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7.3.10 금 02:48
기획문화
마포시장 한 바퀴김란기 / 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 대표
김현진 편집위원  |  kim1998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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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호]
승인 2016.12.05  18: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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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으로 통하는 샛길, 골목 ④ 마포구 공덕동 마포시장

골목에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고, 시간이 흘러 다시 거대 기업이 들어선다.
공간을 두고 싸우는 갑론을박은 철저하게 자본의 원리에 따라 진행된다. 거대한 도시에서 틈새로 들어오는 자본의 흐름을 더 이상은 막을 수 없다. 왜 자본은 골목을 파괴하는가. 우리는 왜 골목을 찾아가는가. <편집자 주>

 

마포시장 한 바퀴

김란기 / 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 대표

옛날에 은방울 자매인지 금방울 자매인지가 있었다. 쌍방울 자매는 분명 아니었다. 그녀들이 부른 노래 중에 마포종점이란 노래가 있었는데 꽤나 유행했었던 기억이다.

그 마포종점에서 가까운 마포시장 여수식당에서 점심이나 먹고 마포지역 골목이나 둘러보자고 들렀지만, 사실 마포종점이야 여의도와 제일 가까운 마포대교 북단, 예전에는 마포나루 부근이었는데, 지금은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여수식당 아짐한테 뭐 여수서 갖다 쓰는 것이 있어서 여수식당이냐고 했더니
“하무니라우!”고 대답한다.
“뭣인디요?”
“젓갈은 다 여수 것이제라우!”
“근디 왜 젓갈은 안 주요?” 했더니
“젓갈 나올 밥을 시켜야 나오제 그냥 나온다우?”
그 말이 맞죠잉!
“암꺼나 시켜놓고 젓갈 내놓으라면 식당 못 해묵어라우!”
흐, 지송함다! 본전도 못 찾았네!


미나리꽝 위에 세운 시장

마포시장, 지금은 공덕시장 속의 일부가 된 이 시장은 들어서자마자 가슴이 콱 막힌다. 2층 건물이 3층으로 보이는 이 창고 같은 건물은 잡초가 주렁주렁 자라고 마르고 벗겨지고 허물어졌다. 건물 사이에 꺼먼 그물망을 치기도 하고 접이눈섭채양을 달기도 했다. 빗방울 떨어지는 날이지만 점심시간이라서 손님은 좀 있을까 했더니 완전히 파리 날리고 있다.

   
■지금은 마포시장도 아니고 공덕시장도 아니고 한흥시장도 아니다. 마포공덕시장이다. 시장이라야 속된 말로 손바닥만 하지만 그 역사는 무시할 수 없다. 재개발에 대한 기대가 커서 전통시장육성정책에도 관심이 없다. 그러나 그 날이 언제 올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 시장은 1950년대에 미나리꽝을 매립하여 천막, 판자집 같은 것으로 점포를 만들어 시장을 형성했다. 청과류와 해산물이 주로 팔리고 있었는데 1968년에 땅주인이 2층 건물을 짓고 ‘한흥시장’이라 하여 진짜 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한 때는 잘 나가던 시장이었지만 최근에는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양이다. 신문 방송마다 전통시장 상권보호니 전통시장 지원이니 야단스럽게 떠드는데 여기서는 아무런 흔적도 볼 수 없다. 1970년대 귀빈로라 하여 대로는 대대적으로 개발을 한 마포대로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대로에서는 전혀 보이지도 않고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안타까운 생각이다.

서울시가 미래유산이라 하여 오래된 건축물을 보존한다고 하는데 이 건축물도 68년에 지은 건물이니 조사해서 보존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다.

마포시장 흥망성쇠

잘 나가던 시장이었는데 어찌하여 쇠락하게 되었을까. 마포나루는 조선시대 한양에 물류를 공급하던 주요 항구 중의 하나였다. 항구들에는 ‘마포나루’만 있는 게 아니라 경강(京江)이라고 해서 송파나루·뚝섬나루·두모포·동작나루·용산항 등도 포함하였다. 이 중 다섯을 골라 오강(五江)이라 했다. 경강(京江)은 상인들을 중심으로 경강상인(京江商人)을 일컫는 말이고, 오강은 항구(나루)를 중심으로 일컬은 말이다.

