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공적 영역의 사적 남용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지금. 서구 문명의 발달사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끝없는 긴장과 투쟁의 기록으로 바라봤을 때, 대한민국 근현대사 속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은 무엇이었고 그것들이 도모한 공공성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본 지면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공공성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공공성의 기원과 역사 ② 좌절된 공론장, 산업화 ③ 고여 있는 공공성, 민주화 ④ 정치 너머의 정치, 네트워크

 

 


좌절된 공론장, 우리는 무엇을 잃었나

이영재 /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헌정사를 새로 쓴 ‘촛불 혁명’으로 ‘공론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촛불이 한창이던 2016년 11월,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동상건립추진위원회는 산업화의 기억코드를 독점한 채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경제성장의 절대 아이콘으로 우상화한 것도 모자라 탄생 100주년 운운하며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 동상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공론장을 국가의 ‘뻗은 팔’로 전락시켰던 독재자의 지지자들은 구설수에 오를 것을 알면서도 왜 하필 광장에 동상을 세우려고 안달할까. 그 이유는 국민적 공론장의 상징 공간을 점유해야 할 필요 때문일 게다. 국민적 인정은 어떤 진귀한 금은보화로 치장한 우상화로도 가질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공론장의 탄생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사람들’ ‘국민’ ‘공중’을 의미하는 ‘Oeffentlichkeit’, 즉 ‘공론장’은 이제 낯설지 않은 개념이 되었다. ‘Oeffentlichkeit’는 ‘공공영역’을 지칭하거나 때로는 ‘공공성’으로 쓰인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권력’ 개념으로 터를 다지고, 위르겐 하버마스(Juergen Habermas)가 소통행위이론을 접목한 이래 ‘Oeffentlichkeit’는 ‘공개성’ ‘여론’ ‘공론’ 등의 의미로 정착했다. 하버마스는 ‘Oeffentlichkeit’를 체계의 주요 영역인 국가와 생활세계에 기반을 둔 시민사회 양자를 매개하는 공공영역으로 정의하고, 간혹 ‘공공성’ 혹은 ‘여론’, 여론의 영향력이 형성되는 ‘공론장’으로 활용한다.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고 공공성의 가치를 산출하는 이 공론장은 ‘공중’으로 모인 개인들에 의해 구성되는 영역이다. 상호작용하는 개인들은 노동과 별개로 공론장에서 자유롭게 소통하는 존재로 여론을 창출하고,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1990년대 초반 시민사회론의 활성화 이후 학계에서 공론장과 결부시켜 주목하기 시작한 ‘공공성’은 서구적 개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공공성’은 사적인 것과 구분되는 ‘publicness’나 ‘publicity’로 ‘public’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public’은 ‘공공’ ‘공중’ ‘국가 또는 사회’, ‘공개’ ‘공립’ ‘대중’의 의미까지 광범위하게 함축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공성의 의미요소들은 동아시아의 내생적 개념들과 제대로 조응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훨씬 풍부한 의미로 확장 가능한 보편적 가치다.


  동양적 함의에서 공공성은 백성과 임금과 관리가 ‘천하’라는 공(公)을 함께 공유·공용했다는 의미로 쓰였다. “대도가 행해질 적에 천하는 공었고, (이 공을 운영할) 현인과 능력자를 선출해 썼다(공자).” ‘公(공변될 공)’은 ‘사(私)가 없이 공평하다’ ‘드러내다’ ‘숨기지 않고 나타내다’ ‘공적(公的)’이거나 ‘여러 사람에게 관계되는 일’ 을 뜻한다. 이 ‘공(公)’과 ‘공(共)’이 합쳐진 공공성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 일반의 여러 사람 또는 여러 단체에 두루 관련되거나 영향을 미치는 성질”을 말한다. 이러한 다양한 의미 가운데서 ‘공공성’ 개념의 요체는 중요 결정이 사회를 대상으로 공개되고, 공유되고 인정되는 성질, 즉 ‘만인의 공유 인정’에 있다. ‘만인의 인정’으로 발생하는 공적 권위는 공공선을 향해 작동할 때 온전히 그 효력을 발휘한다. 공론장을 구성하는 개인은 사적 개인이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창출하는 공적 권위는 특정 개인들의 산술적 합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또한 이 권위는 특정 개인이 좌지우지할 수 없다. 조선 시대 군주도 이 ‘공공’의 권위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세종조 대사헌 이지강의 상소다. “법이란 천하 고금이 공을 공유·공용하는 방도이지, 전하가 사유·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영조 16년 부사직 오광운의 상소는 ‘공공’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정인(正人)·군자(君子)는 시비(是非)라는 두 글자를 내어놓아 천지 사이에 그대로 있게 한 다음 공공(公共)의 의논에 맡기는 것입니다.”


