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욱 / 사회학과 교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붕괴와 재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헌정유린 사태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다.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붕괴한 상황, 이를 어떻게 재건해나갈지가 남겨진 숙제다. 촛불정국을 맞이하여 대학이 나가야할 바를 김누리 교수(유럽문화학부)가, 시민사회의 길을 신진욱 교수(사회학과)가 각각 진단한다. 이하 일문일답. <편집자 주>

 신진욱 교수와 일문일답: 촛불과 시민사회

 

물 밑 네트워크에서 조직된 시민사회로

 

■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가 이렇게까지 될 수 있나
민주주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핵심이 될 수 있다. “한국 정치체제가 독재냐 민주주의냐” 하고 묻는다면 민주주의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내용’ ‘제도적인 틀’ ‘실제 어느 정도 민주적이냐’ 등의 측면에서 우리는 많은 현실 민주주의를 구분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에는 다양한 자유가 보장 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 중 대부분이 충족 되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시민적‧정치적 자유가 보장 되지 않는 국가들이 있을 수 있다. 그 수많은 현실 민주주의 가운데서 한국은 민주주의가 굉장히 결핍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 결핍된 민주주의 사회라고 진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48년 정부수립 이후 권위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정치체제였다. 짧은 민주주의가 있었고 곧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87년까지 말하자면 민주주의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라다. 그 구체제의 지배 세력이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에 우리가 겪은 일이 그 연장선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철저한 자기반성과 거듭남이 없던 것이 문제다. 이 때문에 여태까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던 유신 세력들이 일거에 우리 사회의 요직으로 들어오게 됐다.


■ 하지만 우리는 한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배워왔다
한국에서 ‘민주화’란 단순한 것이었다. 최소한의 자유도 보장해주지 못했던 독재를 끝내는 것으로 민주화를 가늠하던 시대였다. 그 분기점이 바로 6.29선언이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예외 없이 정기적인 선거가 이루어졌다. 민주주의가 도입 됐다가 쿠데타가 일어나기도 하고 암살과 같은 정치적 불안과 격동에 싸여 있다가 선거를 하는 사회도 있다. 그런 사회에 비해선 한국이 정권교체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 수준에서 이야기한다면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지만, 이것은 민주사회의 기본이다. 그것만 있는 상태에서는 실제적인 민주주의가 아닌 형태로 변질될 가능성이 많다.


■ 그렇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볼 수 있나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초석 위에 구 독재 세력들이 민주적 외양을 띄고 민주적이지 않은 집을 지은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급속하게 진행돼 온 이 과정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볼 수 있다. ‘정치경쟁이 보장 되느냐’ ‘시민들이 언론을 통해서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적인 정보와 여론을 충분히 접할 수 있느냐’ 등과 같은 것들이 민주주의의 정의 안에 들어간다. 이것들이 보장돼야 한다.


■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이게 하는 요건은 무엇이 더 있나
‘법치주의’ ‘헌법주의’ 그리고 정치제도로 환원할 수 없는 ‘사회 내에서의 세력관계’가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많은 국가들은 법치주의를 도입하고 있지만 법치주의가 민주주의의 일부인 것은 아니다. 다수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라 할지라도 그 권력이 법 위에 군림한다면 그 사회에 민주주의가 없어질 수 있다. 권력이 선출된 이후에도 정치적인 경쟁이 작동할 수 있으려면 지배자 역시 법아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정부는, 국가를 비판하는 시민들을 법치주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억압 해왔다. 선거가 전부인 앙상한 민주주의와 법을 동원한 임의적인 통치, 법을 동원한 권력 남용 등이 맞물려 헌법적‧민주적 가치들이 훼손 됐다.


■ 보수 단체에서는 촛불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한다. 그들이 이야기 하는 민주주의란 무엇이라고 보는가
‘자유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형식과 구체적 맥락에서 의미하는 바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지배체제에 저항했던 운동들이 표방하는 가치는 민주주의와 자유였다. 그리고 그들을 억압하고 파괴 시켰던 세력들의 공식적 이념이 자유민주주의였다. 권위주의 체제 안에서 이야기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실체는 반공이고 반북이었다. ‘북한에 반대 한다’ ‘공산주의에 반대 한다’는 부정적 정체성 밖에 갖고 있지 않는 텅 빈 언어다.