   
■옛 마포나루가 서울의 물류공급기지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서해안에서 산출되는 온갖 물산이 한강을 거슬러 뱃길로 들어왔다면 이해할 만하다. 1800년대 말 마포나루의 모습이다. (사진출처 : 민족의 사진첩. 서문당. 1994)

그 중 마포나루는 한양 서부의 물류를 공급하던 항구인데 주로 서해안과 한강하류 물길을 통해 들어오는 물류가 집중되어 한양에 공급되었다. 반면 한강의 동부에 위치한 항구들은 내륙의 물산을 한강상류에서 뗏목을 이용해 공급하던 나루였다. 이들 나루들은 조선 초기에는 시전(市廛)에 물류를 주로 공급했으나 곧 난전(亂廛)이 발달하자 이곳에 더 많은 물류를 공급하였다. 그리고 난전들은 시전에 대해 중간 도매상 기능도 더하게 되었다.

시전(市廛)은 본래 조선 초기 서울 종로, 남대문로 양편에 관립상가로 건립되어 관에 물품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도성민들에게도 생활물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임진·병자 양란 이후 난전이 급속하게 발달하자 시전상인들에게 이른바 금란전권(禁亂廛權)을 부여하여 난전과의 치열한 상권다툼을 벌이게 된다.

그러던 한양의 상권은 조선 후기에 이르자 사설시장의 발달과 함께 3개의 상권으로 재편된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시전(市廛)으로 기존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나머지 둘은 이현(배오개)시장(梨峴市場)과 칠패시장(七牌市場)이다. 이현시장은 한양의 동부 상권을 장악하고, 칠패시장은 한양 서부의 상권을 장악하게 된다. 배오개시장은 현재의 광장시장 부근에 형성되었으며 앞서 언급한 한강의 동부 나루에서 들어오는 물류가 집중하게 된다. 칠패시장은 마포, 용산, 동작나루를 거쳐 들어오는 물류의 집산지가 되는데 지금 이야기하는 마포시장의 근원이 된다.

아무튼 배오개시장과 칠패시장은 역할이나 물류에 있어서 차이가 나는데 이는 ‘동부채 칠패어(東部菜 七牌漁)’란 말로 설명된다. 말하자면 동쪽 시장인 배오개장은 한강 동부 나루에서 들어오는 시탄·채소·의류·목면·미곡 등이 주류를 이루었고, 칠패장은 남대문 밖과 서소문 사이, 만리재 아래에 형성된 시장으로 어물·미곡·포목 등이 주류를 이룸으로써 붙여진 말이다.

그 칠패장이 개화기 이후 경인·경부 철도가 들어오고 서울역 일대가 철로로 가로막혀 물류의 이동이 단절되면서 쇠퇴하게 되는 한편 도성 안의 남대문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시장은 이동하게 된다.
한편 마포 일대의 지형도 변화하면서 나루터는 점차 매립되고 공덕동 로터리까지 들어왔던 뱃길도 밀려나게 된다. 전차가 들어오면서 ‘마포종점’이 마포나루터를 대신하고 마포시장이 있는 일대는 강변이 아니라 내륙이 되어 시장을 형성하게 된다. 더불어 새우젓시장인 마포나루의 배후 염리동도 소금장에서 쇠퇴하게 된다.

   
■마포시장(한흥시장)에 가면 튀김과 생선전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대형마트에 눌리고 개발기대에 밀려 쇠퇴해가지만 그 땅에 강고하게 전해 내려오는 맛깔 상품은 이어지고 계속된다.

그런데 요즘 ‘전통시장’이니 ‘마을장’이니 해서 가 보면 어찌하여 모두 골목에서 형성되었을까? 시골 장터처럼 넓은 터를 가지고 시장이 형성된 곳은 많지 않으니 말이다. 대한제국 시기, 전차가 들어오기 직전 종로나 남대문로에는 소위 ‘가가(假家)’라는 임시점포가 도로를 점령하여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전차가 들어오고부터 골목으로 밀려들어 시장으로 변모한 것은 아닐까. 그러니 요즘 골목시장은 생활밀착형이다. 골목 양편 주택들이 시장 상가를 이루었고 가게는 주상복합이었던 셈이다.

그나저나 지금도 마포시장에 가면 생선전과 튀김집이 풍성하다. 왜 그럴까?
왜 그렇기는! 옛 마포나루에 어물전이 크게 번성하였으니 어물로 부친 전과 튀김이 아직도 풍부하게 전해 내려오는 것은 당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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