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7.12.6 수 20:06
기획사회
‘자본주의라는 옥’에 갇힌 이들을 옥바라지하다옥바라지 선교센터 김이슬기 전도사
정석영 편집위원  |  yae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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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호]
승인 2017.05.09  12: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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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③ 김이슬기 옥바라지 선교센터 전도사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바를 적용하는 양태는 다양하다. 연구실에서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이도,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이도 있다. 시민의 사회참여는 당연하다지만, 학생이 공부 이외의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던지는 이들도 많다. 활동가들은 일상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한다. 이에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학생으로서 시민운동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상기해보려 한다. <편집자 주>

 

‘자본주의라는 옥’에 갇힌 이들을 옥바라지하다



■ 옥바라지 선교센터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작년 이맘때 즈음 무학동에 위치한 옥바라지 골목이 강제철거 위기에 놓인 적이 있었다. 그때 현장에서 당사자들과 연대 투쟁에 들어가면서 각 학교별 신학생들이 조금씩 모였다. 마침 세월호 2주기를 기점으로 신학생들끼리 협의체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왔던지라 자연스럽게 범 신학생 연대를 구성하게 되었다.

■ 옥바라지 골목 철거 이후에도 ‘옥바라지’의 이름을 이어가는 이유가 있다면
현장을 누비고 당사자들과 연대하며 얻은 경험들이 이름에 녹아있다. 우리에겐 무척 의미 깊은 이름이다. 여타의 투쟁 현장들을 돌이켜 보면, 감리회가 주도하면 감리회 신학생들이 주로 있거나, 장로회가 주도하면 장로회 신학생들이 주로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옥바라지 선교센터는 수도권 내 여러 기독교 교단이 들어와 있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만큼 지금도 현장 투쟁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 그 외에 포럼도 열고 신학적 논의도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 그런 논의 확장의 과정에서 우리끼리 나온 말이 있다. “자본주의라는 옥에 갇힌 이들을 옥바라지한다.”

■ 옥바라지 선교센터의 이름으로 이어가고 있는 활동들이 있다면
매주 수요일마다 강제철거 당한 아현동 포장마차 골목 상인들을 위한 기도회를 열고 있다. 노량진 수산시장 이전으로 인한 강제집행에도 연대하고 있다. 연대가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나 연대한다. 또, 투쟁 현장에서 벌금형을 받은 신학생들을 위한 모금 콘서트를 감리교단 쪽과 함께 열었다. 지금은 각자의 사정으로 잠시 중단되었지만, 포럼도 열고 있다. 앞서 말했던 신학적 논의 확장의 연장에서 진행 중인 사업이다. 진보적 기독교 담론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또 종교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해하기에는 자극적인 언어로 이루어져 있어서 접근성도 낮은 편이다. 그래서 현장에 있는 우리들의 언어를 일상으로 확장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현장 연대 외에는 교육 사업으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과 ‘모두의 신학’이라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 ‘모두의 신학’은 어떤 내용인가
교회 내 여성 문제나 성 소수자 문제 등에 우리가 배웠던 신의 언어가 따라가지 못 하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의 신학은 여성이나 성 소수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좀 더 진보적인 신학이자 인간과 가까워지는 신학으로 믿음을 표방한 것이다. 아직은 개론적으로밖에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오는 6월쯤 심화된 과정으로 세미나를 진행할 예정이다.
  세월호 이후 과도기를 거치던 시절 SNS에 퀴어 문화 축제에 다녀온 사진을 게재한 적이 있었다. 그날 온·오프라인으로 다양한 반응들을 경험했다. “말씀은 읽고 있니” “기도는 하고 있니” 등의 걱정 섞인 목소리들이었다. 그때 문득 ‘이 사람들이 진짜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보수 신앙 기저에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 신앙은 천국과 지옥이 극명하게 나누어져 있기에 각자 지옥에 가지 않으려고 신앙생활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더욱 보수적이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런 생각에서 이탈하는 사람은 미움의 대상이 되기 쉽다. ‘모두의 신학’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 신학생들이 거리나 투쟁 현장에서 사역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는데
얼마 전 신학생 시국연석회의에서 탄핵성명서에 마가복음을 인용했었다. 인용된 마가복음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예수의 빈 무덤을 발견하고 울고 있는 여성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갈릴레아로 가셨다”라고 언급하는 내용이다. 예수는 로마의 압제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준 지도자였다. 그런데 부활하자마자 지긋지긋하고도 고통스러웠을 갈릴레아로 가셨다는 말로 말씀이 끝났다는 것에서 큰 의미를 발견했다. 나는 이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직면해야만 하는 땅으로 가셨다”고 이해한다. 이런 행적을 굳이 좌우로 나눌 수 있을까. 오히려 그런 기준에 겁먹어 예수의 행적을 ‘모두를 사랑하셨다’로 일축하는 게 신성모독이 아닐까 생각한다.

