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7.6.14 수 22:31
기획
한 고개 넘어가니, 아이야!
정윤환 편집위원  |  bestss20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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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호]
승인 2016.12.05  18: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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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판 키우다 - 육아와 학업,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학과 공부와 개인 연구, 생계를 위한 일까지 해야 하는 원우들의 생활은 정신없이 돌아간다. 여기에 돌봐야 하는 아이까지 있다면 어떨까. 지난 23일, 육아와 학업 두 목표를 이루어 나가는 대학원생의 ‘판’을 열었다. 함께 가기 힘들지만 함께 가야만 하는 두 길 위에 서 있는 원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한 고개 넘어가니, 아이야!

그렇게 엄마가 됐다

랜덤닉넴_ 저는 석사 졸업하고 나서 결혼했어요. 박사 수료하고 나서 아이를 가지기로 했죠. 지금 애가 하나인데 주변에서는 대학원생의 삶을 모르니까 “둘째 언제 가질래?” 하고 물어봐요. 저는 졸업이냐 또 한 명의 아이냐를 놓고 고민을 하는 거예요.
엄마학생_ 저는 아이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둘째도 낳을 생각이에요. 박사 수료를 앞두고 결혼을 했는데, 아이가 제 졸업 논문을 앞두고 갑자기 찾아온 거죠. 사실 (임신은) 계획에 없었어요. 처음에는 임신을 했다는 걸 알고 많이 울었어요. 내 계획이 변경되는 것을 느끼면서 걱정과 두려움을 느꼈어요. 동시에 생명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많이 울었지요.
랜덤닉넴_ 저는 출산을 박사 수료 후로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게, 신랑도 결혼할 땐 대학원생이었거든요. 둘 중 하나가 수입이 있어야 되잖아요? 이제는 신랑도 취업을 했고, 따져보면 지금이 아이를 낳을 적기인 거죠. 또 막상 수료하고 나니까 논문 써야 졸업을 할 수 있는데, 이 상태로 주저주저하다가 재학 연한 지나면 졸업 못 하는 거 아니에요. 그게 두려운 거예요.
엄마학생_ 직장생활 하는 워킹맘은 적어도 개인의 삶의 목표와 육아 문제가 상충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박사과정은 초·중·고·대학교의 연장이라고 느껴져요. 보통은 대학을 ‘마치고’ 직장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잖아요? 대학원은 일종의 직업을 갖기 전에 아직 개인의 목표를 성취해가는 ‘과정’인 거죠. 그 과정에서 아이라고 하는 새로운 변수가 들어온 건데, 내 후세대를 양육해야 하는 그 목표가 제가 가진 목표와 상충되는 거예요. 그래서 빨리 둘 중 하나를 마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마칠 순 없으니까 학위를 마치고 싶은 거죠.
랜덤닉넴_ 그럼 다시 원점인데 시간이 모자라죠.
엄마학생_ 네, 연구를 하려면 시간을 오랫동안 투자해야 하거든요. 한 시간 짧게짧게 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거든요? 한 학기를 온전히 쏟아야 되는데…….
랜덤닉넴_ 아이가 있으면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사실 대학원생은 토요일, 일요일이 따로 없잖아요. 하루 24시간 투자해서 논문을 쓰면 될 것 같은데,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는 거예요. 뭘 좀 썼다 하면 애 데리러 가야 하고, 다시 보면 또 마음에 안 들고 또 고치게 되죠. 하나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죠. 엄마 역할하기도 힘들고 대학원생으로도 잘 못하고 있으니까.
엄마학생_ 나에게 한 번에 8시간이 주어지는 거랑 3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거죠. 8시간을 딱 투자해서 뭔가 성과물을 내놓는 거랑, 일주일 간 합산된 8시간은 다른 거예요. 제일 힘든 게 그런 부분이에요.
랜덤닉넴_ 육아분담을 하니까 그나마 가사노동은 조금 줄어들어요. 누군가 하나는 애를 전담해야 해요. 신랑이랑 둘이 살 때는 그냥 대충 했거든요? 귀찮으면 대강 청소 안 하고 살고, 대충 라면 먹기도 하고 했는데, 애가 있으면 그게 안 돼요. 애를 대충 먹이려고 해도 대충 무언가를 해야 해요. 반찬 만들고 놀아주고 하다 보면 신랑이 밤에 애랑 같이 뻗어요. 예전에는 신랑이 저녁에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곤 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애랑 있다가 신랑 먼저 코 골고 자고, 그러면 저는 다음날 애를 위해서 또 무언가를 준비해 놓아야 하는 거죠.
엄마학생_ 다른 사람들 도움은 전혀 안 받는 거예요?
랜덤닉넴_ 수요일은 학교가 늦게 끝나니까 어머니를 아침 일찍 만나서 애를 맡기고 학교에 와요. 그 때 일도 많이 하고 약간 숨 쉬는 것 같은 느낌을 좀 받아요. 저녁에는 신랑이 애기를 데려오고요. 토요일에는 제가 일을 하는데 그땐 신랑이 애를 보죠. 나머지 월·화·목·금은 제 몫이에요.
엄마학생_ 저는 제 신랑이 ‘나 몰라라’하는 사람은 아니라 어쨌거나 가사분담은 하고 있어요. 가사나 육아가 비단 워킹맘들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아버지들도 비슷한 것 같아요. 우리 신랑 같은 경우도 제가 저녁준비 하는 동안 애랑 놀아주고, 아이랑 제가 씻는 동안 신랑은 설거지를 하는 거죠. 그리고 나면 10시 정도 돼요. 애는 또 낮 동안 엄마 아빠랑 떨어져 있으니까 놀고 싶어한단 말이에요? 그런 건 상태 봐서 들어주다가 11시 반 정도 되면 자곤 해요. 요즘은 불 끄면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요.
랜덤닉넴_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집안일을 우리 둘이 공동으로 꾸려가고 있었는데,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온전한 내 몫이 하나 있고, 내가 힘드니까 “자기가 이거 이거 이거 해줘” 하면 그때 도와주게 되는 거죠. 나중에 결혼하면 아내한테 잘 하세요.
사회자_ (웃음) 네, 그래야겠습니다.
엄마학생_ 아이가 어딜 가면 참 말 잘 듣는데 엄마랑 있으면 한 1년 정도 퇴행하는 느낌이에요. 더 어리광 부리기도 하고 엄마를 더 때리기도 하는데, 그게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아이를 보면 1차적인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요. 남편이 2차 책임자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그렇게 규정을 하는 걸요.
랜덤닉넴_ 정말 그래요. 아빠가 저녁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반가워하고, 엄마가 찾아가면 반가움과 짜증도 같이 내요.
엄마학생_ 왜 이제 왔냐는 거죠.

