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준 /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국제]

2016년 6월 23일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유럽 연합 탈퇴가 가결되었다. 주요 증시와 통화는 요동쳤고, 세계 경제의 미래는 한층 더 불확실해졌다. 브렉시트는 이제 세계인의 고민이다. 이에 브렉시트의 경제‧사회‧역사적 배경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나아가 EU의 역동과 향후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고, 이것이 동북아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타진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왜 브렉시트인가? ② 브렉시트 이후의 유럽 ③ 영국의 내적 갈등 ④ 브렉시트와 한국

브렉시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홍경준 /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잘 알려져 있듯이 ‘유럽연합 단일시장’의 이념은 재화(goods), 용역(services), 자본(capital), 그리고 사람(people)의 자유로운 이동에 기초한다. 논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재화와 용역, 그리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신자유주의 이념의 확장과 함께 그럭저럭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은 어떠했나?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은 생산요소인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노동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기에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자,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이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또한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전환하면서 문제는 확장되었다.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노동자의 지위에서 파생하는 권리와는 달리 취업의 기회를 찾고, 정치활동에 참여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필수적인 각종 복지 급여를 받는 것까지 확대된다. 점차 이주민이 누릴 권리들이 원주민의 몫을 축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고, 영국의 독립당을 비롯한 각국의 극우정당은 이주민이 원주민의 취업기회와 복지 급여를 빼앗아간다는 정치적 레토릭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주요정당들은 물론 지식인들도 이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한 바는 거의 없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핵심 아젠다가 이주민 문제라는 점은 투표결과에 대한 영국 공공정책연구소(IPPR) 보고서의 첫 문장에도 명료하게 표현되어 있다. “결국 문제는 이민이야, 바보야(In the end, it was immigration, stupid)”.

시장과 사회의 이중운동

  이런 맥락에서 브렉시트를 보면 낯설지 않다. 과거에도 유사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거대한 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기원》에서 토지와 화폐, 노동을 상품화하고 사회를 시장화하려는 운동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운동 사이의 작용과 반작용이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을 관통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또한 대립적인 이 두 개의 운동을 이중운동(double movement)으로 개념화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복지제도들에는 노동의 상품화를 둘러싼 이중운동의 흔적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현대적 공공부조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빈민법의 궤적은 이런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16세기 초부터 17세기 중엽까지의 빈민법들은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 억제를 최우선의 목표로 했다. 농촌에서 도시로의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이 초래할 기존 질서의 훼손은 봉건귀족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력한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기는 어려웠다. 자본주의 질서의 확산은 대세였기 때문이다.
  사회의 시장화에 대한 또 한 차례의 반격은 18세기 말 잉글랜드 남부에서 농촌의 농업노동자에게 최저생활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노동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은 도시와 농촌의 심각한 임금격차를 파생하였고, 농촌에서는 폭동이 발발했다. 대안은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전면화하거나 시장화로부터 농촌사회를 지킬 수 있는 댐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지주와 교회가 지배하는 농촌지역에서 선택한 대안은 당연히 후자였다. 스핀햄랜드법(The Speenhamland Act)은 그 결과이다. 봉건귀족과 지주, 교회가 주도했지만 노동의 상품화와 사회의 시장화에 대한 이러한 반격이 현실화한 배경에는 민초들의 지지가 있었다. 다른 가문·지역·말·교리·신분의 사람은 낯선 이주민이었다. 그 이주민에 대한 그 당시 민초들의 반감은 오늘날 영국 원주민이 국경을 넘어 몰려온 이주민에 대해 느끼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브렉시트,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국면인가 파시즘의 시작인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장의 작용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는’ 운동은 특정 이념이나 세력에 의해서만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봉건귀족과 지주, 교회가 주도하기도 했고, 제국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주도한 적도 있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한 경우도 있다. ‘시장의 작용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는’ 운동이 언제나 성공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스핀햄랜드의 반격은 오히려 자유주의의 승리를 앞당겼다. 파시즘 또한 바로 이러한 운동이었다. 물론 이러한 운동 중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증진하는데 기여한 성공적이었던 것들도 있다. 19세기 말에 이루어진 사회보험의 제도화, 1935년 미국의 사회보장법 제정, 20세기 중반부터 개화한 복지국가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다른 운동들과 어떤 차이를 가지는가? 여기에서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운동들은 이주민을 분리하고 격리하기보단 원주민을 구성하는 정체성의 경계를 확장하는 조치를 발명하고 활용했다는 것이다. 원주민이 이주민을 함께 살아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연대와 통합의 도구가 필요했다. 민족의 관념에 기초한 공동체(ethnie)는 국민이라는 관념에 기초한 공동체(nation)로 바뀌어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국민국가(nation state)라는 상상된 정치적 공동체의 주춧돌은 시민권이라는 아이디어였다. 가문·지역·언어·종교·신분의 이질성은 시민의 동질성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국가의 지리적 경계 내에서 작동하는 시민권의 아이디어로는 더 이상 이주민과 원주민의 분리를 해소할 수 없다. 시민의 개념을 확장한 세계시민(cosmopolitan)이라는 아이디어가 존재하긴 하지만, 새롭게 상상되어야 할 공동체를 현실화하기에는 어설프다. 국민국가라는 공동체의 경계보다는 훨씬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할 수 있는 통합과 연대의 아이디어, 이주민을 분리하고 격리하기보단 원주민이라는 정체성의 경계를 크게 넓히는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와 조치를 제시하기는 매우 어렵다. 브렉시트가 신자유주의 붕괴의 시발점이 될지,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정당성을 오히려 확장하는 계기가 될지, 혹은 파시즘과 같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비극의 씨앗이 될지 아직 알 수 없는 이유다.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연대, 그것을 기초한 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의 연대를 꿈꾸는 자라면 역시 그런 아이디어와 조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차라리 국민국가의 주권을 튼튼히 세우고, 그 기초 위에서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우리가 브렉시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글은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제142호 ‘우리는 왜 브렉시트에 주목해야 하나’를 수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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