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8.6.4 월 12:21
특집
끊임없는 구성과 실천과정으로서의 공존한민서 / 교육학과 박사과정
안혜숙 편집위원  |  ahs11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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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호]
승인 2017.03.08  22: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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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연구] 『좀비 서사와 새로운 주체성』 김형식 著 (2016, 문화연구학과 석사 논문)

  본 지면은 원우들의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특집호에서는 ‘파국 담론’의 연장선상에서 2016년에 나온 문화연구학과 김형식 원우의 《좀비서사와 새로운 주체성》이라는 논문을 살펴보며, ‘좀비’ 서사가 반영하는 현대사회의 불안과 공포, 새롭게 등장하는 저항의 양상과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토론문]

끊임없는 구성과 실천과정으로서의 공존

 

한민서 / 교육학과 박사과정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변화들을 만나며 놀라움과 충격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이든 말이다. 김형식은 1930년대의 ‘부두교 좀비’를 시작으로 좀비물들에서 드러나는 ‘좀비’의 특징과 그 변화양상을 통시적으로 짚으며, ‘포스트-밀레니엄 좀비’의 등장을 이야기한다.


  1930년대 ‘부두교 좀비’는 아이티 지역에 실재했던 좀비에 가까운 형태로, 제국주의 속에서 인간의 범주에서 배제당했던 노예와 약자의 모습이었다. 인간은 언제나 스스로를 보편이자 정상으로 여기고 타자를 비정상이자 야만으로 치부했다. ‘로메로 좀비’는 부두교 좀비에서 주체의 자리에 오른 인간을 ‘좀비’라는 그로테스크한 비체를 통해 해체하며 근대적 주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수행한다. 이어 2000년대 들어 ‘밀레니엄 좀비’는 현대사회 속에서 점점 심화되는 인간의 가치 붕괴와 주체의 파국을 그려낸다. 이 혼돈의 세상에서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맥스 브룩스 지음,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2011)》나 《좀비 제너레이션: 좀비로부터 당신이 살아남는 법(정명석 지음, 네오픽션, 2013)》 등의 책은 파국 속에서의 생존전략을 제시한다. 이는 현대사회 속에서 사육되고 통제된 ‘인간’역시 결국 좀비와 다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포스트-밀레니엄 좀비’는 이전의 좀비에 대한 개념을 전복시키고 주체로서의 좀비를 통해 새로운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또한, 새로운 형태의 좀비는 현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을 재고하며 새로운 주체로서 등장할 잠재력을 지녔다고 지적한다. 2000년대 중반 좀비 르네상스라 불릴 정도로 많은 좀비물들 속에서 2011년 <웜바디스(조나단 레빈, 2013)>를 통해 본격적인 ‘포스트-밀레니엄 좀비’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좀비는 ‘보는 대상’에서 ‘하는 대상’이 되어 인간과 좀비의 오묘한 경계에서 새로운 주체에 대한 가능성을 역설한다. 또 좀비도 하나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다시금 휴먼을 정의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말하고 있다. 우리는 커즈와일의 말을 인용한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중요한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화두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김형식은 새로운 주체성에 대한 사유로 포스트휴먼과 다중주체에 대한 개념을 제시하고, 단순히 인간 주체의 부정적 개념에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의 포스트휴먼으로의 전환을 강조한다. 여기서 ‘감정적 위계’와 ‘선택의 유예’의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포스트-밀레니엄 좀비의 출현의 배경과 긍정적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부두교 좀비에서부터 밀레니엄 좀비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감정의 위계, 즉 마음이 쓰이는 몇 가지 사건에서 비주류의 것들은 돌아보지 않았다. 예컨대 1960년대 사진가 다이안 아버스는 기존의 정상성에서 벗어난 기형인들에 주목한다. 그는 당시 부정되던 기형인의 삶을 성찰하는 작업을 통해 이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드러낸다. 이는 ‘정상’과 ‘기형’의 구분에 반문하는 센세이션한 결과물이었다. 이 작품들은 근대적 주체로서의 인간이 자신만을 정상이며 보편으로 여기는 오만을 보였고, 이는 결국 타자를 외면하고 배제하여 새로운 주체성을 형성하는데 이르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두 번째로, 어떤 사실에 대한 선택의 유예, 즉 현실의 문제에 대해 이미 전조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는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물질 만능의 풍경들을 담아내며 현대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대인의 인간 중심적 사유를 보여주며 지나치게 포화된 현실에 탈출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떤 것이 진실인지도 망각하게 되는 세상에서 새로운 주체성 마련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유예한 결과는 오늘날의 파국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이런 우울하고 맥없는 인간의 행태들이 있었음에도 ‘감정’과’ 의지’라는 단어는 ‘관심 두기’를 통해 희망 가능성을 잠재한다. 좀비물이 파국에서 그친 것이 아닌 좀비를 새롭게 사유하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좀비하기’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듯, 인간의 코나투스가 갖는 잠재력은 긍정적 변화로의 이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함축한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고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모순적인 오늘날, 김형식의 글은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갈 곳을 잃은 ‘주체’들에게 한줄기 ‘빛’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주로 외국 좀비물들로 주체성을 설명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서구의 이데올로기나 국제적 흐름이 한국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서구의 영화만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한국사회에는 어떤 좀비 영화들이 있고, 어떤 특징을 지니는지 좀 더 소개가 더해진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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