보육제도, 있어도 없어도…

랜덤닉넴_ 아이를 대신 키워줄 수 없으니까, 결국 아이는 내가 키워야 하니까 일단은 개인의 문제이긴 하죠.
엄마학생_ 그래도 제도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지요. 그동안 그런 제도들이 어느 정도 괜찮았다고 봐요. 전에는 6시까지는 보육을 할 수 있었잖아요. 맞춤형복지, 이게 언제죠?
랜덤닉넴_ 그게 작년 8월이었나? 7월이었나? 시행됐지요.
엄마학생_ 맞춤형복지, 말도 안 되는 거죠. 전업주부들은 6시까지 애를 못 맡겨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누구에게나 9시부터 6시까지 보육을 해 줄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어야 누구나 나가서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지요. 결국은 예산 문제인 것 같지만요.
랜덤닉넴_ 어린이집에 종일반이랑 반일반이라고 반이 나뉘어 있어요. 반일반이 맞춤반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는데, 한 마디로 엄마가 직장인이면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맡길 수 있거든요? 그런데 맞춤반 아이들은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밖에 못 맡기는 거예요. 그래서 종일반 신청을 하려고 동사무소에 갔어요. 그런데 종일반 요건이 안 되는 거예요. 대학원생이면 괜찮은데 저는 수료를 했으니까 대상이 아니래요. 시간강사면 주 15시간 이상 강의를 해야 하는데, 대학원생이 그렇게 강의를 어떻게 해요. 결국 지도교수님께 추천서를 받아서 간신히 종일반이 됐어요.
사회자_ 추천서가 있으면 참작이 되는군요.
랜덤닉넴_ 그런데 가관인 게 6개월마다 그걸(추천서 접수를) 하래요. 대학원생은 잘 해야 전업주부 취급을 받는 것 같아요. ‘네가 공부를 하면 얼마나 하겠냐’ ‘네 애기는 네가 알아서 봐라’ 하는 식의 태도가 짜증나요.
엄마학생_ 아무래도 대학원생들은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가정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직장인들은 주 5일제로 9시부터 6시까지, 시간을 정해놓고 일을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게 아무 의미 없잖아요? 과제나 연구나 시간을 계속해서 투자해야 하는 것인데 ‘주 5일’ 이런 걸 가지고 우리를 평가하면 안 되죠.
사회자_ 그럼 낮 동안에 아이는 누가 돌보나요?
엄마학생_ 저는 워킹맘 기준에 따르면 천국이에요. 양 쪽 할머니들이 다들 도움을 주세요. 항시 어머니들께 맡기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를 해야 하거나 강의를 하러 나가야 할 때는 어머니들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죠. 그렇게 아이를 부탁드리고 달마다 정말 약소한 금액을 드려요. 그래도 죄송스러운 게, 시어머니가 퇴행성관절염이 있어요. 아이를 업어주시고 안아주시고 해야 하는데, 신체적으로 무리가 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당장 대안이 없으니까 편찮으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맡기는 수밖에 없어요. 어린이집 입소 대기 중이긴 한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사회자_ 어린이집에 입소한다 해도 또 다른 문제들은 있을 수 있겠네요.
엄마학생_ 어린이집 데려다 주시고 하원하는 것은 어머님께서 해 주셔야겠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부분은 아직 논의가 안 된 거라 잠재적인 스트레스죠.
랜덤닉넴_ 대부분 일을 하는 엄마들도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서 일찍 하원시켜요. 원래 보육 시간은 7시까지지만 그 시간에 가면 우리 아이밖에 없어요. 그게 엄청 스트레스예요. 일을 하다 보면 ‘몇 시에 애를 데리러 가야 하나’ ‘애가 혼자 나를 기다릴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4시부터 초조해지죠. ‘언제까지 일을 하고 있어야 하지?’ ‘끊고 지금 데리러 갈까?’ ‘마저 일을 할까?’ 하는 거예요. 엄마로서의 양심과 대학원생으로서 일을 끝내야 한다는 것 사이에서 싸우는 거죠. 애가 스트레스 받아 하는 것도 보이고요. 요즘은 애가 그래요. “엄마 공부 싫어”
엄마학생_ 그런 이야기 하면 어떤 마음이 들어요?
랜덤닉넴_ 공부를 하는 것은 분명 내 삶의 목적 때문에 하는 건데, 아이를 잘 키우는 것도 내 삶의 목표가 됐단 말이에요? 그런 목표와 목표가 상충하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인데 애한테 못 할 짓이 되는 것 같고요. 공부를 똑바로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애를 똑바로 보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자괴감이 들어요.
엄마학생_ 맞아요. 매번 그렇게 상충되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감정과 목표 사이에서 늘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집에서는 학교에 관련된 일을 안 해요. 나름대로의 대처전략이에요. 집에 가는 순간 나의 목표는 가족이 되는 거고 밖에 나와서는 ‘내가 해야 하는 외부 과업에 충실하고 가자’ 하는 일종의 자기 최면을 걸어요. 빠르게 나와서 빠르게 일처리 하고 빠르게 집으로 돌아가야 가족 목표에 맞춰진 내 생활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예전에는 이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살지 않았는데 아이가 생긴 이후부터 늘 초조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인데 애한테 못 할 짓이 되는 것 같아요. 공부를 똑바로 하는 것도, 애를 똑바로 보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자괴감이 들어요."

