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 영어영문학과교수

[교수칼럼]

‘샤’에 대한 단상

  최영진 / 영어영문학과교수

  ‘샤로수길’이라는 거리가 있다.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 근처에서 시작해 낙성대 사거리 뒷길까지 이어지는 관악로 14길을 부르는 말이다. 5백여 미터 남짓한 길가에 독특한 맛집들과 주점들이 있어 젊은이들로 붐비는 거리이기도 하다. 내게 처음으로 이 거리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지인은 이 거리가 신사동의 가로수길을 흉내 내 샤로수길로 불린다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샤’라는 글자로부터 ‘sham’이라는 영어단어가 떠올랐다. ‘가짜’를 뜻하는 이 단어가 제목에 사용된 영국 단편소설 하나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sham’이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된 이유는 이렇다. 유럽 근대 소설의 태동기였던 18세기에 사무엘 리차드슨(Samuel Richardson)이 출간한 《파멜라(Pamela)》라는 작품은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 작품은 가난한 평민 집안의 딸로 태어나 지주 집안의 하녀로 일하다 그 집의 도령과 결혼에 이르는 파멜라라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신을 위협하는 줄 알았던 도령의 진심이 사랑임을 알게 되고, 결혼까지 이르는 하층계급 처녀의 신분상승 이야기인 이 소설은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나 당시 일군의 독자들은 이 소설이 파멜라의 진심이 순진무구한 양 가식적으로 표현됐다고 비판했다. 리차드슨과 함께 당대를 대표했던 작가였던 헨리 필딩(Henry Fielding)은 이러한 독자들의 비판을 대변하는 《샤멜라(Shamela)》라는 풍자 단편소설을 이듬해인 1741년에 발표했다. 이 단편 소설의 주인공 샤멜라는 파멜라와 달리 사악하고 음탕한 여인으로 그려졌다. 여기서 주인공 이름 샤멜라는 sham과 Pamela의 합성어로서 헨리 필딩은 가짜 파멜라라는 의미를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 파멜라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당대의 도덕적 가치의 허위의식을 신랄하게 패러디했던 것이다.

  샤로수길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샤멜라가 바로 떠오른 것은 영문학을 가르치는 직업병 탓임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나는 이러한 연상작용을 통해 샤로수길이 가짜 가로수길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나는 이 길이 신사동 가로수길이 지닌 허영 시장(vanity fair)의 의미를 패러디하여 고급스러우나 소박한 음식문화를 만들어내는 거리의 의미도 내포할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거리가 신림동 대학가 타운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나의 이러한 생각이 그다지 허황되고 근거 없는 추론은 아니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거리의 이름이 서울대 정문에 세워진 조형물이 드러내는 ‘샤’라는 글자와 가로수길을 합성한 말이라는 이야기를 그 이후에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고서 ‘샤’의 의미에 대한 나의 추론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영문학사에서 얻은 지식이 엉뚱한 상상으로 뻗쳐 나간 나의 추론으로 인하여 본래의 의미가 오독되었던 것에 스스로 실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러한 오독이 즐겁다. 적어도 헨리 필딩이 수행했던 패러디 정신이 조금이라도 이 샤로수길에 베어나서 이 길이 허영시장으로 변모한 신사동 가로수길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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