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8.9.5 수 00:42
특집
[원우연구] 파국의 알레고리로서의 좀비 서사와 새로운 주체김형식 / 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
안혜숙 편집위원  |  ahs11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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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호]
승인 2017.03.08  22: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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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연구] 『좀비 서사와 새로운 주체성』 김형식 著 (2016, 문화연구학과 석사 논문)

  본 지면은 원우들의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특집호에서는 ‘파국 담론’의 연장선상에서 2016년에 나온 문화연구학과 김형식 원우의 《좀비서사와 새로운 주체성》이라는 논문을 살펴보며, ‘좀비’ 서사가 반영하는 현대사회의 불안과 공포, 새롭게 등장하는 저항의 양상과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연구]

파국의 알레고리로서의 좀비 서사와 새로운 주체


 

김형식 / 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

 

  21세기 들어 가장 큰 인기를 끈 괴물을 꼽으라면 ‘좀비’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영화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좀비는 점차 드라마, 소설, 그래픽노블, 웹툰 등 대중문화 전반을 휩쓸더니 이제 사람들은 좀비로 분장한 채 축제나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좀비는 더 이상 낯선 서양의 괴물이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대상이 되었다. ‘좀비 기업’ ‘좀비 경제’ ‘좀비 PC’와 같이 다양한 분야에서 좀비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일상에서 ‘좀비 같다’는 말은 무기력함을 묘사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로스만은 좀비야말로 진정한 “대중의 괴물”이며, 좀비를 통해 인간의 본성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살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좀비의 모습이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며 애초에 좀비는 지금과는 현저히 다른 모습이었다. 좀비는 제국주의 시대 아이티 지역에서 자행되었던 가혹한 식민통치와 거기에 저항하던 지하세력과 부두교의 종교의식에서 기원한다. 주술사의 종교적 주술과 특수한 약물을 통해 탄생되는 좀비는 일종의 약리학적 가사상태에 빠진 인간을 지칭했다. 이런 좀비의 모습은 <화이트 좀비(빅터 핼퍼린, 1932)>나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자크 투르뇌르, 1943)>에서 재현되고 있으며, 아직 괴물이 되기 전 피식민 노예나 유색인종에 대한 은유로 등장한다. 좀비가 식인과 전염의 특성을 갖는 괴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은 1960년대 조지 로메로 감독에 이르러서이다. 로메로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과 <시체들의 새벽(1978)>에서 괴물이 된 좀비는 주체와 타자의 경계 해체, 그리고 현대사회의 인종차별과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수행한다.

 
   
 

 

“명심해야 할 키워드는 생존이다”


  좀비가 본격적으로 파국의 알레고리로서 기능하게 되는 것은 <28일 후(대니 보일, 2002)> 이후이다. 느린 좀비에서 벗어나 파격적으로 ‘뛰는 좀비’를 등장시킨 <28일 후>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좀비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새로운 형태의 좀비를 비숍은 ‘밀레니엄 좀비’로 지칭한다. 빠르게 뛰기 시작한 밀레니엄 좀비는 주먹으로 문을 부수고 높은 벽을 뛰어넘는 등 한층 더 파괴적이고 무서운 괴물이 되어 나타났다. 강력해진 좀비들은 세계의 임박한 파국과 종말을 효과적으로 그리는 데 적합한 괴물이다. 이전의 좀비가 한정되고 고립된 공간에서 등장됐다면, 밀레니엄 좀비는 문명의 첨단인 도심 한복판에서 출몰한다. 이제 영화는 도시 전체, 국가 전체, 더 나아가 전 세계에 퍼진 좀비의 확산을 다룬다. 밀레니엄 좀비 영화는 이 파괴적인 좀비가 어떻게 인류 문명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멸망에 이르게 하는지를 압도적인 스펙터클로 그려낸다. 


  사람들에게 좀비는 단지 서사적 상상이 아니라 실재적인 공포의 재현이다. 밀레니엄 좀비가 더욱 파괴적이고 묵시록적이 된 것은 2001년 9?1테러와 이후의 중동전쟁, 대규모의 전염병, 자연재해,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금융위기와 부의 양극화가 세상이 언제라도 멸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문강형준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비용마저도 모조리 사적인 비용으로 돌려버려, 즉 경쟁과 성공과 실패를 모두 ‘1인 기업’화된 개인의 역능에 맡김으로써 더욱 큰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체제이다. 박명진은 신자유주의 속의 개인은 자신을 부단히 계발함으로써만 무한 경쟁 체제 사회에서 살아남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척박해지는 생존의 조건과 위협 속에서 사회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고,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이 되는 세계에서 각자도생해야만 하는 개인은 자연히 낙오에 대한 두려움과 생존의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맥스 브룩스 지음,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2011)》는 “명심해야 할 키워드는 생존이다. 승리도 정복도 아니다. 오로지 생존이다”라고 단언한다. 누구도 믿지 말고 다만 부단히 단련하고 통제하여 최후까지 홀로 살아남으라고 조언하는 이 책은 신자유주의 체제와 근대적 주체들의 말로를 보여주는 듯 섬뜩하게 다가온다. <좀비랜드(루벤 플레셔, 2009)>의 주인공은 좀비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수칙을 정해놓고 그것을 철저히 따른다. 타인과의 모든 교류를 차단한 채 체력을 기르고 무기의 사용법을 익혀놓는 등 끊임없이 단련할 것을 요구하는 등의 수칙은 곧 신자유주의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미덕’인 부단한 자기규율과 통제, 노력을 통한 자기계발과 일치한다.


