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7.10.11 수 20:35
기획
[사회문화] ‘혼밥’에 가려진 ‘흙밥’변진경 / <시사IN> 기자
정석영 편집위원  |  yae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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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호]
승인 2017.06.06  02: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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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 가구의 문화]

  ‘혼밥’ ‘혼술’ ‘혼족’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나 홀로 활동의 기저엔 대한민국의 중심적인 가구 형태가 되어가고 있는 ‘1인 가구’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개인주의화를 통한 독립의 한 형태로 읽어내기도 하지만, 대다수 ‘1인 가구’의 실상은 독립이 아닌 고립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본 기획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주거’와 ‘식사’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1인 가구’가 놓인 고립과 그 극복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독립과 고립 사이  ② 흙밥 보고서
 

 

‘혼밥’에 가려진 ‘흙밥’

변진경 / <시사IN> 기자

 

  지난 2월, 인터넷 한 커뮤니티에서 충격적인 글을 접했다.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 중 정말 흙수저 같았던 음식은 뭐예요”라는 게시물과 그 아래 달린 댓글들이었다. “아리수 먹고 3일 굶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할 때 얼린 폐기 삼각김밥 3개 녹이지 않고 부숴 먹었다” “방값과 면접 교통비에 쪼들려, 라면 수프와 고시텔 밥으로 연명하고 있다” “물에 카레 가루만 풀어 끓여 마신 적도 있다” “밥, 쌈장, 올리브 통조림으로 한 달 버텨봤다.”

  인터넷에서 본 내용이라 다 믿을 순 없었지만, 혹시나 해 회의 시간에 ‘흙밥’ 청년들 취재를 발제했다. 발제 순간까지도 허탕 치는 게 아닐까 긴가민가했다. 편집국 기자들도 시큰둥했다.
하지만 취재에 들어가니 흙밥 먹는 청년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았다. 샅샅이 뒤지지 않아도 대학생, 아르바이트생,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 등 취재원은 충분히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질문엔 하나같이 이야기를 멈추고 뜸을 들였다. “사실 먹는 문제가 가장 힘들어요.”


혼밥’의 비애


  흙밥 먹는 청년들의 공통점은 ‘혼자 산다’는 점이다. 대부분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자취생이거나 결혼을 유예한 미혼 혹은 비혼자였다. 적어도 밖에서 볼 때, 독거노인과 같은 곤궁함을 이들에게서 찾아내기는 어렵다. 모두들 말쑥하게 차려입고 활기찬 낯빛으로 일하고 공부하며 사람들과 교류한다. 다만 귀갓길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컵라면 등 결코 ‘화려한 싱글’답지 않은 끼닛거리를 챙겨 혼자만의 공간으로 들어갈 뿐이다.

  통계로 드러나는 ‘혼밥’ 메뉴는 흔히들 생각하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인 가구 증가 양상 및 혼자 식사의 영양, 식행태 분석(오유진, 대한지역사회영양학회 2016 하계 심포지엄)>에 따르면 ‘혼자 식사 시 메뉴’ 1위부터 5위는 라면·빵·김밥·샌드위치 따위가 차지했다. ‘가족 식사 시 메뉴’인 백반·고기·찌개·해산물요리·중식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출처: 시사IN

  1인 가구 비율이 높은 20-30대는 과일과 채소 등 ‘건강한’ 음식도 가장 적게 챙겨 먹는다. 2014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루 500g 이상 과일과 채소를 섭취하는 비율이 40-60대와 달리 20-30대는 50%에 미치지 못했다. 30대는 40.3%, 특히 20대는 25%만 그 기준에 도달했다.

  이런 열악한 ‘혼밥’에는 그들의 열악한 주거 여건도 한 몫 한다. 지난해 ‘끼다(끼니를 다함께)’라는 청년 식생활 연구모임은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사업으로 ‘청년 독립생활자 식생활 실태에 관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 1인 가구 청년들은 좁고(72.9%), 환기시설이 부족하고(40.3%), 불만족스러운(56.3%) 부엌에서 혼자(65.6%), 불규칙하게 밥을 먹고(76.6%)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혼자 사는 청년들이 호소하는 바와 같았다. “일단 밥을 제대로 지어 먹을 수 있는 여건도 안 되고, 식재료를 상하지 않게 보관하기도 어렵다.”

  집밥을 향한 필사적인 노력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처한 주거 현실에서 치명적인 ‘무리수’가 되기도 한다. 한 취재원은 자신이 살던 고시원에서 생긴 일화를 하나 들려줬다. “어느 추운 겨울날, 갑자기 고시원 건물의 전기차단기가 내려갔다. 어느 방에서 전기를 많이 써서 과부하가 걸린 거다. 범인은 방에 쌀 한 포대랑 전기밥솥을 갖다 놓고 몰래 설거지하면서 밥 지어 먹던 같은 층 고시생이었다. 돈 없이 혼자 사는 입장에서는 사실 밖에서 외식하거나 컵라면 삼각김밥을 사 먹는 것보다도 방에서 ‘따스운’ 밥을 지어 먹는 게 ‘가성비’가 최고다. 그런데 문제는 고시원은 전열기나 취사도구 사용은 화재 위험 때문에 금지돼 있다. 칼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겨울날, 주인 할머니가 그 고시생을 쫓아내더라.” 눈물 없이 듣기 힘든 1인 가구의 흙밥 이야기다.


