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평화나비 한대윤 팀장

인터뷰(1) 중앙대학교 평화나비 한대윤 팀장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바를 적용하는 양태는 다양하다. 연구실에서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이도,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이도 있다. 시민의 사회참여는 당연하다지만, 학생이 공부 이외의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던지는 이들도 많다. 활동가들은 일상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한다. 이에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학생으로서 시민운동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고민해보려 한다. <편집자 주>

 

흑석동 소녀상을 아시나요

 

■ 평화나비에서의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중앙대 평화나비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예전부터 평화나비와 관련된 행사를 많이 접했다. 대학교 1학년 때 13년도 평화나비 콘서트가 있었다. ‘중앙대학교 평화나비 지부를 만들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느냐’며 선‧후배와 고민하던 중, 평화나비 콘서트에서 만난 간사와의 연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 평화나비의 주요 활동은 무엇인가
평화나비의 가장 큰 목표는 평화 활동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중심으로 놓고 활동 하고 있다. 프로젝트 같은 경우에는 지부별로 다르게 진행된다. 최근에 중앙대 평화나비는 소녀상 세우는 활동을 했었고, 평화나비 네트워크 차원에서는 사드 문제나 한국사 국정 교과서 문제에도 참여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중심에 있긴 하지만, 평화를 완성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문제 해결이라는 취지를 이해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 평화나비 활동하면 수요시위를 빼놓을 수 없다
수요시위의 역사는 25년 정도 됐다.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거나 관련된 운동을 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피해자 할머니들도 처음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전에는 할머니들이 단지 보호 받아야할 대상이었다면, 수요시위를 기점으로 문제 해결의 적극적인 주체가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집회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일본에 항의하는 의미는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 수요시위에는 어떤 사람들이 오는가
사회 각계각층에서 많은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단체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다. 평화나비는 ‘대학생 단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단체’라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주최는 매 수요시위마다 달라지기도 한다. 종교단체에서 수녀님들이 주관한 적도 있었고, 고등학교나 중학교, 사회적 기업, 기타 각종 사회단체에서 주관하기도 한다.


■ 평화나비라고 하면 소녀상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최초의 소녀상은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으로 1,000차 수요시위(2011년 12월 14일)를 맞아 세워졌다. 소녀상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시도 빠지지 않고 일본을 지켜보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음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알리자는 취지로 이화여대 앞에 지어졌다. 그 외에도 많은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소녀상을 세우게 됐고, 중앙대 소녀상은 작년 8월 15일에 제막식을 했다. 소녀상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고, 경우에 따라선 작가가 다른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건립됐다.


■ 부산 소녀상이 이슈화가 됐다.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소녀상 건립은 위안부 문제의 적극적인 해결을 일본과 우리 정부에게 촉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우리 국민의 의견차이가 심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당연히 해결돼야 한다’는 의식이 국민들에게 있다. 그러나 한‧일합의를 불인정하며 건립된 소녀상은 정부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인 게 분명하기 때문에 정부가 경찰력을 동원해 철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민들의 정서와는 위배되기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 흑석동 소녀상을 세우는데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들었다
중앙대 평화나비는 한‧일합의 이후에 소녀상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지선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중앙대병원 앞에 소녀상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병원에 일본인 관광객도 많이 오고 병원 앞 교통섬을 로터리화 할 계획이 있기 때문에 소녀상을 병원 앞에 건립하는 건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때마침 동작구와 종교단체에서도 소녀상을 짓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그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 했다. 그렇게 흑석역 3번 출구 앞에 부지를 받아 건립 하게 됐다.


■ 소녀상엔 어떤 의미들이 있는가
소녀상은 각기 다른 모양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빈 의자는 연대의 의미가 있기도 하고 떠나가신 할머니들의 빈자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거칠게 잘린 단발머리는 강제로 끌려간 할머니들을 뜻한다. 소녀상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발뒤꿈치가 들려 있는 것이다. 뒤꿈치가 들린 동상은 흔치 않다고 하는데, 조국에 돌아왔음에도 발붙일 곳 없던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한 마리 새는 하늘로 올라가신 할머니들과의 매개체이며, 꽉 쥔 주먹은 위안부 해결을 위한 굳은 의지를 상징한다.


■ 2015년 12월에 있었던 위안부 합의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최초의 합의는 박정희 정권 때 이루어졌다. 그것은 수교가 아닌 헐값에 국민들을 판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본에게 법적배상을 요구하는데 정부는 거래를 한 것이다. 그것이 후세대인 우리들이 안고가야 하는 짐이 됐다. 2015년 12월에 있었던 합의 역시 이것의 연장이라고 본다. 일본에서는 민간차원에서 기금을 마련해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법적배상이다. 범죄를 저질렀을 때, 벌금을 내는 것과 미안하다고 돈을 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 문제해결을 위해 요구하는 사항은 무엇인가
법적배상, 책임자 처벌, 위안부 피해 내역 등에 대한 진상 규명, 공식 사죄, 올바른 역사교육 실행, 추모비 및 역사관 건립 등을 포함한 7대 요구안이 있다. ‘화해와 치유 재단’이 설립되긴 했지만 일본에게는 화해가 아닌 사과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의개혁 재단’이라는 단체가 발족 준비 중이다. 이들의 가장 기초적 요구사항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행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위안부 강제 동행을 일본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민간차원에서 어쩌다보니 일어난 일이라고 하는데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 조선 뿐 아니라 아시아 전반에서 일제의 징용이 있었는데 해외의 움직임은 없는가
가장 가까운 곳이 베트남이다. 베트남 위안부 문제는 국군이 베트남에서 자행한 일들도 사죄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결국 전쟁과 제국주의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군인들이 월남전에서 자행한 일에 대한 사과와 배상까지 이행하는 것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길 중 하나일 것이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남북이 함께 해결해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 이번 한‧일합의에 대해 일본은 최종적 합의라고 이야기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평화나비는 그 정권의 행보에 따라서 영향을 많이 받는 단체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언제나 우리에게는 장애물이 있었고, 지금도 그 장애물을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씀하신다. 한‧일합의가 장애물인 건 맞지만 여태까지 있어왔던 수많은 장애물 중 하나로 보고 평화나비가 그 중심이 되어 극복해나갈 것이다. 이번에 촛불 정국으로 인해 국민들이 하나로 모였는데, 이처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함께 연대해 가는 것이 평화나비의 방향이다.


■ 장애물이라고 했는데, 학업과의 병행 등 여러 가지 현실적 장애물이 있을 것 같다
학내 수요시위를 세 번 진행 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에는 소음이 발생 할 수 있고 촛불 때문에 머리가 탈 수 있다며 학교에서 허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총장과의 면담 등을 통해 수요시위를 열 수 있었다. 금전적인 문제도 많았는데 이내창기념사업단에서 도움을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다들 학생들이다 보니 학업이나 아르바이트에 쫓긴다. 이것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겪는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곧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문제의식이 있음에도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를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시민운동에 동참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참여하는 방법은 많다. 시민운동을 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실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 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 매체에서도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으로 구분 짓고 있다. 하지만 자유롭게 정치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사소해 보이지만 운동의 하나다. ‘이 사람은 조금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고 ‘이 사람은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저마다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직접 그 현장을 가보는 것이 더 좋다. 활동을 하다보면 내 동력의 불씨가 작아지는데,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 순간이 온다. 그때 다른 사람에게서 그 불을 옮겨와 다시 붙일 수 있도록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리 정윤환 편집위원|bestss20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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