‘엄마’를 위한 학교는 없다

랜덤닉넴_ 이번 학기부터 중앙대에서 어린이집 원아모집을 한대요.
엄마학생_ 여기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으면 지원 가능하다고 들었던 거 같아요. 박사과정 하면서 학교 나오는 거면 상관없는데, 여기저기 강의 다니는 ‘보따리장수’들은 어렵겠지요. 그래도 전일제로 여기 있는 분들에게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사회자_ 서울시 내 대학에서는 서울대와 연세대 두 곳만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해요. 학교 시설과 연결해서 볼 수 있는 게, 중앙대에는 모유수유실 같은 게 없잖아요? 학교는 나오셔야 하는데, 유축을 해 놓았다가 보관할 곳도 없고요.
엄마학생_ (웃음) 모유수유실 같은 게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너무 좋겠네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학교에는 어디에도 아이를 위한 공간은 전혀 없어요. 제가 왜 이렇게 어이없이 웃었냐면, 모유수유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어서 유축기를 구비해서 다녔지요. 차를 가지고 다니니까 자주 유축했던 공간이 차 안이었어요. 그런데 차를 안 가지고 온 날에는 화장실, 그렇지 않으면 빈 강의실에 가릴 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유축하곤 했는데 굉장히 불안한 거예요. 어느 한 공간에서도 마음 놓고 해본 적이 없어요. 남들은 내 아이를 위한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한다고 하는데, 현실은 아닌 거죠.
사회자_ 그래서 서울대 같은 경우는 교내 육아환경 개선에 대한 움직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엄마학생_ 학교에서 그런 운동이 있다고 하면 저는 완전 찬성이에요. 모성이 어떤 제한된 공간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숨어서 유축을 할 때의 그 감정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어요. 너무 수치스러운 거예요. 엄마 카페에 들어가서 직장맘들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보니까 탕비실에서 유축한대요. 아니면 화장실 청소하는 아주머니와 친해져서 좀 넓은 공간을 빌리는 거예요. 거기를 깨끗하게 치워놓고 유축했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도 경험했던 건 저랑 똑같을 거예요. ‘내가 왜 우리 아이 먹을 걸 화장실에서 짜고 있나…….’
랜덤닉넴_ 좋은 거 먹이려 하는 건데, 위생도 보장이 안 되고요. 유축한 건 냉장 보관해야 하는데 그것도 안 되니까 얼음팩을 들고 다녀야 해요.
엄마학생_ 얼음팩도 한두 개면 안 돼요. 서너 개를 꽝꽝 얼려서 다녀야 해요. 차를 못 가져가는 날은 그걸 다 들고 다녀야 하는 거죠.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고 눈물도 흘린 적 있어요.
사회자_ 직장 같은 경우는 육아 휴직 제도가 있기도 한데, 학교는 어떤 제도가 있나요?
랜덤닉넴_ 가족관계서를 떼 가면 재학 연한이 1년 늘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박사 연한이 8년인데 9년으로 늘어나지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난 이후에도 일이나 연구실이나 교수님 연락을 안 받을 수는 없거든요.
엄마학생_ 저도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교수님의 일 전화를 받았었죠. 책 빨리 써서 언제까지 보내 달라 하셔서 산후조리원에서 작업했어요. 옆에 있는 어머니들이 왜 저 엄마는 자리가 지저분하냐고 하는데, 왜긴 왜겠어요. 노트북 펴놓고 작업하니까 그렇죠. 그때 어떻게 했냐면, 상을 펴놓고 애가 자면 수유 방석 위에다가 애를 놓고 작업을 하다가 애가 낑낑대면 어르고 작업하고 그렇게 했었죠. 그땐 그게 가능했어요. 차라리 완전 어린 게 나은 거죠.
랜덤닉넴_ 맞아요.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작업이고 뭐고…….

