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영 / 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만물상자]

※대학원신문에서는 책, 영화, 음악, 만화 등에 대한 자유로운 형식의 글을 받습니다.
문의: ahs1182@hanmail.net


 

수많은 당신들의 이야기 <도착>

 

 김희영 / 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몇 달 전 이사를 했다. 살던 곳에서 두어 블럭 떨어진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의 이사였지만, 새로 이사한 집도, 집 앞 골목도, 사람들도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동네였지만 내가 알지 못했던 골목길이었고, 내가 살던 곳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이사 간 집에서의 생활은 금방 안정되었고, 이사가 가져다 준 일상의 작은 파동은 새로운 일상으로 바뀌어 다시 익숙한 것이 되어갔다. 그렇게 새로운 집에 적응해 가던 어느 날, 책장에 꽂혀있던 숀탠의 <도착>을 다시 꺼내 보았다.

 
 


 숀탠의 그래픽 노블 <도착>은 가족을 떠나 낯선 땅에서 적응해 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배를 타고 멀리 떠나온 길,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공간에서 홀로 집을 얻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면서 남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이곳으로 온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받으며 조금씩 자신의 삶을 꾸려간다. 새로운 곳에서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지만, 남자와 같이 언젠가 이 땅에 낯선 첫 걸음을 내딛었을 사람들 덕분에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조금씩 틔워간다. 사진 한 장, 편지 한 통으로 가족과의 애틋한 정을 나누던 남자는 종래엔 가족을 불러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새로운 삶을 꾸리게 되고 남자의 아이는 남자의 첫 순간처럼 지도를 들고 거리를 헤매는 낯선 여인을 도와준다.


  <도착>은 이주의 삶을 살았던 작가의 부모님 세대에게 바치는 호주 이민사이자, 전쟁과 가난, 학대와 폭력을 피해 어디론가 떠나는 현대인들의 삶의 에세이다. 글자 없이 800여 장의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책에서 작가는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도시 광경과 조금은 기괴한 생김새의 동식물들을 통해 몽환적이면서도 낯선 세계를 그려낸다. 여기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세밀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인물들의 이야기와 감정을 담는다. 세계에 대한 이질감,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삶의 감정들은 한순간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 낯선 공간에서의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분노, 사랑과 평화의 감정을 온몸으로 체감토록 한다.


 묘한 감정의 소요들을 느끼며 책을 덮기 직전, 수많은 이민자들의 초상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각자가 머금고 있는 세월과 이야기들이 들리는 듯해 그들의 얼굴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삶은 늘 낯선 것과 마주하는 것이며, 그 이질감은 일상이 되어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늘 어딘가로 떠나고 어딘가에 도착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는 듯 했다. 800조각의 그림이 전하는 우리의 이야기, 너와 나를 경계짓는 ‘이주’에 대해서, 동전의 양면처럼 나란히 존재하는 낯섦과 익숙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다면, 이 그림책의 책장을 넘겨보길 권한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