 

 
 

■ 그렇다면 문제는 권력 집중적인 대통령제인 것인가
원인이 대통령제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외양만 민주적인 정치 형태는 내각제나 준 대통령제 등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의 핵심은 검‧경 정보기관과 국세청, 감사원 같은 권력기관이다. 이런 핵심적 권력기관들에 대한 표적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추상적 체제 변화보다 더 중요하다.


■ 사회적 세력관계의 균형을 잡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젊은층들은 정치에 대해서 강한 비판정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되, 자기가 놓인 삶의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이들에게 어떻게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하고 쟁취하게 할 수 있지를 모색해야 우리의 미래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기득권 세력이 법 위에서 마구 권력을 행사하던 시대를 끝내기 위한 인적 청산과 세력 교체도 중요하다.


■ 그동안 있었던 많은 촛불들과 2016년의 촛불은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가
2004년에 노무현 대통력 탄핵 반대 시위가 있었다. 시민사회는 집회를 통해 탄핵을 기각시키는 성공을 경험했다. 2008년 촛불집회는 패배의 경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공동체적인 경험을 하고 가장 격렬한 토론하고 지식을 나눴던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처럼 여러 차례에 걸친 저항 행동, 축적된 역사적 내러티브와 경험이 응축되어 나온 것이다. 87년 이후에 꾸준히 진행되어온 장기적인 트랜드가 압축된 사건이라고 본다.


■ 일각에서는 촛불 시민 ‘혁명’이라는 말을 강조하는데 혁명이라 이름 붙일 수 있나
만약 3월에 탄핵이 헌재에서 최종적으로 인용 된다면 2016년부터 시작된 한국의 촛불 집회는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의미를 갖는 시민 명예혁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혁명인 것은 아니다. 혁명은 질서와 인적 측면과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존재했던 것을 붕괴시키고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이다. 탄핵이 인용되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우리 사회의 헌법적 규정을 올바로 이행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선거에 의해 선출된 권력자라 할지라도 그것을 훼손했을 때 시민 항쟁에 의해서 내려오게 할 수 있다는 하나의 역사적 전례를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혁명적 전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 왜 우리는 촛불을 통해서 이야기 하는가
촛불은 시민들의 민주적 정치의식, 민주적 자의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성장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이는 평소에는 정치적이지 않아 보이던 수많은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적 이슈가 발생하여 순식간에 정치적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를 사회 운동 연구에서는 ‘양서류적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알베르토 멜루치(Alberto Meluchi)의 개념 중에 ‘물 밑 네트워크’라는 것이 있다. 과거에는 운동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분 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잠재적인 저항 운동의 주체들이 동호회와 같은 비정치적 네트워크를 통해 물 밑에 잠겨있다가 촉발제를 만나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정보사회의 도래라는 기술적 배경 역시 일익을 담당한다. 인터넷, 스마트폰의 대중화 등이 중요한 매개체가 됐다. 이를 통해 운동권이 아닌, 물 밑의 사적인 네트워크 안 사람들이 손쉽게 물 위로 나와서 이 나라의 정치적 주체로서 집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그러면 촛불의 부정적인 부분은 없는가
‘조직된 시민사회의 미발달’ ‘정당의 의사 대표 능력 결여’가 부정적인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우리 일상 속에 잘 조직된 시민사회가 발달돼 있다면, 정당 정치가 발달해서 시민사회의 요구를 잘 수용할 수 있었다면, 네트워크형 사회운동이 다른 어떤 사회보다도 대규모로 이루어질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노조가 그 역할을 못하고 각 지역의 이익단체들도 힘을 갖고 있지 않으며 정당도 그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곪게 되었다. 그 곪은 것들이 시민적 네트워크로 인해 터져 나왔다.


■ 촛불 이후, 시민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시민의식, 주권자 의식을 어떻게 더 꽃피워 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은 사태까지 오도록 만든 두 가지의 중대한 결핍, ‘우리 사회 정당정치 취약성’과 ‘조직된 시민사회의 힘이 너무나 약하다는 것’을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네트워크화 된 단체 및 시민들이 전문가 집단과의 건강하고 건설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리 정윤환 편집위원|bestss20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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