  때문에 밀레니엄 좀비 영화에서 공권력은 흔히 믿을 수 없고 무능하며, 부패한 것으로 묘사된다. 위기의 상황에서 공권력은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사람들의 생존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하고 착취하려 드는 부정적 권력일 뿐이다. <28일 후>에서 군은 백신이 있다는 거짓 방송을 통해 여성들을 불러 모아 성노예로 사용하려 하고, 후속작인 <28주 후(후안 카를로스 프레스나딜로, 2007)>에서는 좀비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무차별로 학살한다. <시체들의 새벽>에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이 오토바이를 탄 갱단이었다면 밀레니엄 좀비 영화에서 정부는 갱단과 별로 다를 게 없는 폭력 집단이다. 이들은 무기로 철저히 무장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곧잘 정부를 신뢰한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한국판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라 할 수 있는 《좀비 제너레이션(정명석 지음, 네오픽션, 2013)》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부나 언론 대신 SNS를 믿으라고 조언한다. 정부는 무조건 “안심하라”고 얘기하며 사건을 축소하기에 급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상호의 <부산행(2016)>과 <서울역(2016)>에서도 정부는 좀비를 피해 뛰쳐나온 사람들을 ‘폭도’로 규정하여 차벽을 세워 길을 차단하고 군대를 동원해 학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정부의 무능과 안일한 태도, 그리고 은폐로 인한 걷잡을 수 없는 확산을 보며 우리는 이것이 단지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파국 이후의 상상: 좀비를 새롭게 사유하기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모든 시스템이 붕괴되어버린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10년대의 좀비 서사들은 파국 이후에 대한 상상, 혹은 파국을 유보할 수 있는 대안을 꿈꾸고 있다. 지젝은 현대사회 속에서 인간은 시스템에 종속된 부품이며 태어날 때부터 불구인, ‘신체 없는 기관’으로서의 좀비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좀비로 존재함을 깨닫지 못한다. 그것은 현대사회가 제공하는 환상과 허위의식 때문이다. 관객들은 스스로를 ‘인간’으로 여기고 좀비를 괴물과 악으로 타자화함으로써 미약한 인간성의 근거는 강화된다. 하지만 오늘날의 인간 주체의 취약함과 무너진 사회시스템은 이런 기만적인 타자화의 허위를 폭로하고 붕괴시켜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포스트-밀레니엄 좀비’서사는 살아남은 인간이나 파국의 풍경 대신에 타자로 여겨졌던 좀비를 전면에 내세우며, 파국의 과정이 아닌 그 이후를 상상하게 한다. 폐허 위에서 등장한 포스트-밀레니엄 좀비는 다시 느려진다. 괴물성이 약화된 좀비는 말을 하고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다시 인간으로 복귀하기 시작한다. 이제 좀비는 단순히 악이나 혐오스러운 괴물에서 벗어나 사회 속 타자의 은유, 더 나아가 적대적 환경 속에서 하릴없이 각자도생해야 하는 무력한 나 자신의 모습처럼 보인다. 좀비가 사실은 나와 다를 게 없다는 인식의 전환은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좀비는 더 이상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 아닌 우리와 동등한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파국의 현실 속에서 이제 좀비들은 인권 대신 ‘좀비권’을 주장하며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고 스스로의 권익을 위해 연대하기 시작했다. 2011년 ‘월가 점령 시위’는 그런 좀비의 변화와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금융위기라는 세계 경제의 파국을 초래한 장본인들이 오히려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좀비 영화 속에서 살아남는 1%의 사람이 아니라 이미 죽은 시체인 99%에 해당하는 좀비였음을 통렬하게 깨닫게 된다. 시위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99%다”의 구호 아래, “1%를 먹어치우자” “은행원들의 뇌가 맛있다며” 등의 팻말을 들고 기꺼이 좀비 분장을 한 채 시위를 벌였다. 이제 좀비는 99%인 다중들의 분노와 저항을 표현하는 아이콘으로 전유 되어 소수가 부를 독식하는 현실과 신자유주의 체제를 비판하며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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