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7.6.14 수 22:31
기획
[사회문화] 예술인 복지법의 사각, 공생의 길을 찾아나도원 / 대중음악평론가, 전 예술인소셜유니온 위원장
정석영 편집위원  |  yae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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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호]
승인 2017.04.05  01: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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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 불안정과 복지라는 단어는 익숙한 말이 된지 오래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 및 노력들은 여전히 미비하다. 특히 ‘예술’이라는 분야는 ‘노동’으로 규정이 쉽지 않아 개선에 대한 문제의식 공유에서부터 난항을 겪기 일쑤다. 이번 기획에선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정부의 지원사업 및 정책이 어떻게 현장의 예술강사 및 예술인들을 곤란하게 만드는지, 또 그런 곤란이 고용 불안정 및 복지라는 사회적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문화관광부의 예술강사 지원제도 ② 예술인 복지법의 사각

 

예술인 복지법의 사각, 공생의 길을 찾아


 

나도원 / 대중음악평론가, 전 예술인소셜유니온 위원장

 

 

큰 산업, 작은 예술


  산업의 규모는 커져도 노동자들의 처우와 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구성요소들이 무너져도 산업은 성장하는 양태는 우리 사회 각계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문화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전체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상당수 종사자들과 예술인들은 본업과 무관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문화산업 종사자 다수에게 삶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산업의 안정은 가능하지 않으며, 이것은 실제 지표로도 나타나고 있다.


 〈2015 문화예술인 실태조사(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예술 활동 연평균 수입이 500만 원 이하인 예술인이 무려 72.8%에 달하고, 전업 활동을 하는 경우는 50%에 불과하다. 근로 형태는 정규고용직 6.4%, 계약직 9.8%, 자영·고용주 6.5%, 자유 전문직 72.5%의 비율이다. 이를 2012년 자료와 대조해보면 정규직과 자영·고용주의 비율이 급감하고, 사실상 무직 상태를 포함한 자유전문직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2012 실태조사’에서는 정규고용직 18.3%, 계약직 9.8%, 자영·고용주?16.2%, 자유 전문직 20.7%, 무직·은퇴 26.5%의 비율이었다). 일자리는 줄고 불안정성은 심화되었다고 풀이할 수 있다. 4대 보험 중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의 가입률도 매우 낮으며, 그나마 건강보험과 국민연금도 지역가입자의 비중이 더 크다는 것 역시 불안정과 불안전을 드러내는 지표이다(2012년 실태조사에서도 문화예술인 건강보험 가입 형태는 사업장 36.1%, 지역가입자 35.4%, 피부양자 26.4%였다). 더구나 이 실태조사에서 예술인의 69.3%가 계약체결 경험이 아예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문화산업 중(문화산업이라 할 수 있을지 이론의 여지는 있으나 정부는 포함시키고 있는) 게임 산업을 제외한 출판·영화·음악·미술 산업의 현황은 ‘융성’이 아니라 ‘생존과 회복’을 논해야 하는 실정이다. 우리는 ‘회복과 정상화’를 바탕으로 ‘도약과 융성’을 도모해야 한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현 정부의 ‘문화융성’이란 슬로건이 얼마나 공허한 수사였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론 ‘산업’ 중심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차차 밝혀질 것이며, 진정 중요한 건 사람이다.

 

   
 

사람의 죽음을 먹고 자란 법


  2007-2008년부터 제시되었으나 지지부진하던 예술인복지법이 갑자기 속도를 내면서 2011년에 국회를 통과한다. 법무부·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행정안정부 등이 근로자 인정 범위 확대와 예산 등의 이유로 반대하다가 ‘잇따른 죽음’이 이목을 집중시킨 이후에야 제정되었다. 이른바 ‘최고은 법’이라 불린 예술인복지법은 가히 ‘죽음을 먹고 자란 법’이랄 수 있지만, 이후에도 죽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애당초 복지재단 설립과 산재보험만 내용으로 남긴 껍데기 예술인복지법은 취지 훼손과 실효성 제한, 수혜대상의 범위, 예산의 안정성과 기구의 독립성 문제를 모두 안고 있었다. 수혜범위에 포함되는 예술인 규정 또한 고리타분했다. 예술인을 사전적 의미로 예술을 하는 자로 접근하거나 기성 단체 소속회원 위주로 보는 것은 구태의연하다. 법과 제도에 있어서는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선진국들에선 단체와 조직 등록 여부뿐만 아니라 최우선 직업 여부, 겸업을 하더라도 주된 수입의 출처, 평판이나 평가 등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예술인복지법에 따라 2012년에 출범한 예술인복지재단은 문화부 종속성, 기성 단체와 중견·원로 예술인 편향성, 의사결정 구조의 모호성, 사업의 성격과 방향의 부적합성(관성에 의한 창작지원사업과 본질적 복지체계의 혼란), 피지원자격의 비현실성이라는 한계를 드러냈다. 유인요인이 약하여 예술인복지재단에 등록하는 예술인들의 수도 적었다. 그나마 대부분은 지원금 신청과 수령을 목적으로 등록한 것이었다. 예술인복지재단의 입장에선 법률의 한계와 재정 문제로 운신의 폭이 좁았으며, 관계 기관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복지의 개념과 방향성에 대해 합의를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구조적 종속성 문제가 심각하여 예술인복지재단이 출범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2013년 하반기에 대표(상임이사)를 포함하여 여러 명의 직원이 본의 아니게 사직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사태는 기관의 지원 사업에 대한 후진적인 민관의 영향력 행사, 기관의 인사에 대한 권력의 노골적인 개입, 산하기관의 구조적 종속성 문제를 드러냈다. 이러한 과정을 겪고도 예술인복지재단은 2015년에 또다시 대표 교체와 조직 개편 그리고 예산 미교부 등으로 파행을 겪었다.