■ 하지만 종교의 영역은 나와 다른 시선도 끌어안아야 하는 딜레마가 있지 않나
투쟁현장에서 활동하면서 학부생들에게 종종 연락받을 때가 있다. 대개 정치와 종교의 괴리에서 오는 혼란을 상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친구들에게 민중 신학이나 진보적 신앙을 이야기하거나 강요하진 않는다. 그건 어디까지나 나와 같은 활동을 하는 이들의 언어이자 학문이다. 교회라고 하는 하나의 커다란 사회 속에서 그들 자신도 모르게 이미 교육된 언어를 무리하게 변화시키려고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세월 속에서 서로의 언어가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그러한 것들이 사회에 바람직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원래 사회적 활동에 관심이 많았나
학부 시절엔 지금과 다른 시각과 방식으로 사회에 관심이 많았다. 종북세력과 사탄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고, 성 소수자들은 모두 지옥에 갈 거라고 생각했다. 시쳇말로 ‘개독’이라 불리던 사람들 중 하나가 나였다. 그러다 세월호 사건을 겪게 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날 이후 신앙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신앙생활을 그만두려 하기까지 했다.

■ 세월호 사건이 현재 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건가
물론 세월호만으로 내 삶이 180도 뒤바뀌었다는 건 아니다. 세월호 이전엔 가깝던 지인이 커밍아웃을 한 적이 있다. 그가 커밍아웃하기 전 나에게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을 묻기에 저주에 가까운 폭언을 의견으로 밝혔었는데, 사흘 뒤 커밍아웃을 해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 친구가 지옥에 갈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 소수자에 대한 일이 내 주변의 일이 되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쪼잔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성 소수자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이어져 가던 중 세월호 사건을 마주하게 되었고 SNS를 통해 길거리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교회와 교인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을 통해 신앙에 대한 재고를 한 결과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그런 계기를 통해 내가 밟고 있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게 되면서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게 된 것이다.

■ 세월호 사건 이후 광장 너머 성 소수자, 철거, 재건축, 젠트리피케이션, 부당해고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광장에서 다양한 교회와 교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그 교인들도 나처럼 세월호 사건 때문에 광장에 나온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더라. 세월호 사건 이전부터 구룡마을 철거, 동양시멘트 부당해고, 삼성의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등 이미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많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여전히 많이 배우고 있다.

■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나
나는 정치적 투쟁 현장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구호는 외치고 나면 어디론가 날아가고 말지만, 사람은 그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다. 예수는 다른 이들이 만지기조차 꺼렸던 존재들을 치유라는 이름으로 만지고, 만났던 분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탄핵 이후 촛불이 꺼졌다고 비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도 현장에서 철거 투쟁을 이어가고, 기도회를 열고 있다. 주목받지 않아도 지속해 나가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치들이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활동이 궁금하다
지금도 대단한 신심이나 신앙이 있다고 감히 말은 못 한다. 그런 만큼 운동도 관성에 빠지기 쉽다. 투쟁을 하면서 과거의 나와 뚜렷한 구분이 생기고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의 당사자들을 만나면 쉽게 타성에 젖지 않게 된다. 동시에 나는 교회라는 사회에 관심이 많고, 그 안의 언어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이다. 나는 교회 내에 있으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다. 사회운동을 한다고 해서 교회를 등한시하지 않을 것이고, 동시에 연대를 통해 사회에 절대 양보해선 안 될 가치들도 지켜나갈 것이다.
 

대의와 당위만으로 사회 운동을 지속하는 것에는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대학원생이자 신앙인이라는 위치에서 그 균형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들의 활동은, 지속가능한 사회 운동에 대한 좋은 사례가 아닐까. 옥바라지 선교센터의 다음 행보를 응원한다.

정리 정석영 편집위원 | yae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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