연구자의 길, 어머니의 삶

엄마학생_ 옛날에는 잘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학계에 한 획을 긋는 것까진 아니었어도, 좋은 논문 쓰고 의의 있는 연구로 평가받고 싶은 원대한 꿈이 있었는데, 이제는 많이 내려놨어요. 현실과 자꾸 타협하는 나를 발견하는 거죠. 빨리 자격을 취득해야 아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고, 이렇게 지지부진하는 것은 교수님께도 누가 되고, 제 커리어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것을 많이 느끼지요. 물론 교수님과의 이야기가 필요하겠지만 과거의 계획을 내려놓고 현실에 맞는 목표를 새롭게 만들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자꾸 타협하게 되죠.
랜덤닉넴_ 그 타협을 교수님은 안 들어주시는 것이 문제죠. 교수님이 처음에 학생을 받을 때 ‘어느 정도 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뽑을 텐데, 쉽지 않은 거죠. 저는 이공계 쪽 박사는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봐요. 그쪽은 출퇴근하잖아요.
엄마학생_ 이건 정말 넋두리 같은데 누가 나를 좀 채찍질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한 살 한 살 나이 들면서 쓴소리해 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게 참 슬픈 거예요.
랜덤닉넴_ 그러니까 핑계대지 않고 열심히 해야죠. 내 애를 욕 먹이기 싫어서라도요. 나중에 애 자랐을 때, ‘엄마가 열심히 살았다’ ‘너를 키우면서도 내 삶을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거죠.
엄마학생_ 이게 대학원생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할이 많아지면 정말 제로섬(zero-sum)적인 역할들이 생겨요. 그럴 때 그 현실을 그대로 인식하고 둘 중 하나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상황은 제로섬인 것이 맞지만, 그래도 뭔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방안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요. 그래서 정말 꾸역꾸역 학교 나오거든요. 그리고 또 꾸역꾸역 집에 가서 일을 해요.
랜덤닉넴_ 꾸역꾸역 발표하고, 꾸역꾸역 수업하고…….
엄마학생_ 꾸역꾸역 나오는 대신에 더 간절하게 하는 것도 있죠. 예전에는 시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한정되어 있는 시간동안 최대의 것을 가져가야 한다고 느끼는 거죠. 제가 아까 초조하다고 했던 것처럼 밖에 나와 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서 대학원생으로서 살려고 해요.

   
▲ "상황은 제로섬이지만, 그래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요. 그래서 정말 꾸역꾸역 학교 나오고, 또 꾸역꾸역 집에 가서 일을 해요."

  이들은 ‘판’의 마지막을 “그래도 행복하다”며 마무리했다. 연구자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부모 대학원생’들을 위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은 국가·사회·학교 차원의 복지 제도일 것이다. 육아와 학업, 두 마리 토끼를 충분히 멋지게 잡아내고 있는 이들의 ‘행복’을 위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육아에 대한 판을 끝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판’을 닫는다. ‘판’은 닫혔지만 우리 각자의 이야기판을 또한 펼쳐보길 희망한다.

정리 정윤환 편집위원|bestss2002@gmail.com
사진 양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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