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석 / 부경대 경제학과 강사

2016년 6월 23일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유럽 연합 탈퇴가 가결되었다. 주요 증시와 통화는 요동쳤고, 세계 경제의 미래는 한층 더 불확실해졌다. 브렉시트는 이제 세계인의 고민이다. 이에 브렉시트의 경제‧사회‧역사적 배경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나아가 EU의 역동과 향후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고, 이것이 동북아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타진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왜 브렉시트인가? ② 브렉시트 이후의 유럽 ③ 영국의 내적 갈등 ④ 브렉시트와 한국


브렉시트가 의미하는 것

남종석 / 부경대 경제학과 강사

  카메론은 브렉시트 투표에서 승리할 것을 낙관했었다. 이는 영국 엘리트 계급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이 엘리트주의자들은 박탈당한 영국 노동자계급의 심성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었다.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자란 철없는 영국 수상은, 투표를 통해 당 내외의 브렉시트 진영에게 패배를 안겨줌으로써 보수당 내에서의 지반을 확고하게 다지고자 했다. EU 잔류 진영은 공포마케팅으로 대중을 위협했다. 영국이 EU를 떠나게 되면 경제위기가 올 것이고, 수입 물가는 상승하고,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극적으로 증가할 것이라 선동했다. 이를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이나 OECD, IMF 연구 보고서가 뒷받침했다.
  반면 The Leave 진영의 선전은 체계적이었다. EU 탈퇴 진영의 핵심 구호는 “삶에 대한 결정권을 다시 영국으로”였다. 우파 민족주의 수사학과, 빈곤으로 인해 확대된 반(反)이민 정서를 동시에 공략한 것이다. 영국 독립당은 이민노동자들로 인해 영국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떠들었다. 카메론에 등을 돌린 보수당 지지층들은 극우파들의 선전에 공감했다. 더군다나 보수당 내에서도 영국의 EU 탈퇴를 지지하는 선언이 나왔다.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이 대표적이다. EU에 대한 보수당의 양가적 감정은 이제 극우파 정당의 등장으로 극적으로 확대되었다.
  좌파는 균열되었다. 노동당 좌파, 마르크스주의 지식인, 전투적 노조, 생태주의자, 사회주의 진영은 합의된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트로츠키주의 계열의 국제사회주의 그룹은 EU로부터 영국이 탈퇴하는 것이 영국 노동자계급에게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EU를 새롭게 하는 데에 있어서도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유명한 좌파 이론지인 <신좌파 평론(New Left Review)>의 입장도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좌파 잔류진영은 브렉시트가 우파 인종주의를 강화시키고 영국 내에서 외국인 혐오를 조장할 것이며, EU가 지닌 긍정적 힘조차 부정시킬 것이라고 반박했다. 좌파 잔류진영은 유로존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유럽 의회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사회적 유럽’이 그들의 대안이었다. 좌파 잔류 진영의 구호는 “최악에 저항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자”였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 내 시선들

  카메론은 브렉시트 투표에서 승리할 것을 낙관했지만 선거결과는 브렉시트 진영의 승리였다. 계급적 좌표를 보자. 노동자계급의 66%, 하위 중간계급의 50%, 상층 중간계급 전문직 종사자 43%가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노동자계급의 지지가 압도적이었고, 상층 중간계급도 결코 적지 않은 비율로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지리적 균열을 보자. 잉글랜드 북부의 60%, 잉글랜드 남부 40%가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는 잔류진영이 우위를 차지했다. 잉글랜드 북부지역이라 해도 지식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대학도시들에서는 잔류지지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런던이나 맨체스터 도심에서는 잔류 지지가 훨씬 높게 나타났다. 반면 이민노동자들의 비중이 낮은 북부의 낡은 산업도시에서는 브렉시트 지지가 높았다. 이들 지역에서는 ‘분노의 투표’가 지배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탈산업화로 박탈감에 시달리던 북부지역 노동자계급은 런던의 상류층과 기득권자들에 대한 분노를 브렉시트 지지로 드러낸 것이다. 성별에 따른 투표성향을 보면, 여성유권자들보다 남성유권자들의 브렉시트 지지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이는 이민노동자들이 남성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부분적으로 잠식해 들어온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정치적, 이념적 기준으로 브렉시트의 결과를 재단하는 것은 큰 오류이다. 노동당 지지자 중 대략 1/3은 EU 탈퇴를 지지했다. 노동당 왼쪽의 녹색당 지지자,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 당, 자유당의 투표층 역시 지지가 갈렸다. 웨일즈는 강력한 노동당 지지 지역이지만 EU 탈퇴가 우세하게 나타났다. 카메론이 이끄는 보수당 정부에 대한 반대투표로 이해되어야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좌파들 내부에서도 브렉시트 지지 혹은 비판은 갈렸다. 단일한 입장이 나오지 못한 것은 이 쟁점이 인종주의와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이들의 브렉시트 지지율이 높았으며,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잔류를 선택했다. 이는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를 반영한다. 이민 반대 정서가 투표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영국 노동자계급의 브렉시트 지지를 설명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브렉시트라는 경고

  브렉시트 이후의 경제지표들이 보여주는 바는, 주류 언론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아마게돈은 아니었다. 영국의 주가는 브렉시트 이후 잠시 하락했다가 다시 고점 가까이로 접근했으며, 구직자와 실업자의 차가 매우 근소해 실업률이 올라가지도 않았고 투자위험의 지표도 올라가지 않았다. 파운드의 가치는 낮아졌지만 자본이탈을 야기할 만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파운드의 평가절하는 영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영국의 대외무역 규모도 줄어들지 않았고, 소비심리 위축도 없었다. 영란은행 총재 마크 카니는 브렉시트가 결정된 다음 날 이자율을 0.5%에서 0.25%로 인하했으며, 시장에 무제한적인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언급했다. 영국 재무부는 법인세율을 당분간 13%로 낮추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자본의 해외이탈을 막았다. 영국은 현재 그럭저럭 견디고 있는 상황이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만약 영국이 유럽을 떠나겠다면, 영국은 EU와 여타 국가들이 맺은 경제협력 방안 이상의 관계는 없을 것임을 천명했다. 더불어 유로존 회원국들에게 현재의 유럽공동체의 정책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드러냈다. 메르켈이 융커를 유럽위원회 집행위원장에 앉힌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융커는 유럽 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메르켈이 이끌고 융커가 집행하는 EU는 현재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이어갈 것이다.
  그러나 EU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은 브렉시트가 아니라 ‘유로 자체’이다. 유럽중앙은행은 유럽공동체 시민들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며, 불평등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유럽공동체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시민-주권자의 개입은 봉쇄되어 있으며, 개별국가의 정부는 브뤼셀의 정치 엘리트 집단의 폐쇄적 결정을 따르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더불어 유로존 내에서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에 대한 양보교섭을 강제하고 노동시장의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정책을 지속할 것이다. 브렉시트는 다름 아니라 현존하는 유럽공동체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자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영국 엘리트 집단에 남긴 하나의 경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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