  공론장에서 구성되는 공적 권위의 작용 속성은 애당초 공적 권위를 부여받는 제도적 공권력의 경우도 동일하다. 사익을 위해 공권력을 행사하는 순간 공론장의 심각한 저항과 부작용에 직면한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도 “피청구인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 용도로 남용하였다”고 결론 내리며, 공적 권위의 사적 도구화를 문제 삼았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이번 탄핵 결정이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고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다” 라고 밝혔다. 이렇듯 ‘공공성’은 ‘만인의 인정’이라는 공론장의 호응 속에서 국가를 국가다운 국가로 만들기도 하고, 공론장을 통해 공적 의제와 국민을 매개(상호작용)함으로써 유영한다.

 

좌절된 공론장의 대안, 공감장


  그런데 한국 현대사에서 ‘공공’의 가치는 ‘복지’보다 평가절하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적인 것’이 갖는 권위가 비리와 불의, 반칙을 연상시킨다. 일제강점기의 공공성 불신이야 조선총독부 탓이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해방 후의 국가적 공공성이 비리, 불의, 폭력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녔다. 공적 권위가 국가 독점적이고, 관주도적인 오만한 권위로 오염된 것이다. 공적권위의 부당 전취가 한국의 공공성 영역을 ‘식민화’ 시켰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잠재성을 긍정하면서도《공론장의 구조변동(한승환 역, 나남, 2001)》에서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공론장의 위험성을 경계한 바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공론장의 판단 준거로 작동하는 ‘공감장(共感場, Empathetic Sphere)’의 식민화다. 하버마스는 언어를 매개로 생활세계와 공론장을 설명했지만, 공론장의 판단 준거는 언어에 의한 합리적 토론의 거대한 배경을 이루는 ‘공감대’와 상호작용한다. 언어적 화행의 범주보다 훨씬 신속하게 사회적 판단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거울’이 바로 공감대다.


  차안대로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게 하고, 앞만 보고 달릴 것을 강요한 1970년대 박정희식 산업화의 피로가 사회 곳곳에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광장의 공론장이 ‘촛불’과 ‘태극기’로 갈렸고, 그 사이를 차벽으로 막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일말의 합의나 타협조차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의 공론장을 이 지경으로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 지난 20세기 대한민국의 공감장은 식민, 해방, 분단, 전쟁, 군부독재를 경험하며 큰 상처를 입었다. 공론장의 공적 권위가 한 번도 사회적 규범과 정의를 제대로 회복하는 데 힘을 쓰지 못했던 탓이다. 친일매국의 잔재가 반공으로 이어졌고, 반공이 산업화의 주역인양 행세해 오는 동안 우리 공감장은 사회적 거울의 규범성을 차단당한 채 일그러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세기 동안 세계사적으로 유일무이한 대격변을 다 견뎌 낸 한국의 공감장이 공권력의 도덕적 불감증에 침묵하지 않고, 공권력의 사적 전횡에 눈감지 않는 저력을 회복하고 있다. 켜켜이 쌓인 과거의 상흔들을 걷어내고 공감장에 숨통이 트여 공공의 가치가 살아 뛰는 공론장의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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