 됐다. 영국의 경우는 1807년 식민지에서의 노예무역을 폐지한데 이어 1833년 노예제 자체를 폐지하자는 결의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인 1863년 노예해방을 선언하게 됐다. 산업혁명 시대의 인권을 정의하자면 참정권과 노동권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시민들은 인권을 위해 스스로 조직을 형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국제연합(UN)이다. 특히 히틀러로 대변되는 나치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자행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을 비롯한 집시, 장애인, 성소수자들의 학살은 이 시기에 일어난 인권유린의 대표적인 사건이다. 1948년 12월 10일, 드디어 UN은 ‘다함께 달성해야 할 하나의 공통기준’으로서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고, ‘세계인권선언’은 지금까지도 우리가 지켜야 할 인권의 기준을 알려주는 지표로써 활용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될 당시 UN은 58개국 각자가 처한 상황과 정치적 이데올로기, 경제적 차이나 역사와 문화의 배경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가치를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특히 개개인의 인권을 천부적 권리로 보면서 인류 최초로 세계 각국이 함께 인정한 선언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도 헌법, 국가인권위원회법, 아동복지법, 장애인복지법, 양성평등기본법, 남녀고용평등법, 교통약자법 등을 제정 및 개정하면서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인권침해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인권침해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특히 법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는 ‘대학’내의 인권침해 상황은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학교라는 사회 공동체에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존재하고, 거기서 나오는 세대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이전에는 별것 아니라고 치부하던 행동이나 말들이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학원생을 포함한 학생들은 교수나 직원이 학교생활에 있어서 절대적인 갑이라 생각하고 인권침해나 성희롱 혹은 성폭행을 당해도 함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덮어놓은 상처는 잠깐은 잊을 수 있을지 모르나 치유되지 않고 곪아 결국 연세대 텀블러 사건처럼 다른 부분으로 어긋날 수도 있다.
법 격언 중 유명한 말이 있는데, 바로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말이다.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권리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본인이 가진 인권이라는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한다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는데 함께 싸우고자 연대하는 것이다. 비록 시작은 미비할지라도 이러한 한 걸음 한 걸음이 인권의 역사를 진보시킬 수 있을 것이다.

김혜미 편집위원 | hyemee7299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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