문제는 ‘흙밥’이다


  혼자 먹는 흙밥은 서러울 뿐만 아니라 건강도 해친다. 학술논문 <비만도에 따른 대학생의 혼자 식사 및 함께하는 식사 시의 식행동 비교(이영미 외, 2012)>에 따르면 혼자 식사하는 20대 비만인은 정상 또는 저체중군보다 빨리, 더 많이 먹고 배가 불러도 음식이 남으면 더 먹는다. <한국 성인에서 식사 속도와 심혈관 대사 위험요인과의 관련성(김도훈, 2012)>에 따르면 식사를 빨리할수록 비만도와 혈중 중성지방 수치가 높게 보고된다.

  

   
 출처: 시사IN

  부실하게 먹는 것보다 더 나쁜 건 ‘안’ 먹는 것이다. 혼자 사는 청년들 가운데 많은 취재원이 ‘밥 먹듯이’ 끼니를 걸렀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곁에서 “밥은 먹었느냐”며 챙겨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덧붙이는 말은 비슷했다. “밥 한 끼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런 ‘밥 한 끼쯤이야’가 훗날 더 곤궁한 1인 가구를 만든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재무 상담을 진행한 한 경제 상담사는 “자신의 젊음과 건강을 믿고 식사 문제를 등한시한 사람들이 나중에 의료비 지출과 지속 가능한 소득 창출이 불가능한 문제로 고생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통 많은 청년이 한때 혼자 대충 먹으며 살다가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면 배우자와 함께 먹어야 하니까, 아이는 먹여야 하니까 일정 정도 수준 이상의 식사는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1인 가구로 사는 시기가 이제 절대 유한하지 않다는 것이다. 평생 혼자 살면서 대충 먹는 시기도 무한정 길어지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장기화된 1인 가구 흙밥의 문제를 기성세대는 ‘1인 가구’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혼자 사니 그렇지” “얼른 시집 장가를 가야지”라는 잔소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1인 가구’가 문제가 아니라 ‘흙밥’이 문제다. ‘혼밥’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혼밥’이 ‘흙밥’이라서 문제인 것이다. 혼자서도 ‘잘 먹고’ 살아야 하고, 또 그것이 가능하게 사회를 바꿀 필요가 있다. 편의점·마트·식당 등 유통 시장에서 신제품으로 나오는 1인용 식재료, (집밥 같은) 레토르트, 혼밥 전용 식기구, 혼밥 전용 고기집 등은 재미는 있지만 ‘상품’일 뿐 ‘해결책’은 아니다.


‘고립’에서 벗어나기


  진정한 1인 가구 흙밥 탈출법은 우선 ‘자구책’이다. 그 문제를 가장 절실히 느끼고 있는 1인 가구 청년 세대가 스스로 이 의제를 던지고 확산시키며 정부와 기업에 함께 고민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를테면 1인 가구 청년 식생활 연구모임 ‘끼다’의 활동 같은 것이다. 끼다는 또래의 청년 이웃을 초대해 식사를 차려주는 집밥 프로젝트 ‘우야식당’에서 발전한 단체로, 1인 가구 식생활 실태 조사와 노량진·신림동 고시촌 등지에서의 ‘하루 한 끼 건강하게 밥 먹기’ 캠페인, 식생활 일지 작성 모임 등 서울 청년들의 식사 문제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리고 있다. 끼다는 ‘부족한 시간과 제한된 여건으로 1인 가구 청년들의 식사가 매우 부실하다’는 자체 연구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시에 청년 1인 가구 대상 푸드셰어링, 공유 부엌, 건강키트 사업 같은 정책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위생 관리·예산 등의 문제로 실행되지는 못했다). 대구에서 도시농업 운동을 벌이는 청년 단체 ‘희망토’의 잉여 농산물 나눔 운동, 혼자 살며 과일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농민과 직거래한 제철 과일을 소포장해 이윤 없이 판매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의 과일 좌판 사업 등도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시도이다.

  정부나 민간단체도 1인 가구의 혼밥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난 대선 기간 문재인 후보는 청년 1인 가구의 ‘혼밥’ 문제 해결을 위한 공약을 냈다. 1인 가구 밀집 지역에 ‘마을 공동부엌’을 확대해 ‘혼밥’이 ‘함께밥’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편의점 판매 도시락에 대한 식품안전기준을 강화하고 영양표시를 확대하며, 보건소 ‘시민건강관리센터’에 영양 검사와 상담 프로그램 제도를 도입하여 균형 잡힌 식사를 유도하고 건강 체크도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구호단체인 ‘기아대책’은 지난 4월부터 홀로 살며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하는 자취생 등을 포함한 청년들을 돕기 위한 ‘청년 도시락’ 후원 사업을 시작했다. 혼자 살아도 ‘먹고’ 사는 문제는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제야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

*끼다(끼니를 다함께 facebook.com/ggida.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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