  이처럼 불안정한 상태에서 시행 중인 예술인복지사업 중에서 그나마 가장 관심을 받는 사업이 ‘예술인 자신이 가난을 증명하고 어렵게 선정되면’ 일정 기간 수백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창작준비금지원사업이다. 그러나 창작디딤돌사업, 긴급복지지원사업, 창작준비금지원사업 등으로 명칭이 계속 변한 것처럼 갈팡질팡해온 이 사업은 홍보도 부족했고 신청 절차도 번거로웠다. 무엇보다 자격요건이 젊은 예술인들에게 불리하여 예술인자격증명과 긴급복지지원사업의 개선이 필요한 상태이다.

 

기조의 전환과 기구의 재설정


  예술인복지는 우선 인식의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예술계부터 현실 안주와 현실 수긍의 관성을 동시에 벗어던져야만 예술 전체의 미래에 기여할 수 있다. 복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희박한 한국적 상황 때문에 복지와 지원 그리고 투자를 뒤섞는 경우가 많지만, 복지와 지원제도를 혼동해선 안 된다. 복지는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안전망이지 봉사와 기여에 대한 대가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재원을 투입한 만큼 성과를 요구하는 투자 또한 복지와 구별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복지를 말하면서 예술인을 ‘특수한 자’로 보는 시각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답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문화산업구성원, 사회 혹은 문화산업과 유무형의 계약을 맺은 노동자 개념을 도입할 때에 복지의 구성이 가능하다.


  둘째, 일선 기구인 예술인복지재단을 재설정해야 한다. 정부가 관리·감독해주는 기구가 아니라 독립성 강한 기관이어야 한다. 별도의 예산확보 방안, 즉 재정의 독자성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화부에 종속된 집행기관의 성격보다는 이사회의 구성 방식 혹은 예술계 대표자들의 협의체 기능의 보완이 필요한 것도 독립성을 위한 장치이다.


  셋째, 당사자들이 직접 예술인복지법 개정운동에 나서야 한다. 예술인복지법은 그동안 수차례 개정되었으나 근본적 해법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기존협회·단체의 입장을 반영하여 예술인 기준을 오히려 강화하고, 무엇보다 근로자 의제를 무시하기도 했다. 일시적인 생계지원이 아니라 사회보장체계로의 포섭을 정책 방향으로 설정해야 한다. 지나친 특별대우라고 생각한다면 선진국 사례를 알아두면 된다. 한국은 선을 그어놓고 기존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제외하는 식이지만 예술의 공공성을 인식한 선진국들은 예술인의 특수한 상황을 인정하고, 법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하면서 예술인들을 복지제도 안에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예술인복지체계의 확립은 ‘을(乙)을 위한 제도의 개선’과 ‘청년 일자리 확충’ 그리고 ‘복지의 확대’라는 시대의 요구와 맥을 같이 한다. 고용이 최선·최종 목표이며 훈련과 교육을 통하여 노동시장에 편입시키는 과정으로 복지를 사고하는 생산성 중심의 사회투자국가 개념보다는, 구조적 문제로 배제될 수밖에 없는 구성원을 위한 사회안전망 제공이 국가의 책무라는 복지국가 개념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예술인들은 생존의 위협과 현장의 분노를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말하는 뜬구름 잡기식의 공허한 이론과 실적을 강요받는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에 지쳐왔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계단을 쌓아가는 길, 그렇게 결실을 거두어가는 과정이 ‘예술과 복지’에 관한 재인식이다. 그리고 예술 환경 조성을 위한 두 바퀴, 즉 공적 제도 개선과 공동체를 위한 당사자 운동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예술의 공공성과 예술인 생존권의 조화, 즉 공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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