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운옥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혐오사회 ④ 일상에 녹아든 인종혐오

한국사회의 인종혐오와 인종주의

염운옥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백인우월주의는 대서양 노예무역과 아프리카인의 노예화 역사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백인우월주의는 가장 대표적인 형태의 인종차별이다. 노예제라는 경제적 관계와 검은 피부색이라는 육체적 특징이 결합해 ‘열등한 흑인, 우수한 백인’이라는 허구적 이분법이 생겨났다. 한국은 대서양 노예제 역사와 무관하다. 그런데 왜 한국인은 흑인을 차별하는 것일까?

한국사회의 인종혐오와 인종주의를 논할 때 먼저 생각해야 할 문제는 뿌리 깊은 백인 선망일 것이다. 한국인의 백인 선망, 서양인 동경은 구한말 경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얼굴 허연 도깨비로 보였던 서양인이지만 당시 그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우월한 권력자였다. 백인을 우월한 인종으로 경험하면서 강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고 비백인에 대한 편견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약육강식의 논리인 사회진화론과 오리엔탈리즘이 합쳐지면서 백인우월주의는 백인 선망으로 한국인의 심성에 내면화되었다.

인종혐오와 인종주의의 문제는 한국사회가 다민족·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하나의 징후이다. 인종혐오는 이질적인 것에 대한 공포인 ‘이질성혐오(heterophobia)’에서 기인한다. 인종혐오가 외국인을 향하면 ‘외국인혐오(xenophobia)’가 된다. 낯선 이에 대한 거부감이 만남을 거듭하다 보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하다. 인종혐오와 외국인혐오는 외국인과의 일상적인 접촉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싹트고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곳에서 자라난다. 접촉의 빈도가 증가하면 할수록 혐오 또한 증대되는 것이다.

사실 인종주의의 재등장은 지구화와 궤를 같이 하며 벌어지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최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민자에 대한 공격과 폭력사태의 밑바닥에는 반(反)이민 포퓰리즘과 결합된 인종주의가 둥지를 틀고 있다. 한국에서도 “차별에 찬성”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하고 있고, “다문화 반대”와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댓글을 인터넷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체류 외국인 150만 명, 5천만 인구의 약 3%가 외국인인 한국에서 인종차별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불거져 나올 가능성은 상존한다.


인종차별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비백인 외국인이 차별을 받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한국에서 인종차별은 피부색에 출신국의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상 위치라는 요인이 덧붙여져 발생한다. 이주노동자가 부당하고 모욕적인 처우를 당하는 일, 흑인 영어강사가 영어학원 취업면접을 거부당하는 일, 길을 물어보는 백인에게는 친절하지만 동남아시아인은 외면하는 일, 히잡 쓴 무슬림 여성을 테러리스트로 의심하는 눈길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짐바브웨와 부르키나 파소에서 온 예술가들에게 월 60만 원도 안 되는 저임금과 쥐가 나오는 열악한 기숙사를 제공하고 노동착취를 자행한 포천 아프리카 예술박물관 ‘노예노동’ 사건도 있었다. 2014년 10월 한국을 공식 방문한 무투마 루티에레 유엔 인종차별 특별보고관은 “관계 당국이 관심을 둬야 할 심각한 인종차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보노짓 후세인 사건은 한국사회에서 인종차별이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된 첫 사례다. 인도 출신의 보노짓 후세인 교수는 성공회대의 시민사회 지도자 초청 프로그램으로 내한한 지 2년째였다. 2009년 7월 10일 그는 부천의 한 버스 안에서 한국인 박모씨에 의해 ‘이주노동자’ 취급과 함께 폭언을 당했다. 박씨의 발언은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인 동시에 동행한 한국인 여성 한모씨에 대한 성차별 언어폭력이기도 했다. 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후세인씨에게 차별적 발언을 해 2차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박모씨는 벌금 100만 원의 처벌을 받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에 대해 인종차별 행위를 시정할 것과 예방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보노짓 후세인 사건은 인종차별이 가시화된 매우 ‘드문’ 사례였다. 사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특히 ‘불(법)체(류자)’라고 불리는 ‘미등록(undocumented)’ 체류자들은 차별당해도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이 사건은 개인적 인종차별 행위를 넘어 보다 구조적 문제에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인종차별 언어폭력에 대해 첫 법적 처벌을 끌어냄으로써 인종차별뿐 아니라 성소수자차별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논의를 촉발했다.


‘인종적인 것’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개인 차원의 인종차별보다 더 중요한 측면은 ‘인종적인 것(the racial)’이라는 범주가 구성되고 관리되는 방식이다. 이주노동자, 결혼 이주여성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인종이 일상과 제도 속에 기입되는 ‘인종화(racialization)’ 과정은 현재 진행 중이다. 사회관계와 제도 속에 인종주의가 기입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수행중인 ‘인종화’ 과정은 이주노동정책과 다문화정책이라는 두 제도를 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주노동정책의 근간은 2003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고용허가제이다. 고용허가제는 정착을 인정하지 않는 단기순환 이주노동제도이다. 성년노동력 생산에 필요한 비용(보육, 교육, 복지 등)은 이주노동자의 출신국에서 지출했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없이 노동력이 극대화된 연령(20~39세)의 노동자를 단기 고용했다가 돌려보내는 것이다. 국제앰네스티 보고서에서 비판한 것처럼 단물만 빨아먹고 버리는 ‘일회용 노동자’ 제도인 것이다. 그 자체로 이미 차별적인 고용허가제는 미등록체류의 증가를 막지도 못하며, 이주노동자들이 당하는 인종차별에도 무력하다. 경찰과 미디어가 ‘외국인범죄’ 담론을 생산 유포하며 이주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다문화정책도 문제다. 결혼이주자와 그 가족을 지원대상으로 삼는 다문화정책은 저출산 극복과 ‘한국인 늘리기’를 목표로 삼는 인구정책의 일환이다. 한국인 남성의 자녀를 낳는 외국 여성을 지원한다는 다문화정책은 사실 동화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원래 다문화주의는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의 인정을 전제로 하는 원리로 동화주의와 배치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말하는 다문화주의란 역설적이게도 결혼이주여성과 자녀를 한국인으로 동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다문화’라는 수식어가 일종의 낙인을 작동하며 다문화 가정, 다문화 자녀, 나아가 다문화 장병은 ‘2등 한국인’으로 배제적 포섭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 한국사회에 기입되고 있는 인종주의에 맞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는 결국 현실에 대한 냉철한 진단과 분석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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