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환 / 철학과 교수

교수칼럼

‘국정농단 사건’과 우리의 과제, 그래도 다시 교육이다

최성환 / 철학과 교수


한국 현대사의 두 축인 민주화와 산업화가 종종 우리나라 성공신화의 상징처럼 간주된다. 그런데 ‘성공’에 대해 말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처럼 보인다. 민주화는 정치시스템의 합리성, 시민의식의 성숙 그리고 법치주의의 정착 등의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미완의 기획이다. 산업화는 양극화, (청년)실업, 복지 등의 문제로 인해 오히려 사회·경제적 문제들의 온상처럼 보인다.

이런 기로에 서 있는 우리나라에 최근 쓰나미와 같은 ‘국정농단사건’이 덮쳐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누구는 혼란에 불안해하고 누구는 혼란에서 새로운 희망의 징조를 본다. 이러한 사건이 자승자박의 결과로 구조적인 결함에서 나온 예견된 참사라고 주장하는 시각도 있고, 긴 역사의 흐름에서 발전의 토대로서 악의 불가피성을 말하는, 헤겔의 표현을 빌자면 ‘이성의 간지’의 작용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래도 현실을 겪어야 하는 시민들의 마음은 고통스럽고 참담하다. 특히 대학의 구성원으로 이런 상황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사건에서 교훈을 얻고 대학의 역할에 대해 다시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산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지나가는 시민이 “알 만한 사람들이!”라고 일갈한다. 예전에는 다툼이 있으면 ‘배운 사람’에게 특별한 태도를 요구했다. 그것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게 분수를 지키는 미덕을 의미했다. ‘농단’은 ‘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가지고 놂’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이런 ‘제멋대로 가지고 놂’이 가능하도록 방치한 집단들은 결국 누구인가. 최근 한 국회의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교육계에 이 사건과 연관된 문제들이 불거졌을 때 관련 교수 중 아무도 문제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런 교수들로부터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어떤 인재로 성장할 것인지 심히 걱정이 된다. 그들은 정의감이나 건전한 가치관은커녕 오로지 ‘사전적 의미’에서의 성공, 즉 부나 명예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달려갈 것이 명약관화하다. 소수이기를 희망하지만 오로지 경제적 가치만을 숭배하며 모든 삶의 역량을 자신의 출세를 위해 쏟아붓는 ‘배운 사람들’이 앞장서서 사회적 해악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자신의 정당한 몫을 기대하고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건전한 공동체의 기본 규약이다. 그런데 ‘눈먼 돈’이라는 표현이 있다.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지는 많은 정부의 사업들이 지략(智略)과 모사(某事)의 대상으로 전락한 전리품 취급을 받는다. 대학들도 앞 다투어 이런 사업에 뛰어들고 그것을 학교의 위상과 성취로 ‘자부’하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말하기가 주저되지만 사실 이런 재원만 잘 관리해도 그렇게 말 많은 ‘보편 복지’의 상당한 부분을 충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최근 대학에는 진지한 대화와 고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대신 시대적·사회적 변화를 빌미로 자기변명을 일삼고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있는 것 같다. 대학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입장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학생들에게 취업이 참으로 심각한 상황에서 한가한 이야기만을 나눌 수도 없다. 그러나 대학은 인간성을 함양하고 사회적 책임과 국가의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교육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근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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