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7.10.11 수 20:35
기획학술
공공성의 망각과 촛불혁명박혁 / 상명대학교 기초교양대학 초빙교수
정석영 편집위원  |  yae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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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호]
승인 2017.05.09  12: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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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영역의 사적 남용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지금. 서구 문명의 발달사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끝없는 긴장과 투쟁의 기록으로 바라봤을 때, 대한민국 근현대사 속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은 무엇이었고 그것들이 도모한 공공성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본 지면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공공성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공공성의 기원과 역사 ② 좌절된 공론장, 산업화 ③ 고여 있는 공공성, 민주화 ④ 정치 너머의 정치, 네트워크


 

공공성의 망각과 촛불혁명


박혁 / 상명대학교 기초교양대학 초빙교수
 

  2017년의 촛불 혁명은 무엇보다 헌법 제1조의 가치인 권력의 공공성이 파괴된 현실에 국민들이 저항한 결과다. 그 저항의 과정에서야 시민들은 ‘권력의 공공성’을 크게 경험했다. 2017년의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결핍이 무엇인지 잘 드러내 주었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도 깨닫게 해 주었다.

국민주권은 권력의 공공성을 통해서만 실질적 민주주의의 원리로서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온전한 민주화는 권력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했다. 1987년 이래로 진행된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권력의 공공성’을 강화해 왔을까. 사실 2016년 겨울부터 2017년 봄까지 이어진 촛불 혁명은 ‘권력의 공공성’이 상실된, 결핍된 민주주의의 현실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어떻게 그 현실을 넘어설 것인가. 문제의 원인이 분명하니 답도 분명하다. 권력의 공공성 회복 혹은 강화가 필요하다. 우선 권력의 공공성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권력과 공공성을 결합시킬 수있게 된 것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이론적 기여 덕분이다. 아렌트의 정치이론이 우리 시대에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은 ‘권력은 공(公)적이다’는 사실을 퍼뜨린 것이다. 아렌트가 주장한 이래로 권력의 공공성은 상식이 되었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공적(public)인 것을 크게 두 가지로 이해한다. 첫째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출현하여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는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공동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공(公)의 의미는 다양성이라는 인간의 조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학적 규정은 다양성이라는 조건에서 비롯된 인간 삶의 공적 성격을 언급한 것이다. 인간 존재의 공적 성격은 공동체를 보전하고 발전시키는 토대인 권력 또한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권력의 공공성



  아렌트의 생각을 중심으로 우리는 권력의 공공성을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권력은 사적인 영역이나 대표 혹은 재현의 영역(the space of representation)이 아니라 ‘현상의 공간’에서 발생한다는 점이 권력 공공성의 핵심이다. 현상의 공간이란 많은 사람이 함께 소통하고 행위를 하면서 서로를 ‘무엇’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곳이다. 현상의 공간에서 나타나는 ‘누구’들은 서로 평등하며 자유롭다. 권력은 집단으로서의 군중 안에서 발생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 의해 재현 혹은 대표될 수도 없다. 개개인들이 서로에게 들리고 보여지는 곳에 출현하여 함께 말하고 행위를 할 때 비로소 권력은 발생한다. 그들이 다시 흩어지자마자 권력도 사라진다. 권력은 서로에게 드러나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 사이가 바로 현상의 세계, 즉 공적 영역을 의미한다. 공적 영역은 권력이 ‘있는 곳’이 아니라 권력이 ‘발생하는 곳’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정확한 의미는 권력은 실체나 혹은 덩어리로서의 국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말하고 행위를 하는 다양한 국민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나온다는 것은 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표출된다는 것이 아니라 사이에서 새롭게 구성되고 형성된다는 의미다.

  둘째, 권력은 잠재적으로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며 그 잠재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공적 공간이 필수적이다. 권력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소통하고 행위를 할 때 형성되는 것인데, 공적 영역은 바로 ‘권력 잠재력’이 현실화되는 공간이다. 따라서 권력의 출현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공적 영역들이 존재해야 한다. 물론 그 공적 영역은 권력에 의한 권력의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은 한나 아렌트가 말하듯이 “공적 영역, 즉 행위하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잠재적 출현공간을 현존하는 것으로 만들고, 그 현존을 유지시킨다.” 생생한 권력 잠재력은 공적 영역 없이는 현실이 되지 못한다. 공적 영역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권력 잠재력을 현실이 되게 하지 못한다면 공적 영역은 쇠락하거나 화석화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은 권력 잠재력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공적 영역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공허할 뿐이다.
 

   
 


  셋째, 권력은 사람들의 의견에 토대를 두고 있고, 권력의 공공성은 ‘의견의 공공성’에 달려 있다. 의견의 공공성이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한 공적 세계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갖고 그 관점으로 서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형성한다는 의미다. 의견들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상호 교류를 지속적으로 하는 곳이나, 그들의 견해들을 공적으로 알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공공성을 지닌다. 공적인 영역에서 서로 의견을 형성하고 일정한 의견에 대한 동의가 있을 때 권력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듯 의견 형성의 과정은 곧 권력 형성의 과정이다. 의견 형성을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 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자유들의 억압은 의견의 다양성을 제거하고, 그렇게 되면 권력의 발생은 불가능하다. 즉, 의견의 공공성 여부가 권력의 질을 결정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권력의 공공성 회복

 

  한 사회가 민주화된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차원의 권력 공공성이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권력의 공공성이라는 차원에서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권력의 해방을 위한 운동 과정이었다. 권력을 사유화하여 부패시킨 권위주의 지배세력과의 대결과정에서 권력을 해방시켜 온 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였다. 반면에 권력의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의 민주화는 결핍된 부분들이 많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사적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수단쯤으로 여겨졌다. 서로를 ‘무엇’으로 규정하여 차별과 배제의 폭력을 휘둘러왔다. 국민들 대부분은 현상의 공간에서 추방되었다. 그런 방향으로의 민주화의 진행은 역설적이게도 국민들을 권력의 형성과정에서 배제해 버리고 말았다. 국민은 수동적 실체로서 국가권력의 합법성을 보장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국민’을 다양성을 전제한 복수로서가 아니라 늘 하나의 덩어리로 여겨왔다. 그런 이해가 권력의 공공성을 결정적으로 망각케 했다. 그 망각이 결국은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결과를 낳았으며 민주공화국에서 ‘민주주의가 파산했다’는 위기를 불러들인 것이다.

  다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로 돌아가 보자. 다양한 국민들이 존엄성과 위엄, 자존감과 자율성, 공동의 것들에 대한 책임감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함께 행위를 할 수 있는 공적 영역이 존재할 때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표의 영역’만 확대되고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결핍을 초래한 원인이기도 하다. 이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대의제의 강화가 아니라 권력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권력의 토대인 의견은 대표될 수 없다. 시민이 실제로 공적인 일에 참여하여 행위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적절한 제도가 없는 대의는 이익의 대표에 지나지 않는다. 작금의 우리의 대의제가 그러하다. 실질적 대의를 위해서도 공적 영역은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들이 공동의 일에 참여하지 않고, 함께 소통하지 않을 때 의견은 사라지고 권력의 자리는 텅 비게 된다. 그런 권력의 진공상태야말로 전체주의자들에게는 강력한 유혹이다.

  2017년의 촛불 혁명이 우리에게 각인시킨 점은 정치적 행위자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함께 행위를 하여 권력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공적 영역이 있어야만 국민들은 권력의 주체로서 기능할 수 있다. 지속적인 민주화를 통해 강한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공적 영역을 활성화하여 ‘권력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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