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준기 / 영상학과 (디지털이미징전공) 교수

[과학] 그것을 알고 싶다, 과학수사

2000년대 들어서 범죄 수사 드라마들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속 장면들로 인해 과학적 증거들을 통해 범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기대는 높아져만 갔다. 하지만 현실 수사에서는 과학적 증거를 찾지 못하거나 찾더라도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수사의 대표적인 기법들을 소개하고 그 원리를 알리고자 한다. 더불어 그 한계와 향후 과학수사의 미래까지 조심스럽게 타진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수사상황에서의 행동분석 ② 뇌와 거짓말 탐지 ③ 유전자 감식을 통한 과학수사 ④ 법보행분석

용의자 식별의 진일보, 보행인식

백준기 / 영상학과 (디지털이미징전공) 교수

  현대 사회는 수많은 정보들로 서로 얽혀있다. 또한 그 속에서 원하는 정보를 얻거나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정확한 인식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은행 업무를 볼 때, 강의실에서 출석을 확인할 때, 국경에서 입국 수속 할 때, 본인 확인을 할 수 없거나 다른 사람과 혼동된다면 이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범죄 용의자가 다른 사람으로 잘못 인식될 때 발생할 수 있는 피해와 혼란은 상상하기 싫은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신분증 확인 등과 같은 일상적인 방법 이외에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개인식별 방법은 얼굴인식, 지문인식, 음성인식, 홍채인식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크게 자발적 참여 방식과 그렇지 않은 방식의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출입국 수속을 할 때 피식별자가 스스로 자신의 손가락을 지문인식기 위에 가져다 대거나, 얼굴인식 카메라를 응시하여 자발적으로 식별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식별의 정확도와 신뢰성이 높은 반면, 피식별자의 동의나 협조 없이는 식별과정의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범죄 상황에서 용의자를 식별하는데 사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비접촉식·비자발적 식별 방법이 있는데, 이것은 불특정 다수의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대신 영상의 해상도와 같은 정보의 품질이 매우 낮아서 정확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서 원거리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CCTV로 녹화했다고 해도, 충분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얼굴 인식을 통한 용의자 식별이 불가능하다.

법보행분석의 적용사례

  걸음걸이 혹은 보행인식은 열악한 환경에서 녹화된 영상이 해상도가 낮고, 조명이 충분하지 않고, 잡음 등으로 훼손된 경우에도 용의자를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개인의 대략적인 윤곽 추출을 통해서 보폭, 걸음 속도 및 개인별로 특성화된 걸음 습관 등을 분석하여 용의자를 식별할 수 있다.

  ‘법보행분석’이 증거로 채택된 첫 사례는 2015년 4월에 발생한 한 남성의 살인 사건이다. 당시에 대구 금호강 둔치에서 발견된 시신의 부검결과 사인은 다발성 두부손상으로, 무언가에 의해 머리를 17차례 이상 가격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15년지기 친구 박 씨는 억울하다는 편지를 방송국에 보내고, 그의 동생이 박 씨의 무죄를 주장하는 인터뷰까지 진행했다. 이에 국내외 다수의 법보행 전문가에게 CCTV 영상과 박 씨의 영상을 의뢰하고 의견을 물은 결과, 전문가들은 “법보행분석은 사람들의 걸음걸이나 그 개별적 특징을 보고 특정인물을 분별하는 것을 뜻한다”며 “방송국에서 확보했던 4개 영상의 보행은 모두 같은 특징을 보인다. 이 남자는 무릎 아래 다리가 내반슬(소위 O자) 다리이고 불안정한 보행을 하고 있다. 또한 발을 심하게 바깥쪽으로 향하는 평범하지 않은 걸음걸이를 하고 있다”며 이 세 가지 사항을 볼 때 박 씨와 CCTV 속 남자가 같은 특징을 지닌 동일인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결과가 유력한 증거로 채택되어 당시 용의자 박 씨는 유죄가 확정되었다.

걸음걸이 분석의 원리

  사람의 걸음걸이는 24개의 성분으로 분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통 사람의 가장 작은 걸음 주기는 왼발과 오른발을 각각 한 걸음씩 내딛는 스트라이드(stride)로 구성되고, 개인마다 한 스트라이드에 걸리는 시간, 그 안에서 발꿈치의 높이가 변화하는 정도, 그리고 양 발의 간격이 변화하는 특성들이 서로 다르다는 원리에 의해서 보행인식이 수행된다. 1990년대 초반에 연구실 수준에서 수십 명 정도의 작은 모집단의 걸음걸이를 녹화하고 분석하는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를 미국 국방성에서 HumanID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이러한 초기 연구를 시발점으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카네기멜론 대학, 중국자동화학회 등에서 많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보행인식의 방법은 크게 모델 기반 방법과 모델을 사용하지 않은 방법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모델 기반 방법은 보행자의 옆모습을 머리겦緇?팔겢摸?등의 영역으로 분리한 후, 각 영역을 타원겵太콅단진자 등의 모델에 맞추어서 움직임을 분석한다. 특히 사람의 신체 구조를 각 관절을 절점으로 할당한 뒤 계층적 직선으로 모델링한 방법이 가장 정확한 분석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실제 영상을 모델에 정합하기 위해서 많은 연산과 시간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다. 모델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은 보행자를 촬영한 동영상 프레임의 시간·공간적 변화를 분석하기 위해서 광류(optical flow) 혹은 이진화된 윤곽 등을 이용한다. 또한 각 프레임으로부터 추출된 자기유사도(self-similarity property)와 주성분분석(PCA)을 사용한 보행인식 방법이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 이외에도 시간적으로 변화하는 영상프레임을 3차원 공간으로 가정한 3차원 비디오튜브에서 고유공간을 분석하는 방법도 제안되었다.

법보행분석의 미래

  보행인식 기술도 넓은 의미에서 컴퓨터 시각 분야 인식 기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열 명의 서로 다른 보행자들이 각기 가지고 있는 특성을 미리 저장한 상태에서, 그들 중 어느 한 명의 보행 영상이 입력되면 컴퓨터가 누구의 걸음걸이인지 판단하는 기술이다. 이와 같은 인식 기술은 현재 인공지능과 딥러닝 기술에 의해서 매우 효과적이고 정확한 구현이 가능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각 보행자들이 보행 특성을 사용해서 인공신경망의 가중치를 학습시킨 후에, 실제 보행자 영상이 입력되면 인공신경망이 보행자를 판별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방법은 방대한 입력데이터를 사용해서 신경망을 학습시키면 기존 방식에 비해서 월등한 인식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연구로 증명됐다.

  보행인식이 가장 중점적으로 활용되는 분야는 범죄 현장이다. 자발적인 식별방식에 비해서 정확도가 많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한된 증거 환경에서 법적 판단을 위한 소중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범죄 현장 이외에도 의학 분야에서 사람의 걸음걸이 변화를 통해 신경계통겚牡컖관절 등의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재활 분야에서도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