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식 / 유럽문화학부 교수

[국제] 2017 세계체제 지형도

2017년은 세계 선거의 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독일은 물론 대한민국의 대선까지 앞두고 있다. 그리고 국제 관계는 새롭게 당선될 각국 수뇌부의 기조나 각국의 국민들의 선택에 따라 급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국제’면 기획을 통해 미국‧유럽‧한국 등의 선거를 다루고자 한다. 각국의 선거를 통해 세계체제는 어떻게 재편 될 것인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트럼프와 미국 헤게모니 ② 프랑스 대선과 유럽연합의 위기 ③ 독일 총선과 유럽연합의 향방 ④ 한국 대선과 우리의 과제

프렉시트(Frexit)인가 새로운 연합인가

김한식 / 유럽문화학부 교수

  지난달 15일(현지 시각) 실시된 네덜란드 총선에서 마르크 뤼터(Mark Rutte)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집권 여당인 자유민주당(VVD)이 선거 기간 내내 초강세를 보였던 극우정당인 자유당(PVV)을 예상 밖의 큰 격차로 누르고 제1당을 차지했다. 뤼터 총리는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이어지던 ‘잘못된 포퓰리즘’을 네덜란드가 멈추게 한 밤이다”라는 말로 총선 승리를 자축했다. 극우를 제외한 유럽 각국의 정치인들 또한 네덜란드 총선 결과에 안심하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반난민·반이슬람·반유럽연합’을 내세운 헤이르트 빌더르스(Geert Wilders)의 자유당이 승리할 경우 프랑스 대선(4-5월)과 독일 총선(9월)에도 영향을 미쳐 유럽이 극우 포퓰리즘의 바람에 휩쓸릴 수도 있으며, 그 결과 브렉시트로 위기에 빠진 유럽연합이 해체되는 쪽으로 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둔 프랑스 정국 또한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게 요동치고 있다. 가장 유력했던 중도 우파의 대선 후보 프랑수아 피용(Francois Fillon) 전 총리는 이른바 페넬로페 게이트라 불리는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으며,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의 인기가 워낙 낮은 탓인지 집권당인 사회당의 대선 후보 브누아 아몽(Benoit Hamon)의 지지율도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대선을 한 달여 앞둔 현재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Marine Le Pen)과 중도파의 엠마누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이 1, 2위를 다투며 결선에 진출할 것이 유력시되며, 중도 우파의 프랑수아 피용, 좌파의 브누아 아몽, 중도 좌파의 장 뤽 멜랑숑(Jean Luc Melenchon)이 뒤를 잇고 있다. 그렇다면 ‘관용’의 나라 프랑스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이 어떻게 그토록 높은 지지율을 얻게 된 것일까.

국민전선 약진의 배경과 목소리

  무엇보다 최근 20여 년간 급격히 진행된 지정학적이고 사회적인 변화, 즉 유럽통합과 같은 세계화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를 주된 원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국민전선이 가장 우선적으로 공략하는 대상은 ‘세계화로 인해 잊혀진 사람들’, 보다 구체적으로는 1990년 이후 진행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말미암아 도심에서 도시 외곽 변두리로 쫓겨난 사람들,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고 문화자본이 취약한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 정치권의 무능 역시 국민전선의 약진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대량실업, 교육 시스템의 약화, 도시 외곽의 게토화로 인한 불안 등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사회불안 요소들이 해결되지 못하면서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와 혐오가 팽배하게 되고, 사회적 긴장을 유발하는 요인들이 결국 국민전선에 표를 던지게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린 르펜의 정치담론이 구사하는 ‘탈 악마화’ 전략도 무시 못할 효과를 발휘한다. “국민전선이라는 ‘기호’를 현대화하려는 시도”이자 국민전선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바꾸려는 마린 르펜의 ‘탈 악마화’ 담론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인종주의나 외국인 혐오 같은 지나치게 과격하거나 고루하다는 이미지는 걷어내면서도 민족주의 포퓰리즘이라는 국민전선 고유의 정체성은 유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전선의 지지자가 아닌 일반 유권자들에게도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 반이민 같은 전통적인 주제뿐 아니라 프랑스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주제들을 다루는 것이다. 마린 르펜의 담론이 좌파와 우파라는 전통적 이념의 경계를 해체하는 혼합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특이한 것은 예전과는 달리 유럽연합의 미래를 둘러싼 논쟁이 가장 뜨거운 의제들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그 핵심은 국경통제, 이민정책, 역내 관세 및 단일 시장 등의 문제를 둘러싼 국민국가의 ‘주권’ 문제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 대선후보들의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하나의 유럽’을 위해 유럽연합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 둘째는 현재 유럽연합의 체제를 ‘국민국가들의 유럽’이라는 방향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 셋째는 유럽연합을 완전히 해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3년 이후 프렉시트를 국민투표에 붙여야 한다고 주장해온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은 2017년 대선 승리를 전제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한다. 우선 유럽연합 국가들과 협의하여 행정·금융·사법·국경 등의 문제와 관련해 프랑스의 ‘주권’을 되찾는다. 협상에 실패할 경우 영국이 그랬듯이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장 뤽 멜랑숑은 보다 유연한 입장을 보이는데, 그는 2016년 6월 자신의 트위터에 “프랑스인들의 입장에서 유럽연합은 바뀌어야 하거나 아니면 떠나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신자유주의적인 유럽연합을 개혁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브누아 아몽 역시 유럽연합의 존속은 지지하면서도 새로운 의회구성을 통해 “유로존의 정치적이고 민주적인 조절을 허용하는 새로운 예산 관련 조약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수아 피용 또한 “국민국가들의 유럽”이라는 선거구호가 말해주듯이 유럽연합 위원회의 권한을 제한하고 국경 통제권 등 각국 정부의 역할과 권한을 늘리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반면에 엠마누엘 마크롱은 ‘하나의 유럽’을 위한 보다 강력한 정책을 촉구하며 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유럽시민협약을 맺어야한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유럽연합의 분수령, 프랑스 대선

  유럽통합과 관련하여 극우의 공통 요소는 현재의 유럽연합 체제에 대한 비판이다. 금융위기에 이어 브렉시트로 촉발된 유럽연합의 위기는 각국의 주권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며, 그러한 위기는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사태, 반이슬람 정서와 맞물려 극우가 약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서 최근 유럽 극우의 부상은 세계화로 인한 개방에 두려움을 느낀 세력들의 자기 보호본능에서 발동하는 방어적 성격이 짙고 그 과정에서 이민자들과 같은 특정 집단이나 계층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극우는 악마는 아니지만 악마로 만드는 기계라고 할 수는 있다(미셸 비녹, Michel Winock).” 유럽 극우의 부상은 유럽이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며 유럽연합이 무너지고 있다는 불안으로 인해, 권위적인 체제를 갈망하는 사회적 수요와 이에 따른 정치적 공급 사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어쨌든 프랑스 대선 결과는 유럽의 전반적인 위기와 그 흐름을 가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분기점으로 간주된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그랬듯이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 예상을 뒤엎고 승리한다면 프렉시트가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 반대로 마크롱이 승리한다면 유럽연합은 ‘하나의 유럽’을 향한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마린 르펜과 엠마누엘 마크롱이 맞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결선투표는 유럽연합에 대한 찬반 투표이자 프랑스 극우, 나아가서 유럽 극우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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