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선 / 문학예술컨텐츠학과 석사과정

 

[원우문학 - 창작 소설]

조력자 (1)
 

 

이은선 / 문학예술컨텐츠학과 석사과정


  내가 살던 곳엔 유명한 저택이 하나 있었다. 한눈에 봐도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주택이었다. 담벼락은 높지 않았지만, 누구도 저택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저택을 둘러싼 소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졌다.
  유령이 사는 곳이래, 고약한 취미를 가진 부자가 사는 곳이래, 살인이 일어났던 집이래. 아니, 사실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래.
   소문은 가만히 놔두어도 제가 알아서 몸집을 부풀렸고 누구도 저택 근처를 가지 않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 근처를 지나면 재빨리 손을 잡고 자신들의 곁으로 끌어당기곤 했다.

  “아가. 저기는 가면 안 되는 곳이야.”
  나는 나를 끌어당긴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왜요, 할머니. 저는 저 집이 예뻐서 좋아요. 저곳에 가보고 싶어요.
  “저곳에 갔다가는 네가 잡아먹히고 말 거야.”
  어린 나는 겁에 질려서 집으로 가는 내내 할머니 옆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나에게 몇 번이고 말을 했다. 내 사랑하는 아가. 저긴 아주 무서운 곳이야.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나와 약속해주렴.
  나는 저택이 예뻐서 좋았지만, 가보고 싶었지만 할머니가 더 좋았다. 그래서 걱정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끔 구경이라도 가볼라치면 할머니는 어떻게 알아챈 건지 나를 붙잡고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저기가 어딘지 아무도 모르니까, 들어가선 안 돼. 모르는 곳엔 발을 들여선 안 된단다.
  나는 할머니의 말을 잘 따르는 손녀였고 거스를 생각은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종종 할머니가 그리웠고, 저택에 대해 가끔 생각했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으니 괜찮지 않을까. 많은 시간이 흘렀고 또 적당한 시간이었다. 나는 소담한 나의 방 녹색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칠이 벗겨진 녹색 의자.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 덩그라니 있는 나의 의자. 의자에 앉은 채 열어 둔 창밖을 보았다. 밖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을 수가 있다니 이상했다. 정말이지 너무 이상했다.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을까?
  나는 저택의 대문 앞에 도착했다.
  대문은 굳이 열지 않아도 닫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을 살짝 밀었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문의 무게와 내가 대문을 밀어내는 힘은 같았고, 그래서 열 수 없었다. 나는 철로 된 대문에 노크를 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무엇도 없는 곳. 나는 저택을 빙 둘러 걸었다.
  내가 살던 곳엔 유명한 정원이 하나 있었다. 유명한 저택 근처에 있는 유명한 정원이었다.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코끝에 스며드는 향 때문에 누구건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마는 정원이 있었다. 정원 근처를 거닐 때면 어른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저곳에 발을 들여서는 안 돼.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할머니의 말을 착실히 따르는 손녀였고 정원을 탐내지 않았다. 정원에서 풍겨오는 은근한 향을 몰래 맡으며 흘긋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저택을 지나 정원 앞에 도착했다. 정원에선 은은한 꽃냄새가 넘실거렸다. 코 주변을 가볍게 스치는 달달한 향에 나는 홀린 듯이 가벼운 걸음으로 정원에 들어갔다.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향은 더욱 몸 주변을 돌았다.
  한가운데에서 서서 바라본 정원의 풍경은 감탄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세상에 또 존재할까. 파스텔색의 여린 꽃잎들이 부서지는 노을과 함께 일렁거렸다. 꼭 햇볕이 정원으로 쏟아지는 것만 같아. 나는 손을 뻗어 해를 가려보았다. 해는 천천히 지고 있었고 무너지는 빛에 따라 정원의 색이 조금씩 달라졌다. 꿈은 아닐까. 풍성하게 늘어선 꽃에 얼굴을 파묻고 냄새를 맡았다. 내가 정원에 서 있는 것이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렸다. 누구도 내 손을 잡아끌며 돌아가자 말하지 않았다. 

 - 다음호에서 계속 -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